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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세법동향

[최근 미국세법동향] 스위스 은행비밀보호 제도, 미국의 과세권 앞에 붕괴될까?

Lucy Lee 변호사

매달 한 번씩 ‘Lucy Lee 변호사의 최근 미국세법동향’이 실립니다. Lucy S. Lee 변호사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조세분야 전문 로펌 Caplin & Drysdale 소속 변호사로, 앞으로 미국 최신 세법의 흐름을 짚어보고 주요 사건들을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미국은 2008년 12월8일 리히텐슈타인(Lichtenstein) 정부와 과세 정보 교환 협정(Tax Information Exchange Agree- ment)을 체결하였다. 위 협약의 골자는 리히텐슈타인은 미국에게 미국 세법 집행을 위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은 민사 사건과 형사 사건 모두에서 모든 형태의 연방세에 관련된 정보를 리히텐슈타인에게 요청할 수 있다(참고로 종전까지 미국과 리히텐슈타인은 상호 사법 공조 조약(Mutual Legal Assistance Treaty)에 근거하여 조세포탈 형사사건에 관련된 정보만을 교환하고 있었다). 요청받은 나라가 관련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요청받은 정보를 수집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심지어 요청받은 정보가 비거주자에 관련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당해 요청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교환된 과세정보는 오로지 특정한 과세당국만 주고 받을 수 있고 위 협약에 따라 제공된 정보는 오로지 과세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권한 있는 당국자가 그 비밀유지를 보장해야 한다.

위 협약의 대가로 리히텐슈타인은 자국 금융기관들이 미국 국세청으로부터 적격 금융기관(qualified intermediary)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적격 금융기관 제도는 미국 세법상 국내 원천소득에 대한 원천징수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하여 2001년부터 시행된 것으로서, 적격 금융기관은 미국 국세청에 대하여 예금주가 미국인이 아닌 경우 그 신분을 밝히지 않고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점 및 소득 수취인(예금주)에 관한 정보를 미국 국세청에게 간이하게 제공 할 수 있는 등의 특혜를 누릴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나라일 수 있는데, 인구 약 3만2,000명을 가진 유럽의 작은 입헌군주국으로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국적 취득이 쉽고 세율이 낮은 점 등 때문에 일찍이 OECD로부터 조세피난처(tax haven)으로 지정된 나라로 유명한데, 미국은 2년에 걸친 협상 끝에 위와 같은 협정을 이끌어 내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위 과세정보교환협정은 미국 정부가 최근 금융정보를 고객의 비밀이라고 하여 이를 공개하지 아니하는 나라를 이용한 조세 회피행위 내지 탈세와의 전쟁에서 얻은 첫번째 승리라고 평가되는데, 이런 전과는 다음과 같은 최근의 두 국제적인 스캔들(LGT스캔들과 UBS 스캔들)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의 최대 은행이자 왕실 소유인 Lichtenstein Global Trust(LGT)의 Heinlich Kieber라는 전직 직원이 올해 초 1만2,000쪽에 달하는 고객 계좌정보를 훔쳐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유럽 각국 정부에게 이를 거액에 팔아 넘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위 계좌정보는 미국도 입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독일 정부는 이 정보를 근거로 LGT 계좌를 이용하여 탈세한 저명한 사업가들(Deutsche Post의 현직 CEO도 포함됨)을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 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비밀계좌를 통한 소득 은닉행위가 전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두번째 사건은 UBS(Union Bank Switzerland)라는 스위스를 근거지로 한 세계적인 투자은행과 관련되어 있다. UBS는 고액 개인자산운용업무(private banking)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이다. 전세계 50개 이상의 국가에서 약 8만명의 직원이 약 2조 6,00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거대은행이다(스위스의 GDP가 약 4,200억 달러에 불과함을 비교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직 UBS 자산운용 담당자였던 Bradley Birkenfeld는 지난 6월19일 Forbs지가 세계 400대 부자로 선정한 억만장자인 Ignor Olenicoff와 공모하고 리히텐슈타인 및 스위스의 비밀계좌를 통하여 약 720만 달러의 미국 세금을 포탈하였다는 범죄 혐의를 시인한 다음, 미국 국세청의 관련 세무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Birkenfeld는 UBS가 약 200억달러 상당의 비실명계좌(undeclared account)를 약 2만명의 미국 납세자를 위하여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UBS 직원들이 미국 고객들이 자산을 은닉할 수 있도록 역외 명목회사를 설립해 주고 이 역외회사가 자산을 소유하는 것처럼 세무신고를 하도록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제보하였다.

