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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張家界)에서

정석 법무사(서울중앙)

일상(日常)의 속진(俗塵)을 떨치고 번심(煩心)을 쇄락(灑落)코자 장가계를 몇차례 찾아갔다.

중국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한 이 산은 중국의 첫 번째 국립삼림공원이며,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중 유일한 특급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는 바, 약 3억8,000년 전 이 곳은 히말라야산맥과 더불어 망망대해였으나, 지각변동으로 돌출된 땅이 침수와 자연붕괴 등으로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가 생겼다.

히말라야가 은자(隱者)의 산이라면 이곳은 원시의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세계 여행을 많이 해보았다는 가이드는 “세계 유명한 산을 섭렵한 후에 장가계를 가보라”고 한다. 이 산을 보고 나서 타산(他山)을 보면 흥미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중국 고사(故事)에 “사람이 태어나도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백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라는 말이 있고, 시성 (詩聖) 두보(杜甫)는 이 산을 보고서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보고도 모를 일이다(豈有此理莫明基妙)”라는 시 한줄 밖에 쓰지 못하였다.

장가계는 면적이 9,653 킬로평방미터로서 크게 ① 천자산 ② 원가계 ③ 황석채 ④ 금편계곡 ⑤ 십리화랑 등으로 나뉘는 바, 산봉우리가 10만여개가 넘고 지금도 다 못 세고 있다니 세계 제일이다.

장가계 입구에 들어서자 보는 이들 모두 “와와” 함성을 지른다 하여 이곳은 ‘와와 관광’이란다. 하늘을 찔러 태양을 가리는 힘찬 거봉(巨峰) 들의 줄맥들이 방문객들을 압도하여 연신 탄성을 자아 낸다.

수직으로 뻗은 해발 1,205미터의 천자산을 케이블카로 올라가면 연속으로 나타나는 우람차게 솟구친 산봉우리들, 그 절벽암에서 만고풍상을 견디며 오히려 창창(蒼蒼)히 버티고 서있는 키는 작지만 수천년 됨직한 고송(古松)들, 그 암봉(岩峰)들이 코 앞에 다가오면 모두들 “아악” 비명을 지른다. 정상에서 내려 안도의 숨도 잠시, 가이드를 따라 나서면 문득 자신이 까마득한 기암절벽에 걸려 있는 가랑잎 같은 생각에 모두들 몸이 부들부들 떨려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 없으니 왜 이 고생을 하러 왔나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으니.

얼음같은 암간수(岩間水)를 마시고, 속인(俗人)의 눈을 씻고 나면 돌연 가까이 또는 먼 곳에 수 만개의 기암괴봉이 펼쳐진다.

태고의 신비가 숨쉬고 있는 광활한 원시림 속에서 하늘을 항해 솟구치는 온갖 형상의 산봉(山峰)들, 찬연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단애(斷崖), 봉정(峰頂)에는 한결같이 모진 풍우설(風雨雪)을 이겨 낸 천년목(千年木)들이 고절기개(孤節氣槪)의 기품을 뿜어내는데, 그 아래에는 크고 작은 흰 비단띄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으니, 이곳은 심산유곡수가 유려하게 흐르는 곳이다.

홀연 어디선가 자욱한 운무(雲霧)가 이들을 가리워 아쉽다 했더니, 문득 사라져 보여 주었다가 또다시 감추기를 반복하여, 보는 이의 넋을 빼앗아 가니 그 황홀한 신비감은 비몽사몽 환몽(幻夢)에 빠져 들게 한다. 이곳 경관은 볼 수는 있되, 접근을 못하니 더욱 신비롭다.

능선길을 따라 걷노라면 거대한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만장석벽(萬丈石壁)들이 햇살을 받아 오색으로 찬란하니, 거대한 천상의 궁전, 성곽요새, 혹은 갓 치장을 마친 화사한 아라비아 새색시 차림, 천군만마(千軍萬馬)들이 무수히 도열하여 명령만 떨어지면 금시라도 진격할 것 같은 괴봉거석(怪峰巨石)들, 어떤 암봉(岩峰)들은 황금전벽돌을 켜켜히 쌓아 올린 성루(城樓) 혹은 제단(祭壇)같기도….

문득 운무가 산봉우리 허리를 휘휘 감을 때는 허공에 푸른 사파이어 궁전이 또는 유유자적 신선이, 수줍은 선녀가 둥둥 떠다니며 노니는 듯하니 보는 이 모두 그 수시조화로움에 넋을 잃고 만다.

이때 흑운일풍(黑雲一風)이 휘몰더니 정초 서설(瑞雪)이 뿌리기 시작한다.

암벽을 깎은 외길은 미끄러운데,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뿔사 끝이 가물거리는 만척단애(萬尺斷崖) 끝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곤 소스라쳐 현기증이 들고, 심장이 도리깨질하니 얼른 뒤로 물러서려 하나 빈자리가 없다.

엉금엉금 기어서 가길 수십여차례. 겨우 난간을 붙잡고 풀썩 주저 앉고 말았다. 멍한 정신을 추스르고 시야를 크게 뜬다.

백운(白雲)이 분설(粉雪)과 뒤섞여 흩날리다가 걷히면 계곡의 물안개는 채운(彩雲)으로 피어 올라서 봉림(峰林)들을 껴안고 돌며 춤을 추다가 승천을 하면 날아가는 철새들은 백학(白鶴)이 되어 구만리 구름 속을 훨훨 나래짓하며 사라진다. 청랑한 나무들, 화사한 꽃들도 미풍에 춤을 춘다.

영화에서 본 ‘천지창조’ 무에서 유를, 어둠에서 빛으로 서서이 개벽해 오는 대자연의 화음소리가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조물주의 장엄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 온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