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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회생, 의사의 회생

민병국 변호사(서울변호사회)

아무리 조심해도 환자는 생긴다. 건강과 질병이 함께 있는 것이 인간에게 항상 건강만 또는 질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그 질병은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도 어느 정도는 발생한다. 그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병에 걸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가 좋은 건물에 최신 MRI시설과 고가의 치과 시설을 꽉 채워 놓고, 2년째 이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가 없어서 도산하게 되면 우리는 이 의사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 건물대금과 시설대금의 은행채권자, 값 비싼 그림을 선사했던 장인장모, 제자가 의사가 되었다고 퇴직금을 빌려준 고등학교 은사, 모두 난감하여 절망하고 있을 때 이 의사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회생신청을 하면, ‘내 돈’을 떼어먹은 그 잘난 의사를 우리 모두가 호되게 비난해야 하는가.

개인이 자본과 노력을 투입하여 생산 주체가 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그 기업주체가 파산하는 일은 언제나 있어 왔다. 정직하게 노력했으나 잘 안된 것이다. 파산한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은 그 기업을 예뻐해서가 아니다. 그를 회생시키는 것이 시장과 사회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토마스 프리드만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10년 전의 예언이라서 지금의 월가를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한 것이 많지만, 설령 미국이 월가의 혼돈으로 경제적으로 실패한다 하더라도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회생’될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을 본 일이 있다. 그 원인 중의 하나가 ‘파산 제도’라고 말하고 있다. 누가 파산선고를 받았다면 “그가 죽었다”라는 반응 대신 “이제 그가 재생했다. 그가 하는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말하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사업의 실패에서 크게 배웠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독일에도 일본에도 없는 사고방식이다. 한국도 물론 그런 관용은 없다. 파산자가 새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를 위하여 투자할 수 있는 문화가 미국에만 있다고 하는 것이다. 법률문화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미국에 사는 교포가 파산 선고를 받고 주변의 친구들 돈을 떼어 먹었다는 얘기를 나는 많이 들었다. 돈을 떼인 친구들과 나는 파산 선고를 받은 교포를 질타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제2의 IMF를 눈 앞에 두고 있는 테헤란로를 걸으면서 프리드만의 렉서스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우리가 왜 도산제도에 대하여 그렇게 무관심 하였으며 혐오만 하였을까.

서울중앙지법의 통계로 개인회생신청을 한 사건의 반정도가 의사(치과의사 포함)들이라고 발표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 통계는 어느 날 “의사와 ○○○”라고 제목이 바뀔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우리 사회가 성숙한 자본주의 시장을 향하여 뒤섞이면서 ‘경제적으로 회생한’ 시장의 낙오자를 승리자로 만들 수도 있는 사고로 마음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지금 통합도산법은 개인과 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하여 ‘부활’할 수 있는 시장의 기구를 만들고 있다. 이를 이용하는 ‘의사와 ○○○’들이 절망에서 구원을 받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의사와 ○○○’가 회생 신청을 하거나 파산을 하더라도 그 잘난 자격증까지 박탈하는 일이 없도록 법을 개정해야 된다(학계에서 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는 심정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기업의 임원, 국회의원 그리고 모든 자격자가 ‘파산 선고를 받은 일이 없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활’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를 부인하는 접근방식이다. 살려주려면 다 살려주어라. 오른손과 왼쪽 다리를 절단하여 불구자로 보이게 해 놓고 재생하라고 기회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차별적 취급의 금지조항(32-2)만으로는 구제가 불가능하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