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독자마당, 수필, 기타

법무사의 비애

조능래 법무사(대한법무사협회 부협회장)

'김동훈 교수의 법조광장 칼럼을 읽고'

몇일 전 김동훈 교수의 ‘로스쿨도입과 법대교수의 비애’라는 제목의 법률신문 법조광장 칼럼을 잘 읽었다.
문장도 유연하고 물흐르듯하여 독자로 하여금 무엇에 이끌리듯 끝까지 읽게 만드는 필세를 보여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법대교수의 현실적 비애가 공감대로 슬며시 다가왔다. 현재의 법무사 위치가 변호사의 그늘에 가려져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황임에 비추어 그 양상은 다르지만 비애가 있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도 일정수준 이상의 법대교수에게 변호사 자격을 주었더라면 이론과 실무의 조화로운 접목이 안착돼 김 교수가 지적한 문제점들이 노정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현재의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들로 인하여 ‘법학’이라는 학문과 ‘법학자’의 자긍심이 조금이라도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다. 필자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로스쿨제도의 반대론자 중 하나이다. 같은 대륙 법체계하에 있는 일본의 선행 로스쿨제도가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반면교사로 삼았어야 했다. 필자가 지난 6월9일자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하였듯이 법대 4년과 사법연수원 2년 그리고 수년간의 피나는 시험준비과정을 거쳐도 법조인으로서의 역할에 역부족을 느낀다는 일부 진솔한 고백을 접할 때 법학의 기초이론도 배우지 않은 타학문 전공의 초심자들에게 무슨 방도로 3년의 단기간에 법학이론과 실무를 터득시킬수 있을 것인가,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단순기능인을 양산하겠다는 것인지, 뿐만아니라 김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40~50명을 배정받은 대학의 실무교수진 확보에 따른 부작용과 혼란, 근간 논란이 되고 있는 로스쿨의 고액등록금 문제 등 벌써 현실로 부각된 문제들도 많다. 결국 돈있는 집안의 자녀들만이 갈수 있는 곳으로 치부될 것이고 가난하고 머리좋은 서민층의 아이들은 좌절을 겪으며 꿈을 접게 될 것이다. 김 교수의 칼럼과 연관하여 필자의 신변잡기로 법무사의 비애를 써보고자 한다.

필자는 법무사로서 그 동안 법조의 한축임을 자부하며 소임에 충실하여 왔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이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겉잡을수 없는 허탈감에 휩싸여 있다. 법무사라는 직업에 자괴심마저든다.

어려서 법관이 되겠다고 1950년말 법대에 진학하였으나 능력부족으로 몇 번 낙방한 후 법원일반직의 길을 걸었다. 그 당시에는 사법시험 이전의 고시사법과 시대로서 1년에 20명 정도의 극소수 합격자만을 배출하는 시대였으므로 물론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뒤따라야 한다고들 하였다. 지금처럼 몇백명 아니 천명씩 뽑는 시대였다면 너끈히 합격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수없이 자위도 해보았다. 그런데 법무사라는 직업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변호사의 그늘에 가려져 도무지 빛을 발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법무사는 등기업무를 비롯 여러 고유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고 또 새로운 영역도 개척해가고 있으나 아직도 변호사의 대체직업(?)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변호사와 법무사간에 일부 영역의 교차가 있기는 하나 각자 특유분야가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된데에는 법무사 자신에게 책임의 태반이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의 가까운 이웃으로 전국 산간 오지까지 분포되어 그들과 애환을 나누며 없어서는 아니될 저렴한 법률도우미로 봉사해 온지 어느덧 100여년, 그러나 업무의 대종을 차지하는 등기업무를 일부 변호사들에게 잠식당하면서 법무사업계는 설땅을 잃고 어려운 한계상황에 와 있다. 대한법무사협회는 고사상태에 빠진 업계를 회생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다각도로 추진 중에 있다. 사법부는 물론 정부의 각 기관도 우리 법무사의 역할에 대한 좀 더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법률관련분야 종사자가 주류를 이루는 각종 위원회의 구성에 유독 법무사만을 배제시키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예: 사법개혁위원회 등) 또 한번 법무사로서의 직업선택에 자긍심을 잃게하는 연유가 되었다.

김 교수님, 힘을 내십시오!
I couldn’t agree with you more!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