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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10년의 기다림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조원철 판사의 미국 오판사례는 EDWIN M.BORCHARD 예일대 교수가 1932년 미국의 오판사례들을 묶어 펴낸 'CONVICTING THE INNOCENT'를 서울중앙지법 조원철 부장판사의 번역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 메디슨 시의 사우스 프란시스街에 마틴 렘베르거가 그의 아내와 세 자녀 알로이스(9세), 애니(7세), 마틴 주니어(6세) 및 폭스 테리어 개와 함께 살고 있었다. 1911년 9월6일 아주 이른 아침에 애니가 사라졌다. 렘베르거 부인은 경찰에서 전날 밤 10시에 애니를 창문 옆 침대에 눕혀 재웠고, 집안의 모든 문과 창문을 잠갔는데, 아침에 보니 애니의 침대는 비어 있었고, 그 옆의 창문만 잠금장치가 풀려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조사 결과 창문 바깥쪽 마당에 유리창 일부와 지지대가 부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즉각적으로 애니와 유괴범을 찾기 위하여 수사가 개시되었지만 확실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 경찰견을 투입하여 애니의 옷과 침대의 냄새를 맡게 하자, 개는 냄새를 따라 가다가 매노나 호수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그 개는 같은 코스를 반복하여 따라갔다. 경찰은 애니의 시신이 호수에 유기된 것으로 보고 시민들에게 협조를 부탁하였고, 많은 시민들이 수색에 참여한 끝에 애니의 시신이 호수에서 발견되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기금으로 노련한 탐정 에드워드 L. 보이어가 고용되었고, 그가 문제의 창문을 조사한 결과, 유리창에 난 구멍이 작아 성인 여자라도 그 구멍을 통하여 창문을 열고 아이를 꺼낼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써 일단의 소년들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이를 전제로 조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 후 경찰은 많은 단서들을 검토한 끝에 이웃에 살고 있던 존 A. 존슨을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술집을 전전하며 술을 얻어 마시고 빈둥거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지만 이들을 돌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자 아이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탐정 보이어의 조력을 받아 철저하게 심문하였으나, 그는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하였다. 사건 전날 밤 9시에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아침 6시 이전에는 집에서 나간 적이 없다는 아내의 알리바이 진술도 있었다. 그녀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딸이 아파 밤새 옆에서 간호하였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 몰래 집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딸들의 진술도 마찬가지였다.

9월13일 존슨은 판사 앞에 소환되었고, 그 자리에서도 무죄를 주장하자, 판사는 보석금을 1만 달러로 정하여 보석결정을 하는 한편, 에머슨 엘라를 변호인으로 선정하였다. 그날 경찰서 유치장에 돌아온 존슨은 뜻밖에도 범행을 자백하면서 당장 교도소로 보내달라고 요구하였다. 사건이 발생한 날 밤에 가족들 몰래 집을 빠져나와 주점으로 술을 마시러 가다가 갑자기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혀 렘베르거 집에 다가가 깨진 유리창을 통하여 손을 집어넣어 창문을 올린 다음 애니를 들어내었는데, 차가운 밤 공기에 잠이 깬 애니가 소리를 지르자 달아나면서 주먹으로 마구 때려 실신시켰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겁이 나 애니를 호수에 던져 넣고 집으로 돌아와 몰래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변호인은 진술의 심각성에 대하여 설명하였지만, 존슨은 자신의 자백을 고집하며 끝내 유죄 청원을 하였다. 이에 판사는 존슨에게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하였다. 그날 존슨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법정의 쪽문을 통하여 밖으로 빠져나와 차량 안에서도 담요를 덮어쓴 채 교도소로 호송되었다. 교도소에 도착하자 존슨은 크게 안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존슨은 교도소에 수감되자마자 자신의 무고함과 아울러 폭도들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유죄를 인정하였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작성하여 외부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존슨의 과거 기록에 비추어 보아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의 청원은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1920년 8월 전직 판사인 A. O. 스톨런은 존슨의 편지를 받고 그 사건에 관심을 갖고 조사를 하게 되었다. 스톨런은 존슨을 면회하고 사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그의 무죄를 확신하게 되었다. 스톨런의 청원이 있자, 1921년 9월14일 주지사는 루퍼스 B. 스미스를 위원으로 지명하여 사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청문절차를 진행하도록 하였다. 6일 동안 계속된 청문회에서 스톨런은 존슨을 변호하였고, 시민들과 언론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스톨런은 유리창에 난 구멍이 너무 작아 성인 남자의 손이 들어갈 수 없었고, 집이 넓지 않아 만약 침입자가 있었다면 반드시 사람이나 개를 깨웠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존슨은 증인으로 출석해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한 사실을 증언하였다. 나아가 경찰은 로프에 묶여 총탄 자국이 벌집같이 나 있고 칼로 베이고 찔린 흑인의 린치 사진을 존슨에게 보여주었다. 이는 존슨의 불안정한 정신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경찰과 탐정 보이어는 존슨에게 경찰서 바깥에 폭도들이 몰려와 그를 총으로 쏘아버릴 기회만 노리고 있다고 거짓말 하면서 창문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하는 등의 계략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존슨은 린치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보이어가 충고한 대로 일단 자백을 하고 교도소에 들어가 폭도들의 린치로부터 벗어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검사는 존슨이 유죄를 인정할 당시 법정에 있었던 관리들과 변호인이었던 에머슨 엘라를 증인으로 세워 존슨이 겁을 먹은 기색을 보인 바가 없다는 증언을 끌어내어 존슨의 주장을 탄핵하였다. 하지만 당시 검사였던 넬슨은 존슨이 무죄라고 보고 그에게 범행을 하지 않았다면 유죄를 인정하지 말도록 종용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청문회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스톨런은 익명의 편지와 전화를 받았다. 웨스트존슨街에 살고 있던 메이 소렌슨은 살인자로부터 보호된다면 누가 애니를 죽였는지 말하겠다고 제의하였다. 스톨런은 즉시 호프만 판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심야에 법정을 열어 소렌슨의 증언을 들었다.

청문회 마지막 날 소렌슨은 증인으로 소환되었다. 청문회장에 운집한 사람들은 소렌슨의 증언을 듣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의 증언은 이렇다. 그녀는 렘베르거 부인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애니가 실종된 날 그녀가 위로 차 찾아갔을 때 렘베르거 부인이 부엌에서 애니의 피 묻은 잠옷을 태우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핏자국은 침대 시트와 베갯잇에도 있었다. 렘베르거 부인은 비통하게 울다가 끝내는 실신하였다. 그녀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마틴, 마틴, 왜 그랬어?”라고 울부짖었다. 애니의 장례식날 큰 아들인 알로이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저녁에 애니가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갈 때 마침 술에 만취된 렘베르거가 부지깽이를 달라고 하였지만 애니가 이를 찾지 못하자 술기운에 화를 벌컥 내며 맥주병으로 애니의 귀 뒤를 가격하여 쓰러뜨렸고, 침대에 옮겨진 애니는 결국 사망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스미스 위원은 존슨이 애니를 살해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주지사에게 제출했고, 1922년 2월17일 주지사는 존슨을 사면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경찰은 지역사회로부터 하루 빨리 범인을 잡아내라는 커다란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존슨을 범죄와 결부시킬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었음에도, 희생양에 대한 요구가 약자를 범인으로 몰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듯한 용의자가 체포되었을 때, 특히 그의 전력이 좋지 않을 때 사회는 유죄판결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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