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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Roberts Court vs Kennedy Court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미국 연방대법원의 개정기(開廷期)는 법률에 따라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에 시작한다. 아마 우리나라와 달리 회계 연도가 매년 10월1일에 시작하는 국가적 관행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연방대법원의 지난 한해는 올해 6월26일 선고를 마지막으로 3개월간의 하계 휴정기로 접어들며 막을 내렸다. 이 기간 동안 9개월의 대장정을 마친 대법관들과 직원, 그리고 법원 청사는 휴식과 재정비에 들어간다. 그 동안 수많은 방문객을 맞았던 대법정도 현재 잠시 문을 닫고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우리가 보통 12월에 한해를 결산하듯이, 미국에서는 휴정기인 요즈음 지난 해 개정기를 돌아보며 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지난해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취임 3년째에 접어들면서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의견대립이 종전보다 완화되고, 대법원장의 영향력도 강화된 시기로 평가된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취임 첫 해인 2005~2006년에는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여주는 이른바 ‘5대 4 판결’이 전체 사건의 21%, 2006~2007년에는 무려 39%에 이르렀으나, 올해는 전체 사건의 16%에 그쳤다는 것이다. 아울러, 올해는 로버츠 대법원장이 전체사건 67건 중 7건에서만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다른 대법관들보다 가장 높은 89.5%의 다수의견 가담률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명실상부한 ‘Roberts Court’라고 하기에 부족하며, 사실상 ‘Kennedy Court’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많다. 올해로 취임 20주년을 맞는 72세의 케네디 대법관은 지난해 내려진 판결 중 가장 역사에 남을 것으로 평가되는 두 건의 5대 4 판결, 즉 개인의 자기보호를 위한 총기 소지권은 수정헌법 제2조가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법률로 제한할 수 없다는 첫 판결(District of Columbia v. Heller)과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구금 중인 알카에다 테러혐의자들도 미국 연방법원에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할 권리가 있음을 선언한 판결(Boume-diene v. Bush)에서 각각 보수파 및 진보파의 손을 한 번씩 들어주며 확실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아동에 대한 단순강간죄에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한 루지애나주법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8조에 반한다는 판결(Kennedy v. Louisiana)에서도 진보파를 대표하여 다수의견을 집필함으로써 사회의 이목을 끌었던 대표적인 5대 4 판결에서 모두 다수의견을 주도하였다.

반면에 로버츠 대법원장은 워싱턴 D.C의 총기규제법 위헌판결에서는 다수의견을 주도하였으나, 관타나모 구금자 인신호보청구 사건과 루지애나주 아동강간 사건에서는 중도파 설득에 실패하면서 모두 소수의견에 머물러 ‘Roberts Court’라는 말을 무색케 하였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일까? ‘Kennedy Court’의 영향력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아무래도 예년에 비하면 다소 퇴색한 감이 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다. 2006~2007년에 전체사건 68건 중에서 오직 2건만 반대표를 던졌고, 24개의 ‘5대 4 판결’에서 모두 다수의견에 가담함으로써 절대음감의 ‘Kennedy Court’를 이끌었던 것에 비하면, 올해는 전체 사건 중 10건에서나 소수의견에 머물러 7건에서만 반대표를 던진 로버츠 대법원장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올해 ‘Kennedy Court’의 약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케네디 대법관의 한 표가 결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평소 대법관들의 성향에 의하면 ‘5대 4 판결’이 내려졌을 법한 켄터키주의 독극물주사에 의한 사형집행 방식에 대한 합헌 판결과 선거인에게 투표시 신분증 제시를 의무화한 인디아나주법의 합헌 판결이 각각 7대 2, 6대 3으로 예상보다 쉽게 정부의 승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는 88세로 현 대법관 중 최고령이며 진보파 대법관들의 대부격인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주요 사건에서 보수파의 손을 들어준 것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는 대법관들이 극한 대립을 지양하고 중립지대에서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하여 양보와 타협을 거듭한 노력이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 사건들에서 대법원은 문제된 당해 사례가 위헌이라고 판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선언함으로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향후 보다 확실한 입증이 있을 경우 달리 판단될 여지가 있음을 남겨두는 방법으로 타협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변화는 올해가 대통령 선거의 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노스웨스턴대의 리 엡스타인 교수는 이를 “선거효과”라 부르면서,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그렇지 않은 해보다 5대 4 판결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특히 예측이 불가능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해일수록 대법관들은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거나 선거기간 중 이슈가 될 만한 판결을 자제한다는 분석을 내 놓은 바 있다.

이러한 분석은 사법의 영역에 지나치게 정치의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 대법관의 평균 연령은 68.5세이고, 최고령자인 스티븐스 대법관은 이미 88세에 이르고 있다.

존 메캐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연일 계속되는 신문광고를 통해 자신이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얼리토 대법관의 인준에 동의했음을 내세우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킬 보수주의 법관을 임명하겠다는 것을 주요 정치공약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 11월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결과에 따라 ‘Roberts Court’의 영향력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해 보는 것도 이번 미국 대선에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의 하나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