이 사건의 파장으로 인하여, 플로리다의 연방 판사는 지난 7월1일 UBS에 대하여 스위스 계좌를 이용하여 미국 세금을 포탈한 미국 고객들에 관한 계좌정보를 제공할 것을 명해 달라는 미국 법무성의 요청을 승인하였다. 나아가 미국 법무성은 지난 11월12일 UBS의 국제자산관리 부문 CEO인 Raoul Weil을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 은행 업무를 관리감독하면서 미국 국세청의 눈을 피해 매년 약 2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납세자의 자산을 은닉하고 그 대가로 UBS로 하여금 매년 약 2억 달러의 수입을 얻게 하였다는 혐의로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그 밖에도 미국 법무성은 UBS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 1만 7,000여명의 미국인들에 대하여 조세포탈 혐의를 수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미국 국세청도 미국 납세자들에게 1만달러 이상의 비실명계좌를 신고하고 탈루된 세금을 미국 국세청에게 자발적으로 공개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미국법상 세무조사나 수사절차가 개시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공개(voluntary disclosure)하는 납세자는 형사처벌을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LGT사건과 UBS 사건은 7월17일 미국 상원 국가안보위원회(Homeland Security and Govern- ment Affairs)로 하여금 ‘조세피난처 은행과 미국세금의 납세성실성(tax haven banks and US tax compliance)’에 관한 청문회를 열게 만들었다. UBS의 국제 자산관리부분 CFO인 Mark Branson은 위 청문회에 출석하여 Birkenfeld의 제보내용이 사실임을 시인하고, 향후 재발방지 및 스위스 정부가 허용한다는 전제하에 미국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협조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스위스 국내법상 조세회피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자국내 은행비밀보호법은 은행이 고객의 금융정보를 고객의 동의없이 제3자(외국의 과세당국을 포함하여)에게 제공하는 것은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위스 정부는 위 청문회 후에도 자국의 은행제도 안에서 발생한 미국법 위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UBS가 고객들의 정보를 미국에게 넘겨준다면 이는 스위스 국내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글의 모두에서 언급한 미국이 리히텐슈타인과 체결한 과세정보교환협정은 전세계 투자 관행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웃나라인 스위스나 다른 나라정부들이 위 협정에 동참하게 된다면, 전세계 금융기관들은 전통적인 투자관행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및 독일은 리히텐슈타인과 위 협정과 유사한 과세정보교환협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의 은행비밀보호 제도는 오랜 세월 유지되어 온 전통으로서 자국의 자존심이나 주권과 같이 인식된 측면이 있다. 그 동안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과 같다고 여겨진 은행비밀보호 제도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미국 국세청의 공격적인 과세권 확보노력 앞에 스위스가 어떤 선택을 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스위스 내부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은 스위스 은행비밀보호 법제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며, 전세계 역외자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자국의 역외 은행산업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팽배해 있다. 한편, UBS는 현재까지 플로리다 법원에 계좌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데, 미국 내에서는 미국 조세제도를 농락한 UBS를 미국 내 금융산업로부터 영구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과세당국인 미국 국세청은 UBS에 대하여 아직까지 솜방망이 제재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 국세청은 UBS의 적격 금융기관 자격을 아직까지 박탈하지 않은 채, 향후 적격 금융기관 제도를 강화할 것만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국세청의 태도는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는 현재 미국 국세청이 싸우고 있는 진정한 상대는 스위스가 아니라 UBS 배후에 있는 전세계 자본가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쨌거나, 자국의 과세권 확보를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의 국내법과 충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미국의 집요한 노력이 이번에 성공을 거둔다면, 전세계 부자들과 다국적기업들은 모두 그 파급 효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며, 새로운 투자 방법 및 거래구조를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