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전과와 허위 알리바이의 대가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조원철 판사의 미국 오판사례는 EDWIN M.BORCHARD 예일대 교수가 1932년 미국의 오판사례들을 묶어 펴낸 'CONVICTING THE INNOCENT'를 서울중앙지법 조원철 부장판사의 번역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1922년 2월14일 밤 12시가 다 되어 오하이오 주 윌밍턴 시에서 경찰관 헨리 아담스와 에모리 맥크레이트는 도심을 순찰하다가 상가건물의 뒤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건물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희미한 실루엣을 발견하였다. 아담스가 “당신들 여기서 뭣 하는 거야”라고 묻자, “개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아담스가 그 중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 손전등을 비추자 그들은 총을 쏜 후 자동차를 타고 도망갔다. 두 경찰관 모두 총에 맞았고, 그 중 맥크레이트가 치명상을 입고 다음날 오후에 사망하였다.

아담스는 범인들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명확하게 본 것은 손전등을 비춘 사람 뿐이었다. 그 범인은 체격이 아주 좋고 짙은 눈썹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짧은 카키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러한 종류의 코트는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스타일이었다. 경찰은 즉시 일대에서 비슷한 인상착의의 사람들을 상대로 검문검색을 하였으나, 1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2월24일 클린턴 카운티의 찰스 스몰리라는 농부가 경찰관 아담스의 집을 찾아와 범인들의 인상착의에 대하여 물었다. 그는 범행이 있은 다음날 이른 아침 길을 가다가 타이어가 펑크 난 포드 쿠페 차량을 발견하였다. 그 차량에는 두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타이어를 구하고자 하였다. 차 안에는 상당한 분량의 위스키가 있었고, 그들은 스몰리에게 위스키 한 병을 주었다. 나중에 헤어지면서 그들 중 한 사람이 스몰리에게 자신들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였다. 스몰리는 그 남자들이 매주 토요일 밤에 하이랜드에 위치한 주차장에 나타난다는 정보도 제공하였다. 이에 경찰은 토요일에 현장으로 나갔으나, 그 남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자 스몰리는 경찰에 그들이 신시내티 시에 살고 있는 클래런스 맥키니와 짐 빌 리노라고 이름까지 알려왔다.

다음날 경찰은 신시내티 시로 가 현지 경찰의 협조를 받아 맥키니와 리노를 체포하여 윌밍턴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하였다. 경찰은 많은 사람들을 대면시켰는데, 그 중 랄프 문과 L. O. 카펜터는 범행이 있던 날 밤 10시와 11시 사이에 그들이 카펜터의 약국에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경찰은 맥키니에게 범인이 입고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코트를 입히고 모자를 씌운 채 불 꺼진 방에서 아담스로 하여금 사건 당시와 같이 손전등을 맥키니의 얼굴에 비추도록 하였다. 이를 통하여 아담스는 그 남자가 두 명의 범인들 중 키가 작은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건은 대배심에 회부되었고, 대배심에서 기소결정이 있었다. 맥키니와 리노는 또한 클린턴 카운티에서 주류를 불법적으로 운반한 혐의에 대하여도 기소되었다.

8월20일 맥키니에 대한 재판이 먼저 열렸다. 오하이오 주 법률에 의하면 1급 살인죄 사건은 별도로 공판을 열도록 되어 있었다. 재판은 1주간 계속되었다. 검사는 아담스의 맥키니에 대한 목격증언, 사건 당일 밤 맥키니와 리노가 윌밍턴 시에 있었다는 문과 카펜터의 증언, 사건 다음날 아침 길에서 그들을 보았다는 스몰리의 증언 등을 제시하였고, 그 밖에 12명의 증인들을 신청하였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건 당일 밤 맥키니 부부가 신시내티에 있는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았고, 리노는 그의 이웃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포커를 하고 있었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신시내티로부터 15명의 증인들이 소환되었다. 그들의 증언은 검사의 세밀하고도 효과적인 반대신문을 통하여 탄핵되었다. 그들 중 다수는 성 발렌타인 데이인 사건 당일 있었던 주요한 일들은 잘 기억하였지만, 사건이 발생한 시각 무렵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였다. 피고인은 직접 증언을 하였는데, 반대신문에서 그의 전과사실이 상세하게 드러났다. 피고인의 증언을 통하여 그가 그 동안 불법적인 주류사업에 종사하였으리라는 점을 확연히 알 수 있었는 반면, 피고인 측 증인들은 맥키니와 리노의 주된 직업이 달걀과 버터를 구매하여 신시내티에서 소매로 판매하는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피고인은 종종 며칠씩 일을 하지 아니한 채 빈둥거렸지만, 항상 많은 돈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검사는 피고인이 체포된 직후 사건 당일 밤 리노와 부부 동반으로 신시내티에서 열린 오토쇼에 참석하였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증인들을 내세웠다. 당시 리노 부인도 같은 취지로 말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 오토쇼는 15일 이전에는 열린 바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피고인과 리노 부인은 15일 밤에 오토쇼에 참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14일 밤에 참석하였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부인하였다.

배심원단에서는 유죄평결을 내렸고, 맥키니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로도 한 동안 리노에 대한 공판은 열리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주류 관련 범죄로 복역 중이었다.

몇 달 후 몇몇 젊은이들이 보안관 사무실에 찾아와 이상한 이야기를 전하였다. 루이스 밴더부트라는 부유한 가문의 19세 된 아들이 자신이 맥크레이트를 쏘아 죽였다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밴더부트의 평소 허풍떠는 습관에 비추어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고, 보안관도 마찬가지로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직무상 밴더부트를 체포하여 신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밴더부트는 자신이 맥크레이트를 쏘았음을 시인하면서 클린턴 카운티와 그린 카운티에서 행한 여타 절도 범행들까지도 털어놓았다. 나아가 그는 훔친 물건들을 숨겨둔 장소까지 밝혔다. 보안관은 그 청년이 어딘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였지만, 조사 결과 훔친 물건들이 실제로 밴더부트가 말한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계속된 조사 끝에 밴더부트의 진술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임이 밝혀졌고, 나중에 밴더부트는 맥크레이트를 살해할 당시의 공범의 이름까지 밝혔는데, 그는 19세 된 친구 월터 빙햄이었다. 빙햄은 즉시 체포되었고, 신문 끝에 그 역시 범행을 자백하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딱 1년 후인 1923년 2월14일 밴더부트와 빙햄은 대배심에 의하여 기소되었고, 그들은 2급 살인죄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그 무렵 맥키니에 대한 사건이 항소법원에 계류 중이었는데, 1923년 2월22일 판사는 재심리를 명하며 사건을 1심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틀 후인 24일 다시 열린 공판에서 검사는 공소를 취소하였고, 맥키니는 석방되었다. 맥키니는 법정을 나서기에 앞서 사건 당일 자신이 윌밍턴에 있었고, 살인 혐의를 벗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주류 판매에 대한 처벌을 피하기 위하여 알리바이를 꾸며냈다고 시인하였다.

맥키니는 잘못된 범인식별과 그럴듯한 정황증거의 희생자였다. 검사의 반대신문을 통하여 배심원들에게 불법 주류 판매의 전과가 알려졌을 때 그는 아주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쉽게 유죄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전과는 동종의 범행, 동종의 수법인 것에 한하여 당해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을 때에만 검사가 그에 관하여 피고인을 신문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까지 검사가 피고인의 전과에 대하여 신문하는 것은 배심원들에게 편견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실제로 검사는 그러한 의도를 갖기 쉽다. 맥키니는 알리바이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을 때 어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맥키니가 그 때문에 유죄판결을 자초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