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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엄마

노문기 (변호사)

살면서 힘든 상황이 오면 누구나 그렇듯이 엄마를 많이 떠올린다. 필자의 모친은 군복무 중에 돌아가셔서 현실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런 엄마이기에 더 애잔하다. 필자는 ‘꼴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마를 힘들게 했다. 이제 자식을 키워보니 얼마나 불효막심이었는지 깊이 깨닫고 있다.

속썩이던 아들이 군입대 직전에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면소재지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뗐다.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 차창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엄마가 10리길을 뒤따라오신 거였다. 한손에 베지밀 2병을 차창유리창으로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있던 어머니 모습,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복무 중에 별세 소식을 듣고 버스를 타고 고향에 오면서 차창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부모는 자식에게 육신과 정신을 주고 가는가 보다. 삶에서 부딪히는 고비마다 엄마를 생각하면 없던 힘도 솟아났다.

요즘 경제가 무척이나 어렵다. 젊은 사람들의 실업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회사는 대규모 감원 내지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매섭고, 새벽 인력시장에 일할 사람은 넘쳐나지만 일당제 일거리도 없어 발걸음을 돌릴 정도란다. 힘든 시기엔 그리움이 자주색 장막처럼 더 깊게 드리운다.

그러나 그 장막을 걷어내면 에메랄드 빛 하늘이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엄마는 장막을 걷어내게 하는 힘이고, 내 삶의 원동력이다. 엄마의 온기가 느껴지는 베지밀 병을 만지면서 새벽을 나선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