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수사관의 허위증언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조원철 판사의 미국 오판사례는 EDWIN M.BORCHARD 예일대 교수가 1932년 미국의 오판사례들을 묶어 펴낸 'CONVICTING THE INNOCENT'를 서울중앙지법 조원철 부장판사의 번역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뉴욕 올리언즈 카운티의 농장에서 70대의 농장주 찰스 B. 펠프스가 하녀 마가렛 월콧 양과 함께 살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는 농장에서 일하는 찰스 F. 스티로우가 1915년 3월15일께부터 처와 두 명의 자녀, 장모, 처남 넬슨 그린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1915년 3월22일 새벽 5시께에 스티로우는 항상 그렇듯이 농장의 잡일을 하기 위하여 일어났다. 그가 집을 나섰을 때 현관에서 잠옷 차림의 월콧 양이 눈 위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스티로우는 급히 건너편 펠프스의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펠프스도 부엌 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스티로우는 즉시 이웃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펠프스는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펠프스는 집에 상당한 양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살해의 동기가 금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펠프스와 월콧은 22구경 권총으로 살해되었다. 경찰견은 현장에서 냄새를 포착하고 부근의 개울까지 추적하였으나, 그곳에서 냄새가 사라져 더 이상은 나아가지 못하였다.

스티로우와 그린은 전날 밤 11시께에 펠프스의 집 쪽에서 비명소리를 듣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았지만 아무도 볼 수 없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이웃에 사는 얼머 피셔 양은 11시께에 4발의 총성과 비명소리 그리고 “찰리, 내가 죽어가고 있어요. 나를 들여보내 줘요”라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카운티 당국에서는 버팔로의 탐정사무실에 사건 해결을 의뢰하였다. 탐정 조지 뉴턴은 피셔 양이 들은 비명과 울음소리를 펠프스 집안의 사람들이 듣지 못하였다는 점을 이상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뉴턴은 면밀한 조사 끝에 사건 당일 스티로우의 집에 22구경 칼리버 권총과 장총이 있었음을 밝혀내었다. 스티로우와 그린은 그에 앞서 검시관의 질문에 대하여 총이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들 무기들은 넬슨 그린의 형인 레이몬드 그린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자 스티로우와 그린은 구속되었다. 주 정부의 전문가는 사체에서 나온 탄환 4개가 스티로우의 권총에서 발사된 것이라고 하였다.

스티로우는 구속된 지 이틀이 지난 4월23일 구치소에서 탐정 뉴턴, 검사, 보안관 등이 입회한 자리에서 그린과 함께 펠프스의 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스티로우는 그와 같은 자백 내용이 기술된 진술서가 제시되자, 이는 진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한사코 서명하기를 거부하였다. 검사는 자백증거를 토대로 사건을 대배심에 회부하였고, 대배심에서는 스티로우와 그린을 각각 1급 살인죄로 기소하도록 결정하였다. 재판에서의 가장 커다란 쟁점은 과연 스티로우가 4월23일 구치소에서 범행을 자백하였다는 증거가 채택될지 여부에 있었다. 이 자백증거가 채택되지 않는다면 혐의를 인정할 뚜렷한 증거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변호인은 탐정과 보안관이 협박과 고문을 하였음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쌍방은 이를 둘러싼 많은 양의 정황증거들을 제출하였다. 판사는 스티로우가 자백을 하였다는 내용의 증언을 법정에서 배심원들 앞에 제시하도록 허용하였다. 변호인은 스티로우의 처와 장모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알리바이를 입증하려 하였고, 스티로우가 전에 살던 마을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와 그의 좋은 평판과 성격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판사는 배심원들에 대한 인스트럭션을 통하여 문제의 자백 증거를 믿을 수 없다면 무죄 평결을 해야 한다고 고지하였다. 7시간에 걸친 평의 끝에 유죄 평결이 나왔다. 판사는 스티로우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러자 그린은 변호인과 상의 끝에 2급 살인죄를 인정하고 단기 20년부터 장기 종신형까지를 선고받았다. 스티로우의 변호인은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1916년 2월22일 항소가 기각되었다.

사형집행일이 4월9일로 정해진 가운데 스티로우로부터 자백이 있었던 전후 사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은 싱싱교도소의 관리들과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던 변호사 그레이스 휴미스턴, 그리고 시민단체 등의 청원에 기하여 주지사는 사형집행을 연기하였다. 그러나 법원에서 새로운 심리에 대한 신청을 기각하자 사형집행일이 다시 정해졌다.

