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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기본권도 기본권인가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은 어떠한 주(州)도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주민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적법절차조항은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실체적 적법절차원리’와 ‘절차적 적법절차원리’의 두 원리에 대한 근거조항으로 발전해갔다.

이 중 인간생활의 일정 부분을 규율하는 정부의 실체적 권한도 헌법에 의해 제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적법절차조항을 해석하는 것이 ‘실체적 적법절차원리’이다. 이 실체적 적법절차원리는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제한할 수 없는 수정헌법 제14조의 “생명, 자유, 재산” 중 주로 “자유(liberty)”의 해석을 통해 발전해갔다. 즉, 인간행동에 대한 어떤 유형의 정부권한의 행사는 중요한 인간 권리를 너무도 불합리하게 간섭하는 것이어서 “자유”에 대한 불합리한 부정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며 이것이 실체적 적법절차원리에 반해서 위헌이라는 것이다.

미국 헌법의 근저에는 항상 자연권사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연권사상은 비록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부가 월등한 정당화논리를 가지지 않고서는 침범할 수 없는 근본적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자연권사상의 근본적 권리에 대한 논의가 바로 ‘실체적 적법절차원리’라는 이름으로 수정헌법 제14조 적법절차조항에서 그 둥지를 찾은 것이다.

위헌판단의 근거로서의 실체적 적법절차원리는 경제규제 법률에 대한 위헌 판단, 그 중에서도 ‘계약의 자유’에 관련된 사건 판결들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사건판결들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에 의해 보호되는 “자유”를 육체적 자유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향유할 권리, 모든 합법적 방법으로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할 권리, 어떤 직업이라도 합법적 직업으로 하여 생계를 꾸려나갈 권리,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그 목적을 위해 적절하고 필요하며 본질적일 수 있는 모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로 인식하였다.

그 후에도 상당기간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적법절차조항으로부터 도출된 ‘계약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에 대해 엄격한 합헌성 심사기준을 적용해서 많은 위헌판결들을 내렸다. 1905년의 Lochner v. New York(198 US 45) 판결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뉴욕주의 노동법은 제빵공장이 노동자들에게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혹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노동을 시키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Lochner는 바로 이 주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게 되었다. 즉,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제빵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노동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 주법의 위헌성이 본 사건에서 다투어졌다.

Peckham 대법관에 의해 집필된 다수의견은, 제빵공장 노동자들의 최장노동가능시간을 규율하는 이 주법이 주 경찰권의 합헌적 행사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사업 운영과 관련한 일반적 계약체결권은 수정헌법 제14조에 의해 보호되는 개인의 “자유”의 한 부분이다. 즉, 노동을 사거나 팔 권리는 수정헌법 제14조에 의해 보호되는 “자유”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주정부는 주민의 안전, 건강, 도덕 그리고 일반적 복지와 관련해 일정한 경찰권을 보유한다. 만약 주민의 어떤 계약이 주정부가 경찰권 행사의 일환으로 금지할 권한을 갖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수정헌법 제14조는 그러한 주정부의 금지를 막지 않는다. 여기서처럼 주정부가 근로권이나 계약체결권을 제한하려 할 때, 주정부의 권한이 우선하는지 개인의 권리들이 우선하는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수정헌법 제14조는 주정부의 경찰권 행사를 제한한다. 만약 주법이 주민의 건강, 도덕, 혹은 안전을 위한 것임을 주정부가 일단 입증하면 주정부는 경찰권 행사와 관련하여 무제한의 권한을 가질 것이다. 여기에서 주법이 주민의 건강에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충분치는 않다. 오히려, 개인의 노동계약체결권에 주법이 간섭하기 이전에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서 그 주법은 적절한 주정부의 목적에 좀 더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

이 사건에서 주법이 주민의 건강이나 제빵공장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 판시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 이러한 주법은 단지 주민 개개인의 권리들에 대한 성가신 간섭에 불과하다. 노동시간 제한이 없으면 주민이나 노동자의 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한다고 말할 정당한 근거가 없다면, 그 주법은 무효이다. 건강에 좋은 양질의 빵 생산이 노동자의 근로시간수에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 입법부에게 근로권과 자유로운 계약체결권에 간섭할 권한을 줄 정도로 제빵일이 노동자의 건강에 유해한 것도 아니다.

이 사건의 다수의견에 대해 Harlan 대법관과 Holmes 대법관은 반대의견인 합헌의견을 개진해 주목을 끌었다. Harlan 대법관은 어떤 입법이 현명한 입법인가의 여부는 연방대법원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문제된 주법과 주정부의 정당한 목적 사이에 실체적이고 현실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 이 판결은 주의회에 전적으로 속해왔던 문제들을 연방대법원의 심사사항으로 갖고 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Holmes 대법관은 합리적인 사람이 보기에도 그 법이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법의 원칙들을 침해하는 것이라 판단되어지지 않는 한, 수정헌법 제14조의 “자유”(liberty)라는 말이 어떤 주법을 무효화시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문제된 주법은 합리적인 사람이 판단하기에 유효하고 합헌적인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일요일 휴무법, 복권법, 예방접종법 등과 같이 시민의 권리는 종래 유효한 법이라 판시된 많은 주법들에 의해 제한되어 왔고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합헌의 근거로 들었다.

1905년의 이 Lochner 판결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연방대법원은 상당수의 법률들에 대해 실체적 적법절차 위배를 이유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그 법들에는 최소임금과 최장노동시간, 가격 등을 규제하는 법, 사업활동을 규율하는 법들이 주를 이루었다.

현재의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Lochner 판결의 원칙을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경제영역에서는 주의깊은 엄격한 사법심사를 더 이상 하지 않지만, 여러 비경제적 자유의 영역에서는 주정부에 의한 간섭이 유지되어 왔고 오히려 늘어왔다.

그러나, Lochner 판결에서 경제적 규제만이 위헌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다. Lochner 판결의 원칙은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와 같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상의 권리들을 수정헌법 제14조의 “자유”의 범위내로 빨아들이는 토대를 마련했던 것이다. Lochner판결의 원칙은 또한 학교에서 영어 이외의 외국어로 가르칠 권리와 같은 다른 비경제적 권리들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아무튼 이 Lochner 판결 등 많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들을 통해서 수정헌법 제14조 적법절차조항의 “자유”는 미국 헌법에 규정된 기본적 자유들과 함께 연방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일련의 암시된 기본권들을 상징하게 되었다.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기본권도 기본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딱히 헌법에 명문의 근거규정이 없는 새로운 기본권들은 이 적법절차조항의 실체적 적법절차원리의 몸을 빌어 잉태되고 기본권으로 탄생되어 나갔다. 우리 헌법상의 행복추구조항이 이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