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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무죄의 입증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조원철 판사의 미국 오판사례는 EDWIN M.BORCHARD 예일대 교수가 1932년 미국의 오판사례들을 묶어 펴낸 'CONVICTING THE INNOCENT'를 서울중앙지법 조원철 부장판사의 번역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일리노이 주 동(東)세인루이스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12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인클레어 카운티에 프리버그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1924년 8월23일 오후 2시 15분경 프리버그의 퍼스트내셔널은행에 권총강도가 들었다. 6명의 범인이 차를 은행 앞에 대고 그 중 4명이 리볼버 권총으로 무장한 채 은행 안으로 들어가 은행장 러셀 E. 해밀을 지하 금고에 가두고 여직원 수지 울프, 미니 홀스트, 엠마 울프 등을 에워싼 다음 현찰로 1만 불 이상을 강탈한 다음 차를 타고 페이엇빌 쪽으로 달아났다.

경찰은 즉시 그 차를 추적하여 미시시피 강까지 갔는데, 범인들이 타고 간 차량은 그곳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강탈된 돈 중 일부는 5불 및 10불짜리 신권이었는데, 아직 일반에 유통되지 않아 일련번호 그대로 묶인 다발이었다. 이에 따라 인접한 여러 주에 걸쳐 은행 업무망을 통하여 이들 신권에 관한 정보가 전파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중 일부가 아칸소 주 존스보로에 위치한 은행에 몇 장씩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를 단서로 경찰은 제임스 브린 및 랠프 사우써드를 체포하였다. 강탈된 돈 중 상당 부분이 이들 두 사람에게서 나왔고, 이들은 바로 세인클레어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무렵 미주리 주 세인루이스 경찰 당국이 일리노이 주 경찰에 플로이드 플러드라는 운전기사를 체포하였는데, 그가 은행 강도범 중 한 명에 대한 묘사와 일치한다고 알려 왔다. 플러드가 어떻게 인지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를 체포한 경찰은 플러드의 변호인에게 비록 그가 전과는 없지만 불량배이기 때문에 체포되었다고 말하였다.

플러드는 자신을 체포한 경찰이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적개심을 품고는 애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거라고 위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미주리 주에서는 플러드의 체포와 관련하여 기소 등의 후속절차가 이루어진 바 없다. 경찰은 단지 일리노이 경찰 당국에 플러드가 프리버그 은행강도 중 한 사람의 묘사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통지하였을 뿐이다.

이에 따라 은행여직원 수지 울프와 엠마 울프가 용의자를 확인하기 위하여 세인루이스로 왔다. 그들은 경찰로부터 범인 중 한 명이 체포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경찰은 플러드에게 코트 깃을 세우고 그의 것도 아닌 캡 모자를 눈 위까지 눌러 쓴 채 손을 앞으로 뻗어 “손들고 꼼짝 마”라고 외치도록 시켰다.

미주리 주 현지 경찰은 범인 중의 한 사람이 그런 옷차림으로 그렇게 행동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두 명의 여성은 플러드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범인이라고 지목하였다.

플러드는 브린 및 사우써드와 함께 강도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은 1924년 12월2일부터 5일까지 열렸다. 브린과 사우써드의 경우에는 다투어질 수 없는 증거들이 제시되었다. 은행장을 비롯한 증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브린은 은행장을 지하 금고에 가둔 범인이고, 사우써드는 차량 운전자로 지목되었다. 은행장은 플러드를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은행여직원들은 단정적으로 플러드를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하지만 브린과 사우써드가 범행 전날 밤 프리버그 부근에서 캠핑을 하던 일단의 남자들 중에 있었다고 증언한 다른 많은 증인들 중 단지 두 사람만이 플러드가 그들 중에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1년 이상 일리노이에는 가 본 적이 없다는 플러드의 주장에 따라 그의 변호인은 알리바이 주장을 하였다. 플러드는 선서를 하고 사건 당일 오전 9시 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집 뒤 차고에 가 기계 일을 하다가 12시 30분에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차고에 가 2시 30분까지 일을 하였고, 3시 30분에 택시회사로 가 4시에 택시를 끌고 나왔다고 증언하였다. 그의 증언은 부모, 친척 아주머니, 사촌, 몇몇 이웃사람들과 택시회사의 피용자들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알리바이 증언에 별 신빙성을 두지 않은 것 같다. 배심원들은 브린과 사우써드 뿐만 아니라 플러드에 대하여도 유죄평결을 내렸다. 그 해 12월18일 새로운 심리에 대한 신청이 기각되었고, 플러드는 단기 10년형에서 장기 무기형까지를 선고받았다.

플러드의 변호인이 항소를 준비하는 중에 공동피고인이었던 브린이 면담을 요청하였다. 브린과 사우써드는 플러드의 변호인에게 범행에서의 자신들의 역할과 나머지 공범 4명의 신원에 대하여 자백을 하면서 자신들은 플러드를 알지도 못한다고 말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오하이오에서 두 명의 공범이 추가로 체포되었고, 그들은 6명의 범인들이 브린, 사우써드, 존 리용, 벤저민 잉그럼, 아서 리처드슨, 브라이스 맥코넬이라고 진술하였다. 그들은 플러드에 대하여 들어본 적조차 없다는 내용으로 선서진술서를 작성하였다. 수지와 엠마 울프는 이러한 소식을 듣자 자신들이 범인을 잘못 식별하였을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변호인은 1년 이상 플러드의 사면을 위하여 애를 썼지만, 은행가협회의 반대에 부딪혀 6명의 범인들이 법정에서 범행을 시인하고 그들 모두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926년 1월21일에야 주지사는 플러드를 사면하였다. 미주리 주 세인루이스 경찰 당국이 다른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플러드는 단지 범인의 용모와 비슷하다는 의심을 받았을 뿐임에도, 경찰이 목격증인들에게 범인 중 한 명이 잡혔다고 말하였고, 나아가 플러드를 범인과 같이 치장시켜 범인이 하였던 행동을 그대로 취하도록 한 것은 플러드가 범인이라는 아주 강력한 암시와 다름이 없다. 사건 당시 플러드가 미주리 주 세인루이스에 있었다는 많은 알리바이 증언이 있었음에도, 배심원들은 목격증인들의 증언을 믿는 쪽을 택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강력범죄에 있어서 피해자에 의한 범인식별에 한결 더 비중이 두어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플러드는 모든 범인들이 체포되어 그들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됨으로써 플러드가 범인일 가능성이 모두 소거(消去)된 후에야 무죄를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