그 전에 스티로우가 무죄라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금이 조성되어 사건을 재조사하였는데, 살인이 일어나기 전날 행상 한 사람이 펠프스의 집에 있는 것이 목격되었고, 그가 사건이 있은 후 많은 돈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행상은 어윈 킹이었다. 그는 체포되자 클래런스 오코넬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음을 자백하였고, 판사를 대리한 변호사 조지 라킨 등 7명의 증인들이 이를 직접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사는 사형집행을 보류시켰다. 그런데 킹은 이틀이 지나 자백을 철회하였고, 스티로우로부터 자백을 받아냈다는 탐정 뉴턴이 호송 과정에 동행하면서 이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법원은 스티로우의 기대와는 달리 먼저 재판에서 상당한 노력을 하였더라면 문제의 증거가 발견되어 제출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실질적으로 새로 발견된 증거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새로운 심리에 대한 신청을 기각하였다. 판사는 킹의 자백이 철회되었음을 이유로 이는 심리학적 연구대상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였다.

한 달쯤 후 위증죄로 수감 중이던 킹은 구치소에서 친구들에게 유죄를 인정하는 일련의 편지들을 썼는데, 사건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던 뉴욕 월드 지가 이를 보도하였다. 주지사는 킹을 소환하여 조사를 벌인 끝에 그로부터 범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사실들을 밝혀내었다. 이에 주지사는 의회로부터 예산을 승인받아 전직 검사인 조지 H. 본드를 특별검사로 임명하여 사건을 다시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였다. 특별검사는 처음에는 스티로우가 유죄라는 확신을 갖고 조사에 착수하였는데, 스티로우에 대한 강박 증거 이외에 스티로우와 그린, 그리고 변호인 사이의 대화를 녹음하기 위하여 딕토그래프가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변호인이나 판사는 물론 배심원들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특별검사가 이를 재생하자 그 안에는 단 한 마디도 유죄를 인정하는 내용이 없었다. 뉴턴의 부하로서 구치소에 위장 잠입한 스파라치노는 19일 동안 스티로우 옆에 있었지만, 결국 범행을 시인하는 진술을 얻는데 실패하였음을 인정하였다. 특별검사는 스티로우의 총에서 발사된 탄환과 사체에서 발견된 탄환을 촬영하여 확대한 결과, 양자가 뚜렷이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아가 특별검사는 범행 후 눈 위에 남아 있던 정황들에 비추어 스티로우가 월콧 양을 살해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밝혀내었다. 상식적으로도 스티로우가 범인이라면 월콧 양은 그를 목격하였을 것임에도 그의 집에 가서 구조를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특별검사의 추리였다. 얼머 피셔 양의 진술과 관련하여 그 집에 살고 있던 다른 사람은 살려달라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심장에 탄환을 맞은 월콧 양이 계속하여 그와 같이 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탐정 뉴턴과 보안관 등은 스티로우의 자백이라는 것에 대하여 수시로 말을 바꾸었는데, 결론인즉 그 자백이라는 것은 어떻게 살인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소문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특별검사의 조사 중에 가장 중요한 진전은 1917년 12월에 어윈 킹이 자발적으로 상세한 자백을 하였다는 점이다. 오코넬이 펠프스를 쏘아 치명상을 입혔고, 당초 월콧 양은 집에 있는 줄 몰랐으나, 그녀가 부엌 문 밖으로 도망치기에 총을 쏘았으며, 뒤쫓아 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킹은 현장상황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상세한 진술을 많이 하였다. 나아가 킹은 범행현장에서 탈취한 돈에 대하여도 설명하였는데, 이 부분은 스티로우의 경우에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었다. 킹은 유죄 청원을 하였으나, 판사는 스티로우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배심에 회부하였다. 스티로우가 무죄임을 확신한 특별검사는 대배심에서 그 동안의 조사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였지만, 예상과는 달리 대배심은 킹에 대하여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았다.

특별검사는 주지사에게 20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일반 여론은 아직도 스티로우가 유죄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고 알렸다. 주지사는 1918년 4월16일 스티로우의 형을 면제하였다. 같은 조치가 그린에 대하여도 취해졌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