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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경제 규제 입법과 넓은 입법재량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대)

우리가 적법절차조항을 정부가 개인들에게 ‘근본적 공정성(fundamental fairness)’을 갖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조항이라고 봤을 때, 그 요구를 두 가지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실체적인 면과 절차적인 면이 그것이다. 절차적인 면에서의 적법절차는 정부가 공정하게 행위하는 한, 헌법이 명시적으로 금하는 것이 아니면 정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실체적인 면에서의 적법절차는 그 절차가 아무리 공정하다 하더라도, 또 헌법이 명시적으로 이를 금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정부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실체적인 면에서의 적법절차는 정부의 권한에 내재적인 한계를 드리우는 것이다. 이것이 ‘실체적 적법절차원리’의 기본적 의미다.

그런데, 이 실체적 적법절차원리의 가장 큰 맹점은 그 ‘불확정성(indeterminateness)’에 있다. ‘적법절차’란 애매모호한 용어다. ‘근본적 공정성’도 더 구체적인 용어가 못 된다. 법원이 적법절차의 법리를 합헌성심사에 사용하고 이에 근거해 때때로 정부의 공권력 행사를 위헌무효화 시킬 때, 법원은 정부 행위에 대한 실체적 한계로서의 ‘근본적 권리’들을, 또한 정부 행위의 정당성의 측정수단으로서의 ‘근본적 권리’들을 어떻게 또 헌법상의 어느 조항에 근거해서 도출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근본적 권리’들이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묵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판사가 헌법상의 제한이라는 미명하에 자기 자신의 가치선택을 판결에서 강요하려 할 때 무엇이 이를 막을 수 있는가의 문제도 발생한다.

1905년의 Lochner 판결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 연방대법원은 상당기간 동안 이러한 실체적 적법절차원리로부터 다른 헌법조항에 명시되지 않은 ‘계약의 자유’를 도출했고 이 ‘계약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에 대해 엄격한 합헌성 심사기준을 적용해서 많은 위헌판결들을 내렸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에 와서 이 ‘계약의 자유’나 넓게는 ‘경제규제’에 관한 법들의 위헌심사기준을 크게 완화시키는 대반전이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Nebbia v. New York(291 US 502) 판결 등 1934년에 시작된 일련의 판결들에서 연방대법원은 경제규제에 관한 법의 합헌성심사에 훨씬 완화된 기준인 ‘합리성심사’ 기준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즉, 경제규제에 관한 법들은 법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합리성만 가지고 있으면 합헌이라는 것이다. 이는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여러 개혁입법들이 경제규제에 관해 엄격한 합헌성 심사기준을 적용하던 당시의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아 무효화 되자 이에 자극받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법관 수의 증원을 내용으로 하는 ‘법원재구성계획(court-packing plan)’을 발표하면서 연방대법원을 손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게 되고, 다시 대통령의 이런 위협에 위기감을 느낀 연방대법원이 그 입장을 전면 수정함으로써 이루어졌다.

