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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사법부 예산편성권의 독립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제18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벌써부터 개헌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최근 제헌절 제60주년 경축사를 통해 개헌론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3권 분립에 입각한 입법부의 권능 회복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 장치의 보완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앞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사례를 들며 의회의 예산발의권 행사,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폐지, 예산과 결산 기능 분리, 감사원 소속의 국회 이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은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한 국가로, 예산안을 법률안 처리절차에 따라 심의한 후 법률의 형태로 의결한다. 순수한 대통령제를 취한 미국은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하는 예산요구서는 법적으로 참고자료에 불과하고, 진정한 의미의 예산안은 의회의 세출위원회에서 편성된다. 이를 위해 의회는 산하에 독립성과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의회예산처(CBO)와 우리의 감사원에 유사한 회계검사원(GAO)를 두고 예산 및 결산기능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제출한 예산요구서는 대통령 직속 예산관리처(OMB)가 예산편성지침을 시달하고 각 부처별로 충분한 협의와 청문회를 거쳐 작성한 것으로 실제로는 예산안 초안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또한 대통령은 의회가 예산안을 변경 의결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실제 이런 사례도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사법부 예산 편성과정의 특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국가재정법 제40조는 대법원, 국회 등 독립기관의 예산편성은 그 기관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하고, 이를 임의로 삭감할 경우 국무회의에서 그 기관장의 의견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예산편성과정에서는 독립기관들도 자신의 요구액을 관철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매우 힘겨운 설득작업을 해야 하는 것은 일반 행정부처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미국의 예산관련법은 사법부와 입법부가 제출한 예산요구서를 대통령이 별도의 검토 및 수정을 거치지 않고 국가전체 예산안에 그대로 포함시켜 의회에 송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사법부와 입법부는 예산요구서 제출 과정에서 예산관리처와 어떠한 협의도 거치지 아니한다.

검찰을 비롯하여 재판의 당사자가 되는 행정각부를 총괄하는 대통령이 사법부의 예산안을 심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활동을 위협할 소지가 있어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법부가 행정부의 통제없이 과도한 예산을 요구한다면 국가재정의 균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으나, 이것은 대통령이 사법부 예산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견제가 가능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법부 예산안 심의에 대한 입법부의 배려도 인상적이다. 하원 세출위원회 소위원회에는 연방대법관 2인이 연방대법원을 대표하여 출석하는 것이 관례인데, 의원들은 예산안에 관하여는 개괄적인 설명을 잠시 청취한 후 주로 사법행정의 주요 현안에 관하여 대법관들의 의견을 듣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물론 대법관의 의회 출석은 상호간의 충분한 예우 보장과 재판에 영향을 주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와 달리 행정부처의 예산안 심의과정에서는 개별 사업의 타당성을 놓고 매우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산안에 관한 코멘트의 분량이 대법원에 대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미국의 2009년도 예산요구액은 3조1,000억불로 우리나라 올해 전체예산 256조원의 약 11배에 달한다. 이 중 사법부 예산은 전체의 0.2%에 해당하는 67억불이다. 우리나라의 올해 사법부 예산은 약 1조3,000억원으로 전체예산의 0.5%에 해당하나, 미국의 사법부 예산은 국가 사법기능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주법원 예산을 제외한 것임을 감안하면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인다.

미국 사법부 예산의 증가내역을 보면 약 86%는 물가상승에 따른 법관 및 직원 보수 및 운영비의 인상에 기인하는 것이고, 나머지 14%는 사법정보화 및 전자법정 개선, 국선변호인 보수 인상, 연방대법원 청사 보수, 법원경비시스템 개선에 소요되는 비용이라고 하니 예산의 쓰임새는 놀라울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다.

입법·행정부와 더불어 국가의 한 축을 이루는 사법부의 중요한 역할에 비추어 볼 때 미국, 한국 모두 사법부 예산이 국가 전체예산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좀 뜻밖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 비중이라면 우리도 과감하게 사법부의 독자적 예산편성권을 보장하더라도 국가재정상 큰 우려는 생기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사법권 독립의 가치를 돈으로 형량할 일은 결코 아니나, 적어도 국가예산 1% 이상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