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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판사례

[미국 오판사례] 17명의 증인들이 그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조원철 판사의 미국 오판사례는 EDWIN M.BORCHARD 예일대 교수가 1932년 미국의 오판사례들을 묶어 펴낸 'CONVICTING THE INNOCENT'를 서울중앙지법 조원철 부장판사의 번역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1913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갑자기 많은 수의 위조수표와 부정수표가 나타났지만, 그 범인을 밝혀내려는 경찰의 노력은 성공에 이르지 못하였다. 1913년 10월 어느 날 수사관 콘보이는 보스턴의 한 상인으로부터 허버트 앤드류라는 사람이 물건을 구입하고 대금으로 교부한 30불짜리 수표 한 장을 전달받았다. 그 수표에는 앤드류 본인의 이름으로 서명이 되어 있었다. 그 상인은 수표를 받아 지니고 있다가 수주가 지나서야 은행에 입금시켰는데, 무거래로 지급이 거절되었다.

콘보이는 1913년 11월 앤드류를 찾아냈다. 허버트 앤드류는 보스턴에 있는 대형상점의 회계원이었다. 그의 이웃이나 친구들은 물론 고용주까지도 그를 좋게 평하였다. 그는 보스턴에서 아내, 아기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11월1일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체포되었고, 무려 40장 이상의 수표와 관련하여 기소되었다. 하지만 당초 단서가 되었던 30불짜리 수표는 기소되지 않았는데, 이는 그 수표가 발행된 때로부터 한동안 앤드류의 은행계좌에 36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앤드류가 체포되어 법원의 예심에 회부될 때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앤드류의 사진을 보여주고 범인이 앤드류가 맞다는 진술을 받아내었다. 앤드류는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였다. 수사관 콘보이는 구명운동을 벌이는 앤드류의 부친에게 자신은 40년 동안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앤드류가 범인임을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피해자들 중 다수는 앤드류가 범인이 확실하다고 진술하였지만, 일부는 그가 범인인 것 같다고만 하였고, 나머지 일부는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 당국은 경찰서에서 쇼업(show-up, 譯註 : 용의자 한 사람만을 목격증인에게 보여주며 범인인지 여부를 확인시키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이와 같은 쇼업은 목격증인에게 제시된 용의자가 범인이라는 강한 암시를 주기 때문에 현재 영미에서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허용되지 않는다. 쇼업의 암시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용의자를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목격증인에게 보여주어 범인을 지목하게 하는 수사기법을 라인업(Line-up)이라 한다)을 실시하였다. 나중에 앤드류의 말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 진술은 기록한 반면,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한 증인들의 진술은 무시하였다고 한다.

공판기일이 1914년 2월10일로 잡혀졌고, 그 사이 앤드류는 보석으로 석방되어 있었는데, 그 동안 보스턴 일대에서는 문제의 서명과 같은 필체의 서명이 된 수표들이 은행에 지급제시되었다. 1914년 2월10일 앤드류가 공판법정에 출석하였을 때 2개의 혐의가 추가되면서 공판이 2월 23일로 연기되었고, 이에 따라 보석금도 종전 1,200불에서 4,000불로 높아졌다. 하지만 앤드류는 인상된 보석금을 낼 수가 없어 다시 수감될 수밖에 없었다. 앤드류와 그의 부친은 구명을 위하여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날렸고, 급기야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리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사설탐정을 고용하기도 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였다. 변호인은 유능한 필적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하기도 하였으나, 마찬가지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필적전문가는 문제의 수표상의 서명이 앤드류 본인의 서명과 매우 유사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경찰이 그 필적전문가에게 앤드류가 문제의 수표들에 기입을 하는 것을 본 증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17명의 남녀 피해자들이 공판법정에 증인으로 나서서 자신들에게 수표를 건넨 사람이 앤드류가 맞다고 증언하였다. 그들 중 다수가 확신을 갖고 증언한 반면, 피고인 앤드류는 자신이 문제의 수표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증인들을 본 적조차 없다고 부인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어할 아무런 수단이 없었다. 변호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내렸고, 앤드류에게는 징역 1년 2월이 선고되었다. 판사가 법정에서 형을 선고할 때 앤드류는 다시금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였다. 변호인은 앤드류가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유사한 수표들이 추가적으로 행사되었다는 점을 들어 새로운 심리를 요청하였으나, 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앤드류에 대하여 형이 선고되고 교도소에 수감된 후에도 앤드류가 기소된 것과 유사한 수표들이 계속 나타났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들 수표들을 사용하고 있음이 명백하였다. 경찰에서 관련정보들을 수집·분석한 결과, 얼 반즈라는 사람이 이들 수표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의 탐문 끝에 얼 반즈가 부잣집 아들 행세를 하면서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님을 확인하였다. 경찰은 얼 반즈를 체포하였고, 그는 같은 날 자신이 가공의 이름으로 수표들을 발행하였음을 시인했다. 나아가 그는 앤드류가 유죄판결을 받은 수표들의 서명도 자신이 한 것임을 시인하였다. 반즈의 필적과 대조하여 본 결과 앤드류가 기소된 범행도 반즈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였다. 경찰은 이러한 사실을 판사에게 알렸고, 판사는 앤드류의 변호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심리를 신청하도록 하였다. 새로운 심리에서 검사는 공소를 취소하였고, 이로써 앤드류는 풀려났다.

그 후 얼 반즈는 앤드류가 기소된 범죄를 포함하여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을 감경받아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앤드류 사건의 검사는 수십 년이 지난 후 위 사건에 대하여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두 사람(앤드류와 반즈)이 법정에 섰을 때 나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증인들이 선서를 하고도 수표를 건넨 사람이 앤드류라고 증언할 수 있었는지 놀랐다. 그 두 사람은 외모가 서로 전혀 달랐다. 키가 수인치나 차이가 났고, 닮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증인들이 앤드류가 범인이라고 확신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사건은 분명히 목격증인에 의한 범인식별에 오류가 있은 사건이다. 하지만 경찰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와 같이 비극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에 의한 범인식별은 대체로 확실치 않다. 경찰이 17명이나 되는 증인들로 하여금 앤드류를 범인이라고 증언하도록 설득하였다고 주장하더라도 믿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앤드류가 체포되어 구금된 후에도 위조수표들이 행사되었다는 것은 다른 제3의 범인이 체포되지 아니한 채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범인이 한 동안 한 곳에서 수표를 사용하였다면 경찰이 그를 찾아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한 마디로 총체적인 부주의였다.

이 사건은 경찰의 유죄판결에 대한 과도한 열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앤드류가 범죄형이 아니고 전에 한 번도 체포된 적이 없음에도, 경찰은 그가 범인이 틀림없다는 억측 위에서 사건을 다루었다. 앤드류와 그의 가족들이 무죄를 증명하기 위하여 들인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하여 아무런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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