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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조원철 판사의 미국 오판사례는 EDWIN M.BORCHARD 예일대 교수가 1932년 미국의 오판사례들을 묶어 펴낸 'CONVICTING THE INNOCENT'를 서울중앙지법 조원철 부장판사의 번역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앨라배마 주 블랙벨트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 론데스 카운티의 앨라배마 강 남쪽 제방 부근에 루이스 버틀러라는 흑인여자가 14세 된 조카 탑시 워런, 12세 된 딸 줄리아 메이 딕슨, 9세 된 조카 앤 메어리, 그리고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1928년에 아내 및 성인이 된 두 딸과 함께 부근에서 살던 조지 옐더라는 55세 된 흑인신사가 루이스에게 관심을 갖고 자주 집에 놀러 왔다. 루이스는 지나칠 정도로 그의 관심을 끌려고 애를 썼다.

하루는 루이스가 몽고메리 시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조지가 놀러와 조카인 탑시와 단 둘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조지가 돌아간 후 탑시는 50센트짜리 새 지폐를 내보이며 자랑하였다. 루이스는 시기심에 자극을 받아 14세의 사춘기 소녀인 탑시에게 심한 매질을 가하며 꾸짖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녀를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탑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루이스가 탑시를 죽였다는 소문이 몽고메리 시에까지 퍼졌다.

부(副)보안관인 버크 매도우는 주 당국의 지시로 그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다. 매도우가 루이스의 오두막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집에 없었고 딸 줄리아와 조카 앤이 있었다. 오래지 않아 그 아이들은 매도우에게 탑시의 살해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줄리아는 엄마가 50센트짜리 지폐를 보고서는 탑시를 무자비하게 때렸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조지가 다시 찾아왔을 때 엄마와 서로 다투다가 나중에 돌아갈 때에는 조용해졌는데, 날이 어두워진 후 조지가 다시 찾아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자기보고 길모퉁이로 나가 누가 오는지 지켜보라고 시켰다고 하였다. 줄리아는 길모퉁이에서 엄마인지 조지인지가 탑시를 불러내는 소리를 들었고, 잠시 후에 탑시의 비명소리가 들렸으며, 엄마가 불러 가보니 탑시가 뒷마당 장작더미 옆에 죽은 채 쓰러져 있었다고 하였다. 조지와 엄마는 탑시의 팔을 통나무에 걸쳐 놓고는 자기에게 도끼로 팔을 자르라고 시키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조지와 엄마는 커다란 자루에 시체를 담아 둘러메고 약 반 마일 가량 떨어진 강 쪽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말하였다.

앤은 부보안관에게 그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밖에서 탑시의 비명소리를 듣고는 일어나 벽 사이의 틈으로 내다보았는데, 조지가 등불을 들고 있었고, 루이스가 도끼로 탑시를 때렸으며, 이어 조지가 루이스에게 등불을 건넨 후 도끼를 휘둘러 탑시를 쓰러뜨렸고, 그 다음에는 줄리아가 하였던 것과 같은 내용의 말을 하였다. 매도우로서는 그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지만, 아이들은 영리해 보였고 몇 번을 캐물어도 진술 내용에 변함이 없었다. 집에 돌아온 루이스는 탑시에게 매질을 가한 것 외에는 범행을 부인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탑시는 사라졌고, 자기로서는 그 애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의심스러웠고, 결국 루이스는 체포되었다.

루이스는 며칠 동안 신문을 받다가 갑자기 자기가 탑시를 죽였고, 조지와 함께 사체를 묶어 강물에 던졌다고 자백하였다. 그녀는 보안관과 함께 현장에 나가 범행 당시 강가에 이르기 위하여 힘들여 통과한 덤불더미와 사체를 던진 지점을 지적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루이스는 곧바로 자백을 철회하면서 자신은 결백하다고 외쳤다.

예심에서 줄리아와 앤은 선서를 하고 부보안관에게 하였던 것과 같은 진술을 했고, 보안관은 한 때 루이스가 자백을 하였음을 지적했다. 루이스는 보석 없이 대배심에 회부되었고, 조지도 체포되었다. 조지에 대한 예심에서도 줄리아와 앤은 증인으로 소환되어 같은 진술을 하였다. 조지 역시 보석 없는 구금이 명해졌다. 그날 루이스는 다시 한 번 자백을 할런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 법정에 소환되었으나, 자백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루이스를 다시 유치장으로 데려가려 가자, 줄리아는 루이스에게 매달려 “엄마, 오늘 우리와 함께 집에 가는 거 아냐”라고 울먹이며 말하였다.

대배심에서 루이스와 조지에 대하여 기소 결정이 있었고, 그들이 변호인을 선임할 자력이 없자, 법원은 변호인으로 유능한 R. L. 골드스미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 4월24일 및 25일에 피고인들에 대한 공판이 분리되어 별개의 배심원단 앞에서 열렸다. 방청석은 흑인들로 가득 찼지만, 그들 대부분은 유죄판결이 내려져 두 사람을 엄벌할 것을 바라는 분위기였다. 24일에 열린 루이스의 공판에서 앞서 있었던 증인들의 증언이 반복되었고, 루이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유죄평결을 내렸다. 다음날 조지의 공판이 열렸고, 증인들의 증언이 반복되었다. 조지는 처와 딸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사건이 있었던 날 밤에 집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증명하고자 하였지만, 배심원들은 마찬가지로 유죄평결을 내렸다. 4월26일 두 사람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조지와 루이스가 주 교도소로 이송된 지 1주가량 지났을 무렵 탑시가 살아있다는 소문이 보안관의 귀에 들어갔다. 20마일 가량 떨어진 댈러스 카운티에서 친척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안관의 조사 결과 소문은 사실이었다. 탑시를 데려왔을 때 사람들은 마치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는 듯 했다. 그녀의 신체를 조사한 결과 루이스로부터 맞아 생긴 상처가 남아 있었지만, 팔은 여전히 온전하게 달려 있었다. 곧바로 조지와 루이스를 석방시키는 조치가 취해졌고, 6월 말에 주지사의 사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정황증거에 부합하는 허위증언에 의하여 벌어진 사건이다. 탑시가 사라진 것은 두 어린아이의 끔찍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신빙성을 부여하였다. 두 어린아이가 수차례에 걸친 면밀한 반대신문에도 불구하고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이야기에 그렇게 집착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사법당국으로 하여금 그들의 이야기를 믿고 피고인들을 종신형에 처하도록 한 것은 바로 그들의 확고부동함과 일관됨이었다. 부보안관 매도우는 나중에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조지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한 젊은이가 1주 동안 매일 두 어린아이에게 코치를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는 탑시가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자마자 그 이야기를 꾸며내었다는 것이다. 사법당국은 루이스가 한 때 하였던 자백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루이스가 왜 한 때나마 자백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매도우가 추측한 것처럼 루이스는 나름 자백을 하여 비위를 맞추어 주면 백인들이 자기를 곤경에서 구해주리라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탑시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루이스와 조지는 평생 감옥에 갇혀있었을 것이지만, 다행히 몇 달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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