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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판결은 지켜져야 한다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미국 언론은 법원 관련 보도의 비중이 매우 높다. 이는 법원의 판결 결과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고, 이러한 관심은 결국 사법부가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직접적이고 크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 동안 미국인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은 연방대법원의 역사적 판결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얼마 전 끝난 대선의 여운이 채 가라앉지 않아서인지 2000년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결정지었던 Bush v. Gore 사건만큼 연방대법원의 영향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은 별로 없었던 것같이 느껴진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8년 전인 2000년 11월7일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그야말로 백중세를 이루어 누구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개표 결과 고어는 총 투표수에서 부시를 명백히 앞선 것은 물론이고, 실제 대선을 결정짓는 선거인단수에서도 267 대 246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야구로 치면 9회말 투아웃 만루에서 역전홈런이 가능한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야 하는데, 아직 25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플로리다 주의 개표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원칙에 따라 대선의 승패는 플로리다 주의 개표결과에 달려있는 셈이었다.

플로리다 주의 최초 개표결과는 부시가 고어를 2,909,135표 대 2,907,351표, 즉 1,784표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격차가 0.5% 이내인 경우 기계로 재검표를 해야 한다는 주법에 따라 재검표를 실시한 결과 격차는 327표 차이로 줄어들었다. 이에 고어는 다시 수작업 재검표를 청구하였다. 문제는 주법상 재검표는 7일 이내에 마쳐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주법원이 한차례 연장해 준 시한이 끝나도 재검표가 마무리되지 않자 주 국무장관은 537표차로 부시의 승리를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주대법원이 고어의 이의를 수용하여 주 전체에 걸쳐 전면적인 재검표를 실시할 것을 명령하면서 대선 결과는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에는 부시가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다. 주법원이 개표시한을 임의로 연장할 수 없으며, 각 개표소마다 수작업 개표에 관한 통일적인 판정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수작업 개표를 전면 실시할 경우 개인의 투표결과가 불평등하게 처리되는 위헌적 상황이 발생하므로 수작업 개표는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방대법원은 2000년 11월11일 구술변론을 마치고 곧바로 16시간 후에 플로리다 주법원의 개표시한 연장조치가 위법이며, 전면적 재검표는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36일만에 연방대법원이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음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연방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자 정치인들은 물론 저명한 법학자들마저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험담에 가까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그의 자서전에서 이 판결은 노예제의 폐지를 부인했던 Dred Scott 판결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대법원 판결로 남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국민들과 고어의 태도였다. 많은 법학자와 정치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작 다수의 국민들은 고어가 연방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고어는 곧바로 “국민의 단합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저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부시대통령을 존경하고 지원할 것입니다. 저를 지지했던 분들도 새 대통령을 인정하고 지지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아름다운 연설을 통해 깨끗하게 판결에 승복하였다. 어디에서도 대법원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불복종 운동이나 집단적 실력행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만약 당시 고어가 대법원 판결에 깨끗이 승복하지 않았다면 노벨상 수상의 기회도,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지지연설을 할 때 쏟아졌던 커다란 박수소리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생겼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미국인들의 법원 판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판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비판으로 이어진다. 주요한 판결이 선고되면 신문은 몇 면의 지면을 할애하여 판결 결과를 설명하고, 대선주자를 포함한 많은 정치인들도 판결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발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극렬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판결의 비판에 관한한 미국인들은 충분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판결과 법원의 권위에 대한 존중은 절대적이며 그 효력을 무시하는 실력행사로 결코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현재의 소수의견을 미래의 다수의견으로 만들기 위한 여론 형성 작업과 더불어 의회를 통한 입법적 해결에 착수한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얼마전 스티븐 브라이어 연방대법관은 미국의 경제위기에 대한 원인을 논하던 자리에서 예기치 못했던 해법을 제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54년 연방대법원이 브라운 판결(Brown v. Board of Education)을 통해 인종간 분리교육(separate but equal)이 위헌임을 선언하였음에도 수년간 일부 주정부가 이 판결을 무시한 채 흑백 분리교육을 존속시키며 연방정부와 대립했던 사례를 회고하였다. 마침내 1957년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흑인 학생 9명이 자신들이 배정받은 백인학교에 최초로 등교를 시도하자 이를 가로막으려는 다수의 폭도들에 의해 학생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고민 끝에 국가의 법질서를 회복시키고 법원의 판결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기 위해 리틀록 고등학교에 연방군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9명의 학생들은 연방군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고 당당하게 정문을 통과하였고, 국민들은 판결문의 정의가 결국은 실현된다는 것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브라이어 대법관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이런 결단이 있었기에 미국이란 나라가 굳건히 존재할 수 있었음을 회고하면서, 요즘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 위기의 본질도 결국은 법원칙의 경시와 무뎌진 법집행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브라이어 대법관의 회고를 들으며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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