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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오바마 시대의 미국 사법부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링컨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1860년 일리노이주 초선 하원의원이었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뒤 약 150년 후에 바로 그 흑인의 후손인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당선이 확정되던 날 밤 자정, 그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수십만명의 청중 앞에 선 오바마 당선자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던 국가적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의 미국을 지켜낸 링컨 대통령을 회고하면서 다시 한번 모든 미국인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할 것을 호소하였다. 정치신인 오바마가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링컨의 땅, 하나의 미국”을 역설하면서 단숨에 대권주자로 부상한 지 불과 4년 만의 일이었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언론들은 벌써부터 그가 사법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에게는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사법부의 보수화 혁명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연방법원 판사 중 1/3을 새로 임명했으며, 그 대부분이 젊은 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퇴임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사법부에 대한 보수주의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케인은 자신이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얼리토 대법관의 인준에 동의했음을 주요한 업적으로 내세우면서, 적어도 판사 지명에 있어서는 부시 대통령의 인선기준을 자신도 따르겠다고 약속하였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어느 대의원이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얼리토 대법관의 사진을 배경으로 ‘Thanks W’라고 쓰여진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자 일부에서는 얼마나 내세울 업적이 없었으면 대법관 지명을 감사하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미국 국민들이 연방대법관의 임명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이었다고 생각된다.

언론들은 이제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대법원 뿐만 아니라 20년 넘게 공화당이 지배해온 연방법원의 균형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연방법원 판사들을 보수와 진보의 성향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나 대략 60 대 40 정도로 보수주의 법관의 수가 우세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킹스 연구소는 오바마대통령이 2013년까지는 민주당 우위의 연방법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15석의 연방판사직을 공석으로 남기고 퇴임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상원과 하원 선거를 압승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계산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연방대법관에 쏠려 있다. 이미 필자가 이전에 기고를 통해 밝혔 듯이 진보파를 대표하는 88세의 스티븐스, 75세의 긴스버그 대법관이 오바마 대통령 첫 임기중에 사퇴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고, 중도파 케네디 대법관과 보수파 스칼리아 대법관도 모두 72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사퇴의 폭이 예상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CBS 뉴스는 벌써부터 새 대법관 후보로서 48세이고 여성이며 미국 역사상 최초 흑인 대법관인 마샬 대법관의 로클럭과 클린턴 행정부 관료를 지낸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하버드 로스쿨 학장을 차기 대법관 후보로 거론하기도 하고, 본인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법률가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대법관 시나리오도 여전히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보수파 대법관의 사퇴를 예상하기에는 이르고, 진보주의 대법관이 퇴임하더라도 그 후임으로 다시 온건한 진보주의 대법관의 지명이 예상됨에 따라 적어도 오바마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중에는 대법원의 구조적 틀을 바꾸는 큰 변화가 예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탐 골드스타인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한편 이번 선거 과정에서 가장 언론에 많이 오르내렸던 연방대법원 판결은 바로 1973년 낙태할 권리를 프라이버시권의 일종으로 인정한 Roe v. Wade 판결이었다. 이 판결은 법관의 보수와 진보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서의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기에 가장 유명한 대법원 판결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새라 패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는 어느 언론으로부터 Roe v. Wade 판결 이외에 본인이 반대하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어떤 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무런 답변을 못한 채 당황해 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상당기간 자질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이 판결과 관련한 오바마의 언급도 흥미롭다. 오바마는 2007년의 민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는 “프라이버시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대법관으로 임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잘라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대선 직전에 열린 TV토론에서는 “나는 개인적으로 Roe v. Wade 판결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대법관의 임명에 있어 이 판결에 대한 입장을 결정적인 기준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완화된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기존 지지층인 낙태 찬성론자들의 반발이 있자, 그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추가로 발표했다. “나는 판사를 임명함에 있어 어떠한 리트머스 테스트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법관 후보자들이 헌법이 보장한 모든 미국인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법률판단에 개인적 주관을 반영시키려는 유혹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Roe v. Wade 판결과 같이 이미 국민 정서에 확고히 자리잡은 법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좀 더 엄격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고 봅니다. 저는 미국 보통사람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후보자들은 법관으로 인준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월 사설을 통해 오바마 후보 지지를 밝히면서 “오바마는 신중하지만 우유부단하지 않고, 말을 잘하면서도 실질과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반대 견해를 경청한다. 위기의 순간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오바마의 대법관 임명에 관한 언급을 보더라도 정치신인 같지 않은 신중함과 차분함이 돋보인다. 이제는 그 실질과 내용을 보여줄 차례이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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