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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적법절차법리의 조용한 시작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대)

영미법계 국가를 중심으로 ‘인권보장의 가장 핵심적인 헌법원리’로 평가받는 적법절차원리는 1215년에 제정된 영국의 ‘대헌장’(Magna Carta)에 그 실정법적 기원을 둔다. 그 후 1335년 Edward 3세 치하의 제정법과 1628년의 권리청원 제4조에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규정된 적법절차조항은 이제 영국에서 미국으로 대서양을 건너가 보다 더 치밀한 법리의 발전을 보게 된다.

‘흑인노예 해방’ 등을 명문으로 1861년에서 1865년에 걸쳐 일어난 미국의 남북전쟁(Civil War)은 실로 미국사회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대사건이었다. 이 남부와 북부의 세력다툼이 북부의 승리로 끝나자, 전쟁이 끝나던 해인 1865년을 시작으로 1868년, 1870년에 각각 수정헌법 제13조, 제14조, 제15조가 미국헌법에 추가된다. 이 세 조항들은 수정헌법 제13조가 노예제 폐지, 제14조가 적법절차조항과 평등보호조항 및 미국 국적의 취득과 미국민의 특권 및 면책권에 관한 조항, 제15조가 흑인의 투표권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만큼, 모두 흑인에 대한 차별 폐지를 그 공통된 내용으로 갖고 있다. 즉, 남북전쟁에서의 북부 승리의 전리품에 해당하는 헌법조항들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1868년에 미국헌법에 추가된 수정헌법 제14조 중 제1항은 “합중국에서 출생 또는 귀화하고, 합중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합중국 및 그 거주하는 주(州)의 시민이다. 어떠한 주도 합중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 어떠한 주도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사람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그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떠한 사람에 대해서도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다소 긴 규정이다. 이 중 “어떠한 주도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사람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부분이 적법절차조항을 구성한다. 또한 남북전쟁 이전인 1791년에 미국헌법에 추가된 권리장전조항들 중 수정헌법 제5조도 그 후반부에 “누구라도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수정헌법 제5조와 수정헌법 제14조의 이 부분들이 바로 미국헌법상의 ‘적법절차조항’이라 불리우는 조항들이다. 그리고 이 부분들에 근거해 영국에서 도입된 적법절차의 법리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 나간 것이다.
적법절차조항은 일찍부터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이나 합헌 판단의 근거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심지어 1791년에 추가된 미국 수정헌법 제9조가 “본 헌법에 특정 권리들을 열거한 사실이, 인민이 보유하는 그 밖의 여러 권리들을 부인하거나 경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연권사상에 기초해 새로운 기본권들이 도출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수정헌법 제9조보다는 오히려 수정헌법 제5조와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을 더 많이 활용하면서 새로운 기본권들을 형성해오고 있다.

적법절차조항과 관련된 초기 사건으로 일명 ‘도살장 사건(Slaughter-House Case)’이라 불리는 1872년의 Butchers’ Benev. Association v. Crescent City Live-Stock Landing and Slaughter-House Corporation사건이 유명하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클레센트 시회사(Crescent City Company)’는 가금류의 도살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지정하는 장소를 제외한 뉴올리언스 지역에서의 가금류 도살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주법이 1869년에 루이지애나 주의회를 통과했다. 도살업자는 도살을 계속 할 수 있으되 이 회사가 지정하는 도살장에서만 도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 회사에게 장소 이용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이는 주정부가 한 회사의 독점을 허용해주는 것이라 주장하며 다른 도살업자들이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 위배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주법원에서 이들 원고들이 패소하자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했다.

원고들은 문제된 주법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연방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 법률은 첫째, 연방 수정헌법 제13조에 의해 금지된 “비자발적인 강제노역(involuntary servitude)”을 만들어내고, 둘째, 수정헌법 제14조 1항이 인정한 연방시민의 “특권이나 면책권(privileges or immunities)”을 박탈하며, 셋째, 원고들에게 수정헌법 제14조 1항이 인정한 “법의 평등보호(equal protection of laws)”를 부인하고, 넷째,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의 규정에 반하여 원고들의 “재산(liberty)”을 “적법절차(dueprocess of law)”에 의하지 않고 박탈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정작 Miller대법관에 의해 집필된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적법절차원칙과 평등보호원칙에의 위배 여부에 관해서는 별로 상세히 다루지 않았고 문제된 주법이 이 원칙들을 침해하지도 않는다고 보았다. 오히려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의 “특권과 면책권” 조항 위배 여부에 중점을 두면서, 한 산업에서 독점을 만드는 주법은 수정헌법 제14조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수정헌법 제14조의 ‘특권과 면책권조항’은 주정부가 미합중국 주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침해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 조항은 그러한 권리들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물음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법원은 이러한 권리들이 항해가능한 수로(水路)를 사용할 권리, 평화롭게 집회할 권리, 청원할 권리, 기타 시민권에 부수하는 다른 권리들을 포함한다고 판시해왔다. 시민의 안전, 보호, 생계유지는 주(州)에게 맡겨진 것이며, 주는 그러한 문제를 그들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바대로 규제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된 법도 그러한 규제의 하나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주정부의 규제권한 내에 속한다.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 Field대법관은 이 주법이 수정헌법 제14조의 ‘특권과 면책권조항’에 위배되어 위헌이라는 논지의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즉, ‘특권과 면책권조항’은 본질상 모든 자유정부하의 시민들에게 속하는 권리들을 보호하는데, 이 주법에 의해 침해된 생계유지와 관련된 권리는 이러한 권리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Bradley대법관도 반대의견을 냈지만, 그는 문제된 주법이 자유와 적법절차의 침해를 구성하여 수정헌법 제14조의 ‘특권과 면책권조항’이 아니라 동조항의 ‘적법절차조항’에 위배되어 위헌이라는 논리를 폄으로써, 다수의견이나 Field대법관의 반대의견과는 달리 ‘적법절차조항’을 이 사건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였다.

이 도살장 사건 판결은 1868년에 수정헌법 제14조가 제정되고 나서 그 4년 후인 1872년에 내려진 판결로서, 무엇보다도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첫 번째 해석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그러나, 적법절차조항보다는 ‘특권과 면책권조항’에 초점을 맞춘 판결이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 판결 이후, ‘특권과 면책권조항’에 관한 이 판결의 좁은 해석은 그 후 수정헌법 제14조에 관한 해석론의 상당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크게 손대어지지 않고 선판례로 존속되었다. 오히려 수정헌법 제14조의 해석을 통한 개인적 자유의 발전은 적법절차조항과 평등보호조항을 통해 전개되어 나갔다. 즉, 이 판결은 수정헌법 제14조 적법절차조항 해석론의 발전에 첫걸음이 되는 판결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적법절차법리의 발전은 이렇게 조용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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