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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31호실의 열쇠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조원철 판사의 미국 오판사례는 EDWIN M.BORCHARD 예일대 교수가 1932년 미국의 오판사례들을 묶어 펴낸 'CONVICTING THE INNOCENT'를 서울중앙지법 조원철 부장판사의 번역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1891년 4월24일 아침 9시에 뉴욕 맨하탄의 유흥가에 위치한 허름한 이스트리버 호텔에서 직원이 객실을 돌며 점검을 하였다. 대부분의 방들은 손님이 떠났지만 31호실은 잠겨 있었다. 여러 번 노크를 하여도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 직원은 갖고 있던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난자된 여성의 사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피해자는 ‘늙은 셰익스피어’라는 별명을 가진 60세의 매춘여성으로 전직 여배우였는데, 술에 취할 때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대하여 이야기한데서 그와 같은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녀의 본명은 캐리 브라운이었다.

직원은 흥분하여 1층으로 뛰어 내려가 경찰에 신고하였고, 곧바로 출동한 경찰은 신문기자들을 대동하였다. 검시관이 사체를 조사한 결과 피해자는 교살되었고 주방용 칼로 잔인하게 난자되었다. 피해자의 넓적다리에는 십자가 표지가 그어져 있었다. 이 살인사건은 뉴욕 경찰 내에서 미스터리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뛰어난 실적을 보인 수석 조사관 토마스 번즈에게 맡겨졌다. 사체의 십자가 표지는 그 사건에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는 1887. 12.부터 1891. 1.까지 영국 런던에서 9명의 거리의 여성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마 잭’의 표지였다. 뉴욕 경찰 당국은 전에 만약 그 살인마가 뉴욕에 나타나 범행을 한다면 36시간 내로 그를 체포할 수 있다고 허풍을 떨며 런던 경찰을 조롱한 바 있었다.

다음날 뉴욕의 신문들은 살인마 잭의 도착을 머리기사로 올렸다. 수사 결과 피해자는 30세 가량의 남자와 함께 밤 11시경에 호텔에 들어왔고, 그 남자는 프런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C. 닉’이라고 기재하였다. 그들은 맥주를 주문하기도 하였다. 호텔 직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 남자는 중키의 몸집이 단단해 보이는 금발머리의 선원이라는 것이었다. 경찰은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허사였다.

피해자와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 메리 앤 로페츠가 있었는데그녀에게는 주위에 ‘프랑스인’으로 알려진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그는 머리칼이 확실히 거무스름한 점을 제외하고는 사건 당일 피해자와 함께 투숙한 사람의 용모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체포되었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알제리 아랍어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알제리계의 프랑스인이었고, 이름은 아밀 벤 알리였다.

4월30일 번즈 조사관은 몇몇 신문기자들에게 알리의 혐의가 완벽하여 경찰은 그가 살인자라고 확신한다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알리가 사건 당일 피해자와 함께 지낸 남자가 아닌 것은 맞지만, 그날 밤 알리는 복도 건너 33호실에 투숙하였고, 문제의 남자가 떠난 후 알리가 몰래 31호실에 침입하여 금품을 빼앗고 피해자를 살해한 다음 다시 33호실로 갔다는 것이다. 번즈 조사관의 설명에 의하면 알리가 범인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31호실과 33호실 사이의 복도에 떨어진 핏방울 자국, 33호실 문 안팎, 바닥, 의자, 침구 등에 남겨진 혈흔 등이 있었다. 혈흔은 알리의 양말과 손톱 밑에서도 발견되었고, 알리는 이에 대하여 변명을 했지만, 조사 결과 거짓으로 판명됐다고 하였다.

피해자의 동료 매춘부들 중 몇몇은 알리가 자주 피해자와 함께 문제의 31호실에서 지냈다고 하였다. 그날 알리는 판사 앞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고 정식으로 구금되었다.

그 해 6월24일 알리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앞서 언급되었던 증거들 이외에도 알리가 평소 지저분한 생활을 하였고, 특히 이스트리버 호텔에 자주 머물렀으며, 그곳에서 밤에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기웃거렸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뉴욕의 하층민들이 증인으로 많이 소환되었다. 하지만 반대신문시 이러한 증인들의 신빙성은 철저히 탄핵되었다.

재판은 7월1일 검사가 필라델피아의 포먼드 박사를 전문가증인으로 출석시켰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포먼드 박사는 31호실 침대, 복도, 33호실 문 및 내부, 알리의 양말 등에서 발견된 혈흔 모두에 동일한 장(腸)내용물 성분이 들어 있다고 증언하였다. 이는 혈흔들 모두가 사체의 복부에서 흐른 피라는 직접적인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포먼드 박사는 검사결과의 정확성에 대하여 목숨까지도 걸 용의가 있다고 자신하였다. 오스틴 프린트 박사와 사이러스 에드슨 박사가 포먼드 박사의 증언을 뒷받침하였고, 이들 증언들은 알리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7월2일 변호인은 피고인 알리를 증인으로 세웠는데, 알리는 때때로 영어를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가, 때로는 모국어로 통역된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였다. 하지만 그는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였다.
변호인은 몇몇 의학전문가들을 증인으로 신청하여 문제의 혈흔들이 모두 장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음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들 증인들 모두 포먼드 박사가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고, 자신들은 포먼드 박사의 견해를 존중한다고 증언하였다.

검사는 알리가 새벽 5시에 호텔을 나갔고, 당시 그가 마치 좀도둑처럼 살금살금 빠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도 법정에 세웠다.

배심원단은 2급살인죄로 유죄평결을 내렸고, 7월10일 알리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자 새로운 증거에 기한 알리의 사면청원서가 주지사에게 제출되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피해자와 함께 투숙하였던 문제의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뉴저지 주 크랜포드에서 수 주간 일을 하였고, 사건 당일 밤 자리를 비웠다가, 그로부터 며칠 후 아주 사라졌으며, 그의 방에서 ‘31’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열쇠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스트리버 호텔의 열쇠들과 일치하는 것임이 확인되었다. 알리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는 31호실과 33호실 사이의 일련의 혈흔들이었는데, 청원서에는 검시관에 앞서 현장에 도착하여 조사를 하면서 두 방의 문과 복도에서 아무런 혈흔도 발견하지 못하였고, 나중에 발견된 혈흔들은 아마도 검시관과 기자들이 도착한 후 사체가 조사되고 옮겨질 때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으로 조사에 참여한 경찰관이 작성한 선서진술서 등 주지사의 표현에 의하면 상당히 신뢰할 만한 객관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의 선서진술서들이 첨부되었다. 1902년 4월16일 알리는 석방되어 고향 알제리로 돌아갔다.

알리에 대한 유죄판결은 런던 경찰을 곤란하게 한 살인범이 뉴욕에서는 무사히 빠져나갈 수 없음을 보여주려고 한 뉴욕 경찰의 과욕에 전적으로 기인한다. 그들은 알리를 무력한 희생양으로 삼았다. 복도와 33호실 문에서 발견된 혈흔들은 검시 당시 부주의한 사람들에 의하여 남겨졌을 수도 있지만, 알리에게서 발견된 혈흔들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몇몇 기자들은 애당초 알리에게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발견되었더라도 살인사건과는 무관하였으리라고 추측하였다.

전문가들의 증언 역시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잘 짜인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커다란 의심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사건에 2급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평결은 명백히 유죄라는 믿음과 무죄라는 믿음 사이의 타협의 결과였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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