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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쇼업(Show-up)과 라인업(Line-up)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조원철 판사의 미국 오판사례는 EDWIN M.BORCHARD 예일대 교수가 1932년 미국의 오판사례들을 묶어 펴낸 'CONVICTING THE INNOCENT'를 서울중앙지법 조원철 부장판사의 번역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1930년 12월7일 일요일 밤 10시 30분경 뉴욕 주 이스트 시러큐스에 위치한 엘크 호텔에서 호텔 주인 사무엘 마이어스가 로비 소파에 기대어 졸고 있을 때 두 명의 강도가 권총을 든 채 침입하였다. 그들이 마이어스를 깨우기 위하여 쿡쿡 찌르자, 잠에서 깬 마이어스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펄쩍 뛰어 일어나 가까이에 있던 키가 큰 범인과 맞붙어 격투를 벌이며 권총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 와중에 권총이 여러 발 발사되었고, 나머지 키가 작은 범인이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노리다가 마이어스의 옆구리를 쏘아 쓰러뜨린 후 도망갔다.

이 강도미수 사건은 범인들에 대한 개략적인 묘사와 함께 즉각 시러큐스 경찰서에 보고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이스트 제네시 가(街) 4004에 위치한 팬암 주유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날 밤 10시 50분경 두 명의 남자가 침입하여 점원인 프랭크 J. 브래디를 화장실에 가둔 채 금고에서 많은 돈을 강탈하여 갔다는 것이다. 몇 분 뒤에 경찰은 이스트 제네시 가 2974에 위치한 콜로니얼 주유소로부터도 전화를 받았는데, 마찬가지로 권총을 든 두 명의 남자가 점원인 사무엘 스탁스를 창고에 가두고 현금을 강탈하였다는 것이다.

위 주유소들은 이스트 시러큐스에서 시러큐스 시로 가는 길목에 차례로 위치한 관계로 경찰은 이들 세 사건이 동일범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아울러 경찰은 이틀 전에 두 명의 남자가 ‘포사이드 게일’ 중고차 판매점에 찾아와 판매원인 마틴과 함께 올즈모빌 승용차를 시승하다가 마틴을 권총으로 위협하여 차량을 강취한 사건을 상기하였다.

경찰은 전과자나 불량배들의 사진과 신상에 관한 자료철을 검토한 끝에 두 명의 남자 사진을 골라냈다. 그들은 빈센트 스타로위츠(24세)와 조지프 네자(20세)였다. 그 중 스타로위츠는 1927년에 범한 강도죄로 막 복역을 마치고 사건이 있기 전주에 시러큐스에 도착하였는데, 그 전과 범행의 공범이 바로 네자였다. 네자는 뉴욕 중앙터미널 부근에 위치한 저렴한 터미널 호텔에서 장기 투숙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날 스타로위츠와 네자의 사진을 병원에 가지고 갔고, 마이어스는 그들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그 중 스타로위츠가 총을 쏜 범인이라고 진술하였다.

경찰은 그날 오후 터미널 호텔로 가서 바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네자를 체포하였다. 경찰은 네자와 함께 그의 방으로 올라가 샅샅이 수색하였으나, 권총이나 현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로위츠도 뉴욕 중앙터미널에서 체포되었다. 두 사람은 전날 밤에 일어난 일련의 강도범행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고 범행을 부인하였다. 화요일에 주유소 점원 브레디와 스탁스가 경찰서로 와 스타로위츠와 네자가 범인이라고 지목하였는데, 당시 네자에게는 키가 큰 범인이 주유소에서 착용하였던 것과 같은 회색 코트와 캡 모자가 씌워졌다. 중고차 판매점에서 온 암스트롱 또한 그들을 범인이라고 지목하였다. 경찰이 네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자, 마이어스는 찾아 온 사람들 가운데 네자를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하지만 네자는 나중에 라인업에서는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았다.

