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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토론

[찬반토론] 플리바게닝 도입에 대하여 - 반대

정미화 변호사(법무법인 남산)

최근 검찰총장이 창설 60주년 기념식에서 플리바게닝과 사법방해죄 등 형사사법제도 개선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이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플리바게닝 도입에 관해 찬반의견을 들어본다.


1. 제도도입의 목적

최근에 제기되는 유죄인정 승인제도에 관한 논의는 수사절차에서 변호사의 참여확대, 피의자의 진술·협력 거부 사례의 빈발에 대한 수사력 보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므로 인권보장, 사법정의, 형사정책 등의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가 예상된다.

2. 유죄인정 승인제도의 내용

현재 제시된 제도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플리바게닝에 버금가는 ‘유죄답변 및 승인절차’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는 ‘검사와 피의자 또는 변호인이 유죄로 할 부분, 구형량, 기소하지 않을 부분, 피해자나 국가에 대한 배상 등을 서면으로 합의한 후 검사가 법원에 신청하면 법원이 피고인을 상대로 심문하여 승인여부를 결정하고 승인시에는 그 기일 또는 다음 기일에 형을 정하는 절차’로 소개되고 있다. 자백협상, 기소협상, 유죄협상, 양형협상 등 수사과정과 공판과정 등에 관한 전반적인 플리바게닝의 요소를 포괄하는 내용이다. 자백과 유죄답변을 분리하여 유죄인정에 민사소송에서의 청구인락과 유사한 소송행위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자백의 보강법칙을 배제하고 법원에 의한 유죄 및 양형판단을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제도 도입의 실무적 함의

위 제도가 도입되면 형사절차에 관한 검사의 권한과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다. 즉, 검사는 피의자와 협상하여 공범에 관한 진술을 받아 낼 수 있고, 수개의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의 입증이나 공소유지가 어려운 피의자 혹은 피고인으로부터 중하지 않은 범죄 혹은 여죄의 유죄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유죄인정 협상은 검사와 피고인 혹은 변호인 간에 내사 혹은 수사단계에서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며, 법원은 사후에 이를 승인하거나 불승인하는 제한적인 관여를 하게 되고, 협상의 결과는 대부분 검사가 의심하고 있는 범죄사실보다 한 단계 낮거나 가벼운 처벌로 이어진다. 양형기준제도가 시행되는 경우 유죄협상의 결과는 법관의 재량권을 결정적으로 제한하게 되므로 억울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검찰의 유죄협상 요청을 거부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반면에 기업범죄나 조직범죄 혹은 다중의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유죄협상의 효용이 크다. 유죄협상도 협상의 하나인 만큼 거래의 조건을 많이 보유한 자가 우월한 협상력을 보유하므로 다수의 범죄나 중죄를 저지르는 등 거래조건이 많거나 재원이 풍부한 피의자는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다. 법원이 승인심사 단계에서 실질적인 심리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형사변론은 검사실에서의 협상에 집중되게 될 것이다.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한 증거확보보다는 협상력강화를 위한 피의정보나 수사정보의 수집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대다수의 경죄 피의자들은 정식재판을 요구하기보다 검사의 선의에 호소하며 이루어진 유죄협상의 결과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권 외에 유죄협상권까지 보유하게 되면 형사절차의 중심은 법정에서 검사실로 바뀌게 된다. 이 경우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피해자나 일반국민의 사법제도에 관한 불신이 심각해질 수 있다.

4. 제도의 도입형태

유죄인정 승인제도는 미국에 있어서도 주마다 그 제도가 다르다. 대체로는 양형협상을 전제로 한 기소협상이 그 근간이 되고, 법원은 수동적인 심판자의 입장에서 검사와 피의자 혹은 피고인이 기소전단계, 기소단계, 공판과정 등에서 협상한 내용을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 유죄협상이 이루어지면 그 이후는 양형기준표를 적용하는 형식적인 절차가 된다. 대체로 90% 이상의 사건이 이 제도에 의하여 처리된다. 독일도 형사절차에 플리바게닝적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의 약식명령제도와 거의 유사한 형사명령제도와 실무상 통용되는 유죄답변제도가 그것이다. 중하지 않은 범죄의 30% 정도가 서면심리에 의한 형사명령제도에 의하여 처리된다. 형사소송의 원칙에 따라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에 인정되는 실무상의 유죄답변 제도는 협상의 내용이 기록으로 공개되고 관계인에게 통지된다. 프랑스도 중하지 않은 범죄에 관하여 피의자가 혐의사실을 인정하거나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 검사와 피의자의 양형제안이 지방법원장의 승인을 거쳐 확정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일종의 신속처리절차인데 절차의 성격상 소년사건이나 언론겵ㅔ죦과실치사 등의 경죄에는 그 적용이 배제된다. 이탈리아도 경죄에 관한 협상내용을 법관에게 제출하여 2년 이하의 처벌을 받게 하는 협상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외에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다수의 대륙법계 국가들이 플리바게닝적 요소를 형사소송법에 도입하고 있다. 대부분 경죄에 적용되며, 신속절차를 도모하는 한편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법관통제를 그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당사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에서 행하여지는 유죄인정협상 및 승인절차와는 차이가 크다.

5. 결론

우리나라는 약식명령제도와 간이공판절차를 통하여 플리바게닝적 요소의 상당부분을 형사소송법의 체계내에 도입해 놓고 있으므로 선택과 집중의 강화를 통하여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신속처리절차가 아닌 별도의 유죄인정승인절차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 당사자주의와 배심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내사·수사·기소·공판에 관한 전반적인 권한을 포괄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검찰에게 국민과 개별적으로 협상하여 기소여부와 양형까지 결정하도록 할 수 있는 내용으로 논의의 방향을 잡는 것은 무리이다. 이론상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실무상으로 제시된 제도가 도입되면 형사재판제도가 형해화될 수 있고, 전관예우의 횡행·피해자 보호의 미흡·기업이나 정치범죄의 자의적 처리·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 등에 관한 심각한 문제의 발생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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