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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통신

[헤이그통신] (16) 검찰의 지위

권오곤 UN ICTY 재판관

1. 글머리에

우리나라는 성문법 체제를 갖추고, 배심제도없이 법관에 의한 사실 인정을 하고 있는 점 등을 보면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분명 대륙법 체제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증인신문을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주신문과 반대신문에 맡기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재판제도에는 알게 모르게 영미법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의 사법제도는 대륙법과 영미법을 조화한 절충적 제도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모든 면에서 세계화되고 있는 오늘날, 각국의 사법제도가 서로의 영향으로 인하여 어떤 형태로든 절충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수사 및 증거 수집과 관련하여 우리의 검찰이 어떠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적 의미의 대륙법 국가와 영미법 국가에서의 검찰의 지위를 비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대륙법 국가에 있어서의 수사 및 증거 수집

고전적 의미의 대륙법 국가에서는, 수사와 증거 수집은 수사판사(investigating judge) 또는 치안판사(magistrate, 다만 영미의 치안판사와는 다른 제도이다)라고 불리는 판사가 담당한다. 이들 수사판사는 법원 내에서 인사이동이 되어서 재판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지만, 수사판사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재판을 하는 판사와는 구분되고, 자신이 수사를 담당한 사건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다. 다만, 이들 수사판사는 스스로 범죄를 인지할 수 있는 권한은 없이, 검찰의 요청에 따라 사건의 수사와 증거 수집을 할 뿐이다. 기소 여부의 결정은 나라마다 제도가 달라 수사판사가 이를 결정하는 나라도 있고, 수사판사가 수사 결과, 즉 사건기록(dossier)을 검찰에 송부하면, 검찰이 이를 검토하여 결정하는 나라도 있다. 검찰 및 수사판사에 의한 수사 및 증거조사에 대하여는, 당사자의 이의신청에 따른 재판의 형식으로 예심판사(pre-trial judge) 또는 예심재판부(pre-trial chamber)가 감독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건이 기소된 경우 송무 수행은 검찰이 담당한다.

한편, 수사판사는 제3자의 입장에서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증거를 조사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증거 조사에는 당사자, 즉 검찰과 피고인 측이 참여하기 때문에, 수사판사가 작성한 증인의 진술서 등 사건 기록은 당연히 증거능력을 가지고,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된다. 따라서 재판시에는 이러한 증거조사를 되풀이할 필요없이 서면으로 재판을 하게 되고, 증인신문은 예외적인 경우에 보충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3. 영미법 국가에 있어서의 검찰

그러나 영미법 국가에는 위와 같은 수사판사 제도가 없고, 수사기관 내지 검찰이 수사와 증거 수집을 담당한다. 송무 수행도 물론 검찰이 담당한다. 검찰은 당사자 중의 하나일 뿐이어서, 검찰이 작성한 진술조서 등이 당연히 증거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며, 증거 공개의 원칙에 따라 재판 시작 전에 이들을 피고인 측에게 교부할 뿐, 실제로 이들이 증거로 제출되는 일도 원칙적으로는 없다 (2007. 2. 22.자 법률신문 헤이그통신 제5화 ‘증인 진술서의 증거능력’ 참조). 다시 말하면, 모든 증인의 증언은 법정에서 판사 앞에서 직접 말로 이루어질 뿐이다.

4. 우리 검찰의 지위

우리나라에는 수사판사 제도가 없고(다만, 구법시대에는 예심판사 제도가 있었다), 수사 및 증거 수집은 검찰과 그 지휘를 받는 수사기관에 일임되어 있어, 기본 조직 면에 있어서는 영미법 국가의 예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정한 요건 (다만, 2007. 6. 1.자 형사소송법 개정에 의하여 그 요건이 강화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아래, 검찰 등 수사기관이 작성하는 조서 또는 수사단계에서 참고인이 작성하는 진술서에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형사소송법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당사자의 일방인 검찰에게 증거를 ‘생산’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함으로써, 영미법상의 검찰의 지위뿐만 아니라, 대륙법상의 수사판사의 권한까지 겸비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우리의 검찰이 외국의 검찰에 비하여 시쳇말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소이가 있는 것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검찰청법이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의 직무로서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의 청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5. 맺으면서

이곳 ICTY에는 영미법계와 대륙법계 출신의 법조인이 한데 어울려 근무하고 있고, 검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대륙법계 출신의 검찰 고위간부로부터, “대륙법계 출신의 검사는 ‘진실 발견’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데 비하여 영미법계 출신의 검사는 사건에 ‘이기고 지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두는 것 같다”는 비유적인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우리 검찰에 대해서는, 송치사건을 다룰 때에는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인지사건을 직접 다루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걱정이 들리기도 한다. 우리의 형사소송제도는 영미법과 대륙법 제도를 적절히 조화시킨 효율적인 제도이다. 검찰이 법령의 정당한 적용을 담보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우리의 형사소송 실무가 범세계적인 기준에 합당하게 운용되도록 함으로써, 우리의 제도를 세계만방에 자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