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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음란물, 여성, 그리고 청소년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대)

1980년을 전후하여 성적 표현물에 대해 전에는 별로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지 않던 여권주의자그룹(feminist group)에 의해 새로운 공격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들은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자꾸 열등한 성적 대상으로 보게 하므로 일종의 성차별을 전파시킨다고 주장하면서, 많은 시의회들에서 반(反)포르노그래피 자치법규들의 제정에 앞장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인디애나폴리스시였다. 이 반 포르노그래피 자치법규들은 성적 표현물을 여성을 예속시키거나 비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고, 전자의 성적 표현물만 음란한 것으로 금하고 있었다.

1986년에 내려진 American Booksellers Association, Inc. v. Hudnut(475 US 1001) 판결의 주된 논점은 표현물의 이러한 여성비하적 내용에 근거해 그 표현물의 규제여부에 차별을 두는 시조례들이 수정헌법 제1조 위반으로 위헌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인디애나폴리스시는 포르노그래피를 “여성을 차별하고, 다른 차별의 해소를 위해 사용되는 행정적·사법적 방법을 통해 시정될 수 있는 관행”이라고 정의하는 자치법규를 제정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 포르노그래피를 “그림이나 언어를 통해 생생하고 노골적으로 여성의 성적 종속을 표현한 것”이라 정의하고 이 정의를 만족시키는 몇 가지 예들을 나열했다.

여성을 성적 고통과 굴욕을 즐기는 대상으로 묘사한다든지, 강간을 통해 성적 쾌락을 경험하는 성적 대상으로 그린다든지, 혹은 여성을 지배나 정복의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었다. 이에 미국서적판매자협회(American Book-sellers Association, Inc.)는 그 조례가 ‘표현의 내용’을 근거로 차별을 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라 주장하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는 연방 2심인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루어졌다.

연방항소법원의 Easterbrook판사에 의해 쓰여진 판결은 표현물의 내용에 근거해 그 표현물의 규제여부에 차별을 두는 시조례들은 내용중립적(content-neutral)이지 못하기 때문에 수정헌법 제1조 위반으로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인디애나폴리스시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여성을 묘사하는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이미 결정했다. 그 표현의 문학적 혹은 예술적 가치와는 전혀 관계없이 평등의 입장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표현은 허락되고 성적 종속의 입장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표현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용인할 수 없는 사상의 통제다. 시조례가 정의한 포르노그래피들이 여성의 종속을 영속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입법의 전제들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 시조례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한 표현이 종속을 영속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표현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기초는 정부가 잘못됐다고 보거나 혹은 심지어 증오하는 의견들조차도 퍼뜨릴 절대적인 권리가 시민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표현은 그것이 얼마나 교활한 것인가에 관계없이 보호된다. 따라서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이러한 개념 정의는 위헌이며 이에 연방지방법원의 위헌판결을 확정한다.

이 결정은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서도 인용 확정되었다. 3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의 지정재판부는 본 사건을 연방이심법원의 판결대로 확정하고 사건이송명령을 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내용에 근거한 규제는 적절한 시간, 장소, 방법의 제한을 미리 규정하고 있지 않는 한 헌법적 도전을 견디어내지 못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으며, 여권주의자 그룹의 입장에서 포르노그래피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즉, 음란성 판단기준에 관한 여권주의자 그룹의 새로운 이론이 법원에 의해 배척을 받은 것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청소년과 관련해서도 음란성 판단의 기준이 일반 성인과 달라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에서는 일찍이 제기되었고, 이 주장은 연방대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확고한 법리로 자리를 잡았다. 우선 ‘유포’와 관련해 일반성인에게만 유포되는 성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Miller판결에서 제시된 세 가지 음란성 판단기준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면 음란물이 아니게 되지만, 청소년에게도 유포되는 성적 표현물에 대해서는 음란성 판단의 기준이 달라져서 “성에 대해 노골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표현물”이기만 하면 음란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출연’과 관련해서도 영화 등 시각매체를 통한 성적 표현물에 성행위 가담자로서 미성년자가 등장하면 무조건 음란물이 된다. 성적 표현물에의 등장자로서 미성년자의 특별보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때 등장 배우가 미성년자인가 아닌가는 배우의 ‘그 표현물에서 이야기되어지는 나이’가 아니라 ‘실제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왜냐하면, 이렇 듯 미성년자에 대한 특별보호를 하는 이유가 미성년자는 그 표현물의 제작과정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해(害)를 입기 때문에 성적 표현물에 등장하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착취와 학대를 막으려는 정부의 중대한 이익을 표현의 자유에 우선시키는 데에 있으므로, 그 나이는 등장 배우의 실제나이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 판례법상의 이 기준을 적용해 보면, 수년전 한국에서는 전혀 아무런 문제 없이 극장가에서 상영되었던 ‘춘향전’이라는 영화가 미국에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음란물이 될 소지도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춘향역으로 등장했던 여배우의 실제 나이를 봤을 때 그 배우는 미성년자였고, 이 영화는 몇몇 장면에서 일종의 성행위에 가담하려는 미성년자를 묘사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음란물이 아니라고 당연시되던 이 영화가 오히려 우리보다 표현의 자유를 더 넓게 인정한다고 생각되는 미국에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음란물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 듯 미국 연방대법원은 음란성 판단의 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여 음란물의 범위를 좁게 인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함으로써 일반적인 음란성 판단에서는 표현자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지만, 청소년과 관련해서는 음란성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면서 표현자에게 엄한 태도로 돌변한다. 즉, 일반적으로는 헌법상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지만, 이 표현의 자유도 ‘청소년 보호’라는 이익 앞에서는 희생제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음란성 판단에 대한 종전의 일반적 기준은 ‘평균인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고 선량한 성풍속을 해할 것’이라는 극히 추상적이고 간단한 음란성 판단기준을 통해 음란물의 범위를 미국보다 넓게 인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좁게 인정함으로써 음란성 판단에서 표현자에게 상대적으로 엄한 태도를 취하지만, 그 기준이 성인과 청소년에 대해 공통된 것이어서 청소년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현자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된다. 미국은 음란성 판단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 보장’과 ‘청소년 보호’를 둘 다 챙기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지만, 우리는 어쩌면 둘 다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음란성 판단의 문제는 결국 성적 표현물로부터 점잖은 사회를 유지할 정부의 공익과, 국민 개개인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만끽할 사익 사이의 이익형량의 문제로 귀납될 수 있다.

점잖은 사회를 유지할 정부의 이익이 이익형량을 통해 더 우선시되는 시대와 사회에서는 음란성이 넓게 인정되어 많은 개인 표현물들이 음란물로 취급되고 금지의 대상이 되었으며, 국민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 만끽이 가져올 이익을 중시하는 시대와 사회에서는 음란성이 좁게 인정되어 많은 개인의 표현물들이 금지의 그물을 뚫고 자유롭게 제작되고 유포되는 역사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특히 시대적으로 현대에 이르면 이를수록, 그리고 그 사회가 개방적이면 개방적일수록 후자의 경향이 더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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