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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통신] (17) 유도신문(誘導訊問)

권오곤 UN ICTY 재판관

1. 글머리에

예전의 증인신문은 증인이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담은 ‘증인신문 사항’을 당사자가 미리 제출하여, 이에 따라 증인에게 그대로 묻고, 증인은 이에 대해 “예, 아니오”로만 답하도록 한 다음, 참여 사무관은 매 질문마다 증인의 답을 O, X로 표시하였다가 이를 기초로 증인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것이 실무상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예전 속기가 쉽지 않던 시절, 그 많은 사건의 증인신문조서를 작성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편법이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유도신문 금지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증인신문 사항은 상대방 및 법원에 대한 증언내용의 고지를 위한 것일 뿐, 조서 작성의 편의를 위한 유도신문을 허용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2. 유도신문 금지의 원칙

유도신문(leading question)은 대답을 암시하거나 질문자가 원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질문을 말한다. 우리의 형사소송규칙 제75조 제2항은 “주신문에 있어서는 유도신문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함으로써(민사소송규칙 제91조도 마찬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영미법에서 유래한 유도신문 금지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다만 이에 위반한 증인신문의 경우에도 증언 자체의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증명력에 영향을 미치게 될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유도신문에 해당하는 질문이 있는 경우 재판장이 이를 직권으로 제지할 수도 있지만(형사소송규칙 제75조 제3항 참조), 실무상으로는 상대방의 이의 제기를 기다려 판단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3. 유도신문이 허용되는 경우

유도신문은 당해 증인을 신청한 당사자가 신문하는 주신문과 재주신문에서 원칙적으로 금지될 뿐이고, 반대신문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허용된다. 형사소송규칙 제76조 제2항도 이를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주신문이나 재주신문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에는 유도신문이 허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선 첫째로, 사건의 쟁점과는 직접 관계없는 배경사실이나 당사자 사이의 다툼이 없는 사실에 관하여는 유도신문이 허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형사소송규칙 제75조 제2항 제1호 및 제2호도 이를 규정하고 있다.

둘째로, 증인이 법정 증언 시에 이르러 종전의 진술을 바꿔 당해 당사자에게 적대적으로 된 경우에도 유도신문이 허용된다. 형사소송규칙 제75조 제2항 제3호도 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적대적 증인(hostile witness)에 대하여는 법원에 그 사정을 소명한 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유도신문을 할 수 있고, 기타의 방법으로 당해 증인의 법정 증언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한 증인신문이 허용된다.

4. 진술조서, 진술서의 제시와 유도신문

유도신문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증인에 대하여 그가 종전에 작성한 진술서나 그에 대한 진술조서 등을 제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유도신문에 해당한다. 질문자가 원하는 대답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미법상 증인의 법정 증언과 부합하는 종전의 진술서(prior consistent statement)는 당사자 사이의 증거 개시(開示) 대상일 뿐, 증거로 제출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서술한 바와 같다(2007년 2월22일자 법률신문, 헤이그통신 제5화: 증인 진술서의 증거능력 참조). 다만, 영미법에 있어서도 적대적 증인의 법정 증언을 탄핵하기 위해서, 또는 증인이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 증인의 기억을 되찾게 하기 위해서, 증인의 종전 진술서를 제시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증인의 법정 증언이 증거로 되는 것일 뿐, 종전의 진술서 자체가 그 내용의 진실성을 위해서 증거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이곳 ICTY에서는 영미법과 대륙법의 절충적 제도로서, 증인이 법정에 출석하여 종전의 진술서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반대신문에 응하는 경우에는, 당해 증인에 대한 주신문에 갈음하여 그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나, 이러한 증거 채택에는 재판부의 허가를 요하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권리를 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실무상 재판부로서는 사안의 핵심 쟁점 등에 관하여는 이러한 형식의 증거 채택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5. 맺으면서

형사소송규칙 제75조 제2항 제4호는 유도신문이 허용되는 경우로서 ‘증인이 종전의 진술과 상반되는 진술을 하는 때에 그 종전 진술에 관한 신문의 경우’를 들고 있다.

이를 반대해석하면, 증인이 종전의 진술과 상반되는 진술을 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종전 진술을 무작정 제시하는 것은 유도신문에 해당한다는 취지라고 볼 여지도 있다.

우리의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 및 제5항은 원진술자가 진술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반대신문에 응하는 경우 그 진술조서 또는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지만, ICTY에서의 제도 및 실무에 준하여 사안의 핵심적인 쟁점에 대하여서는 재판부의 재량을 발휘하여 종전 진술서를 제시함이 없이 처음부터 증인으로 하여금 생생하게(live) 증언하도록 하는 운용의 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유도신문을 금지하는 것은, 결국은 실체발견을 위한 최상의 증거를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