1934년 Nebbia v. New York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1932년의 우유가격 하락으로 농부들의 손에 쥐어지는 우유 판매수익은 생산원가에도 못 미쳤다. 이 가격하락은 일반적인 가격하락보다 더 심했다. 우유판매자업계의 상황은 절망적이 되었고 이에 우유판매업계는 국가의 원조를 요구하게 되었다. 1933년에 제정된 주법에서 뉴욕주의회는 우유통제위원회(Milk Control Board) 설립을 규정했다. 이 우유통제위원회는 이 주법에 의해 우유의 최저·최고 소매가격을 정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에 동위원회는 우유 한 쿼트의 소매가격을 9센트로 정했다. 동위원회 설립근거가 된 법률의 입법취지는 “우유는 다이어트의 필수 품목이다. 우유생산업자들이 합당한 생산수익을 받지 못하면 상한 우유가 유통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유 생산은 뉴욕주의 주된 산업이며 뉴욕주민들의 건강과 뉴욕주의 번영에 주된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 있었다. 로체스터에서 식료품을 운영하던 Nebbia는 5센트 하는 빵 한 덩어리를 우유 2쿼트와 함께 총 18센트에 팔았기 때문에 우유통제위원회의 소매가격 규정에 위반하여 유죄선고를 받았다. 이에 Nebbia는 이 소매가격 규정이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보호조항과 적법절차조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서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Roberts 대법관에 의해 집필된 다수의견은, 주정부가 고정판매가격을 정하는 것을 연방헌법이 금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합헌결정을 내렸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재산의 사용과 계약의 체결 둘 다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재산권도 계약체결권도 절대적 권리는 아니다. 공익을 위해 사익을 규율할 공공의 이익은 사익과 똑같이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수정헌법 제5조와 제14조는 공공복리를 위한 주정부의 규제를 금하지 않는다. 이 두 조항은 단지 그러한 규제가 적법절차와 일치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 적법절차의 보장은 그 법이 비합리적, 자의적,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면 족하다고 하고, 선택된 수단이 달성하려는 목적과 현실적이고 실체적인 관련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한 산업이 공익을 위해 규제의 대상이 된다면, 그 산업 생산품의 가격도 규제될 수 있다. 어떤 산업이 ‘공적 산업에 영향을 받는’ 산업이라면 그것은 경찰권의 규제를 받는다. 주정부는 공공복리를 증진하리라고 합리적으로 생각되어지는 어떠한 경제정책도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다. 법원에게는 그러한 경제정책들을 무효화시킬 권한이 없다. 통과된 법들이 정당한 목적과 합리적 관련성을 가지고 자의적이지도 차별적이지도 않다면 적법절차의 요건들은 충족된 것이다. 가격통제나 기타 다른 유형의 통제들은 이러한 요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 우유통제위원회를 설립하고 동위원회에 가격책정의 권한을 부여한 뉴욕주 주법은 적법절차조항에 위배되지 않으며 헌법적으로 유효하다. Nebbia에 대한 하급심의 유죄판결을 인용한다.

원래 미국 연방대법원의 초기 입장은 주정부가 공익에 영향을 끼치는 산업들에서만 가격통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공 전기·수도·가스업, 낙농업, 대형 곡물창고업 등에 있어서의 가격이나 요금에 대한 규제는 합헌판결을 받았으나, 영화관 입장료나 얼음 가격에 대한 규제는 그렇지 못했다. Nebbia판결은 가격통제가 다른 경찰권 행사와 같이 취급되어질 수 있으며 정당한 목적에의 합리적 연관성이 필요한 모든 것이 가격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어쨌든 Nebbia판결은 입법부의 입법재량을 존중하는 연방대법원의 변화된 입장을 잘 나타내주는 판결로 평가받는다.

입법부의 입법재량을 존중해 각종 경제규제 입법들에 대해 ‘합리성심사’기준이라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서 웬만하면 합헌결정을 내리려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규제 입법에 대한 합헌성 심사에도 확대되어 나갔다. 사회적·경제적 문제에 관한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규제에 대한 위헌심사에 연방대법원이 일종의 ‘불개입의 원칙’을 세웠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경향은 이어져, 연방대법원은 헌법에 의해 금지되지 않은 목적은 그것이 무엇이건 정당한 목적으로 받아들이고 합리성의 요건도 이를 넓게 해석하여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사회적·경제적 규제에 대해 웬만하면 합리성을 인정하여 이를 합헌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개인의 계약의 자유나 재산권을 제한하는 사회적·경제적 규제입법들에서 입법부는 다른 기본권 제한입법들에서보다 더 넓은 입법재량의 공간을 향유하게 된 것이다. 다른 말로는, 계약의 자유나 재산권과 같은 경제적 기본권은 다른 기본권에 비해 제한하기 쉬운 후순위 기본권들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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