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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연방대법원에서 바라보는 워싱턴 전경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는 워싱턴 전체를 조망하는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언덕은 바로 의사당이 세워진 Capitol Hill이다. 두 건물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의사당 앞으로는 저 멀리 포토맥 강변의 링컨기념관까지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라 불리는 길이 3Km의 광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녹지 공원이 이어진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791년 워싱턴을 새 수도로 정하고, 프랑스 출신 건축가인 피에르 랑팔에게 도시계획을 맡겼다. 토마스 제퍼슨은 새 수도가 ‘항상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며 높은 건물이 없는’ 18세기 파리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지길 바랐다고 한다. 랑팔은 이런 바람을 담아 워싱턴 모뉴먼트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녹지 공원을 양축으로 삼아 나지막한 박물관과 관공서들을 대칭으로 배치함으로써 유럽풍의 품위있는 수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던 1894년, 토마스 프랭클린 슈나이더라는 사람이 워싱턴 시내에 14층짜리 고층 아파트 건물을 세우려고 하자 당시 시민들은 워싱턴의 이미지가 손상될 것을 우려하여 강하게 반발하였고, 의회는 1899년 ‘건물의 고도제한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워싱턴에서는 의사당 건물보다 높은 개인 소유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1910년에 이르러 건물이 접하는 도로의 폭보다 20피트를 초과하는 높이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엄격한 고도제한의 덕택으로 아직도 워싱턴에는 12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해마다 7월 4일이면 워싱턴 모뉴먼트 주변에서 벌어지는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의 장관을 웬만한 워싱턴 시내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 연방대법원 청사는 어떠했을까? 우리의 예상과 달리 미국의 Supreme Court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Supreme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연방대법원은 설립 이후 146년 동안 독립된 청사도 없이 의사당에서 셋방살이를 해야 했다. 헌법의 기초자들은 국가권력의 한 축으로서 사법부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지만 그 구체적 역할을 규정하지 않았기에 사법부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갈지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803년에 이르러 존 마샬 대법원장이 역사적인 Marbury v. Madison 판결을 통해 사법부가 단지 법을 해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헌법에 반하는 의회의 입법을 무효로 할 수도 있음을 선언하면서 연방대법원은 비로소 명실상부한 Supreme Court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초기의 연방대법원은 의회의 어두침침한 방을 빌려 사용하였고 대법관들은 방청객들이 보는 앞에서 법복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공간이 부족했으나, 점차 대법원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워싱턴의 명사들에게는 대법원의 변론을 방청하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의사당 확장공사를 하면서 대법원은 종전에 상원이 회의실로 사용하던 화려하고 쾌적한 공간을 대법정으로 확보하게 되었고, 대법관들은 이 공간에 매우 만족하여 이곳은 그 후로 무려 75년간 대법정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대법관들은 자신의 주거지에서 집무실과 연락관을 두고 근무하다가 재판이 열리는 날에만 의사당에 나오면 족하였으므로, 오히려 의사당의 화려한 회의실에 가끔씩 출근하는 것을 즐겼을 뿐 독립된 청사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윌리암 태프트의 생각은 달랐다. 1909년부터 1913년까지 미국 대통령을 지내면서도 퇴임 후 대법관의 꿈을 접지 않았던 그였다. 그는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이제는 연방대법원도 독립한 청사를 가질 때가 되었다는 주장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퇴임 후인 1921년 마침내 대법원장으로 지명되자 뛰어난 로비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의회를 상대로 집요한 설득을 시작하였다. 때마침 1925년에 스무트 상원의원이 워싱턴 DC에 행정부 건물 신축을 위한 5천만불의 지출 승인 법안을 제출하려는 기회를 포착하고 이 법안에 ‘연방대법원 청사 신축’도 포함시켜 줄 것을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결국 1929년 의회의 승인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태프트 대법원장은 역시 대통령 출신답게 탁월한 행정가였던 모양이다. 그는 주도면밀한 부지 물색 작업을 통해 현재의 의사당 뒤편 대지를 확보하는 한편, 의회 건설국에서 대법원 청사의 건축에 관한 전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발견하고는 대법관들을 총동원한 설득 작업을 통해 결국 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연방대법원 건축위원회’를 구성하여 청사 건축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는데 성공하였다. 태프트 대법원장은 카스 길버트를 설계자로 지명하여 미국 사법부를 대표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역사에 남을 대법원 청사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1935년 현재의 아름다운 연방대법원 청사가 완공되었으나, 태프트 대법원장과 카스 길버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돌이켜보면 미국 연방대법원이 현재 누리고 있는 존경과 권위는 하루아침에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독립한 청사를 세우는데 걸린 146년의 세월은 사법부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터잡는데 걸린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미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것은 100년이 넘도록 의사당 언덕의 조망을 지켜준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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