한편, 스타로위츠는 경찰에서 자신이 3건의 범행에 모두 가담하였다고 자백하였다. 그는 공범이 지미라고 밝혔다. 스타로위츠의 진술에 기초하여 경찰은 그와 함께 약 70km 떨어진 유티카까지 가 셔우드라는 이름의 남자를 체포하였다. 하지만 시러큐스의 피해자들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데 실패함에 따라 그는 유티카 경찰 당국에 인계되었다.

사건은 곧 대배심에 회부되어 스타로위츠와 네자는 1급 강도죄로 함께 기소되었다. 1931년 2월에 이들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피고인들에게는 각기 다른 변호사가 선정되었는데, 네자의 변호인은 드보르제츠였다. 검찰이 처음 신청한 증인은 보안관 호프마이어였다. 검사는 피고인들을 누범으로 기소하였고, 1927년 5월에 강도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과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위 증인을 신청하였다. 변호인들의 반대에도 위 증인은 채택되었다. 스타로위츠는 공범이 지미라고 하면서 그의 본명을 모른다고 주장하였다. 중요한 것은 지미는 네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네자는 증인으로서 선서하고 일요일 저녁 터미널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증언하였다. 이에 대하여 검사가 집요하고 세세하게 반대신문을 하였지만, 네자의 진술은 시종 일관되었고 어떠한 모순점도 드러내지 않았다. 같은 공장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는 사람을 포함하여 3명의 증인이 네자의 알리바이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네자가 사건 당일 밤 10시경까지 터미널 호텔에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스타로위츠는 범행 발생시각에 유티카에서 술을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그는 당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자백과 관련하여서는 강요당하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검사는 피고인들의 전과기록과 그들이 교도소에서 석방된 후 함께 떠돌아다닌 점, 스타로위츠의 자백, 피해자들에 의한 적극적인 범인식별 등을 과장되게 강조하였다. 그는 네자 측의 알리바이 증언들이 터미널 호텔의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나온 것임을 이유로 그의 알리바이 주장을 평가절하하였다. 4시간 동안의 평의 끝에 배심원단은 두 피고인에 대하여 모두 유죄로 평결을 내렸고, 피고인들은 모두 장기간의 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중 네자의 형은 35년이었다. 네자의 변호인은 그가 무죄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반면, 스타로위츠에 대하여는 유죄라고 믿었다. 그는 스타로위츠를 수차례 면회하였고, 마침내 스타로위츠는 공범이 알버트 셔우드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검사의 협조를 얻어 당시 별건으로 오번에서 복역 중이던 셔우드를 찾아가 그로부터 완전하고도 상세한 자백을 들었다. 검사 마틴은 자백 내용을 면밀히 체크한 끝에 진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무엘 마이어스는 교도소에서 20명의 죄수들 사이에서 셔우드를 자신과 격투를 벌인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검사와 판사가 추천하는 사면 청원서가 제출되자 주지사는 사면보다는 새로운 재판을 열도록 권고하였다. 이에 따라 네자에 대하여 새로 재판이 열렸고, 사건은 기각되었다.

네자의 전과와 스타로위츠와의 관계, 목격증인들의 증언 등은 검사와 배심원들로 하여금 네자가 유죄라고 확신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마이어스는 사건 당시 극심하게 흥분 또는 동요된 상황에서 범인을 잘 관찰하거나 목격할 수 없었음에 틀림없다. 실제로 네자와 셔우드는 닮은 데가 없었다. 네자와 스타로위츠의 관계가 네자 측 증인들을 믿을 수 없도록 하였을 것이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전과에 관한 증거를 제출하는 것은 배심원들로 하여금 편견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크다. 하지만 당시 뉴욕 주 법은 전과가 누범으로 처벌하기 위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유무죄에 대한 심리가 진행 중이거나 또는 유무죄에 대한 심리가 종결된 후 어느 때라도 전과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방안이 더 공정하다. 왜냐하면 이는 양형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네자에게서 현금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유무죄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자료임에도 실제로는 간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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