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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판사의 보수와 사법권의 독립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아마도 미국만큼 판사의 신분보장이 확실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미국 헌법 제3조는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판사의 임기를 종신으로 하고, 판사의 재직 중에는 보수를 감액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의 기초자들은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려면 판사에게 적절한 보수가 지급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해 감액은 금지하되 물가상승에 대비한 인상의 길은 열어 둔 것이다. 이미 당시 제임스 메디슨은 판사들이 보수인상을 위해 해마다 의회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예견했고, 법관의 보수와 사법권의 독립에 대해 깊은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20년이 지난 지금, 판사들의 보수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2008년 1월1일 발표한 사법부 연차보고서에서 한국의 구술변론 도입을 한 예로 들며 러시아,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의 사법개혁 모델이 된 미국의 사법시스템이 이를 지탱해 온 유능한 법관들의 사직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연방법원 판사들이 로클럭 출신 1년차 변호사들이 받는 보수(약 18만불)에도 못 미치는 16만5,200불의 보수를 받는 현실에서 판사에게 더 이상의 희생과 헌신만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미국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볼 것을 제안하면서, 연방 전체 예산의 0.004%에 불과한 ‘법관 보수 현실화 문제’를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해결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에 관해 사실상 전권을 갖고 있는 의회가 판사의 보수 인상에 인색하다는데 있다. 이것은 연방법원 판사의 보수와 상·하원 의원의 보수가 동일하게 연계되도록 한 독특한 제도에 기인한다. 의원들은 헌법 규정상 자신들의 보수인상을 결의해도 어차피 다음 하원의원 선거까지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여론의 역풍을 감수하면서 보수를 인상하려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15년간 판사의 보수 기준을 인상하는 입법적 조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연방공무원들이 해마다 받는 생계비용 보전차원의 임금인상도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해 최근 13년간 6차례나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1969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 근로자의 평균 실질소득은 19% 증가한 반면, 판사의 실질소득은 약 25% 감소했으며, 1993년부터 현재까지 연방공무원의 보수가 61% 상승한 반면 판사의 보수는 인플레이션 비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24% 증가에 그쳤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 부분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져 1969년에는 하버드 로스쿨 학장 보수보다 많았던 판사의 보수가 현재에는 주요 로스쿨 고참 교수 연봉의 절반에 불과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법원의 경우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해, 1999년 이래 단 한 차례의 보수 인상도 받지 못한 뉴욕주 법원 판사 4명이 뉴욕 주지사와 주의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달 뉴욕주법원은 “판사에게 적절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면서 90일 이내에 판사의 보수를 인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물론 미국에서 판사라는 자리가 갖는 엄청난 명예와 법관에서 은퇴하더라도 종신으로 동일한 보수를 지급받는 철저한 신분보장 시스템에 비추어 이러한 절박함을 공감할 수 없다는 국민들의 시각이 다수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국 대법원은 향후 사법부의 사활은 유능한 법관 자원의 계속적인 확보에 달려있다고 보고,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하면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우선 렌퀴스트 전 대법원장이 약 20년 전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래, 로버츠 대법원장도 해마다 법관보수 현실화 문제를 주장해 왔다. 케네디·브라이어·얼리토 대법관도 지난 해 상원 및 하원 법사위에 출석해 판사보수의 실질적 감소가 사법부 독립에 위협이 되고 있음을 생생히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최대 변호사 단체인 ABA도 하원 법사위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의회가 당장 법관들의 보수를 현실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현재의 불합리한 법관보수 결정구조를 개혁할 것을 권고했다. 많은 언론과 학자들도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 덕택인지, 지난해 말 하원 법사위는 법관 보수를 31%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상원도 현재 비슷한 법안을 다루고 있어 올해에는 보수인상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 법안을 합리적인 절충안으로 치켜세우며 앞으로 입법부, 행정부와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교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화답했다.

아직도 많은 법조인들이 판사직을 최고의 영예로 여기고 있고, 최근 수년간 법원을 떠난 판사들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적다고 하니, 우리에 비하면 다소 과장된 위기의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이러한 관심과 애정 어린 우려,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있기에 미국의 사법부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법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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