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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표현의 자유와 음란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

표현의 자유가 모든 표현을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 연방대법원은 1942년의 Chaplinsky v. State of New Hampshire사건 판결을 비롯한 여러 판결들에서 ‘음란한 표현’(obscenity)을 ‘명예훼손’(defamation)이나 ‘싸움을 거는 말’(fighting words)과 함께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조항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표현유형들 중의 하나로 열거해오고 있다. 따라서 음란은 허용되는 성적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는 ‘성적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되는 것이며, 음란한 것으로 판명된 성적 표현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지 못하는 표현이 된다. 그런데 무엇이 음란한 표현인가는 법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음란에 대한 판단은 최종적으로는 전적으로 법원의 몫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음란성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일은 국민들의 성적 표현의 자유 보장과 관련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떠맡게 된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가 되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음란성의 문제를 미국 연방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처음 본격적으로 다룬 사건이 1975년의 Roth v. United States(354 U.S. 476)사건이다. 이 사건은 ‘음란하거나 외설적인(obscene or indecent)’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이를 소지한 자를 처벌한 캘리포니아주 형법의 위헌성 여부를 물은 1957년의 Alberts v. California(354 U.S. 476)사건과 병합되어 심리되었다. Roth사건에 있어서의 주된 이슈는 수정헌법 제1조가 과연 ‘음란한 언론과 출판’을 그 보호대상으로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연방음란법은 ‘음란한, 추잡한, 음탕한, 불결한 혹은 그 외 다른 외설적인 성격의 출판물’(obscene, lewd, lascivious, or filthy or other publication of an indecent character)의 우편우송을 연방범죄로서 처벌하고 있었고 이 규정은 그 범죄행위를 ‘알면서’(knowingly) 그러한 행위를 한 자에 한정돼 적용되고 있었다. 또한 캘리포니아주 형법은 ‘음란하거나 외설적인’ 물건을 그 판매나 광고를 목적으로 소지하는 것을 벌하고 있었고, 그때 그 금지된 행위는 ‘계획적이거나 추잡하게’(willfully or lewdly) 행해지는 것에 한정되었다. 이 사건의 피고인 Roth는 뉴욕의 출판업자였는데 그는 위의 연방음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유죄의 판결을 받았다. 병합된 사건의 피고인 Alberts는 캘리포니아주 우편 판매상(mail-order seller)으로서 위의 캘리포니아주 형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유죄의 판결을 받았다. Roth와 Alberts는 자기들을 처벌하려는 연방음란법과 캘리포니아주 형법이 “표면상의 이유로 그리고 공허하고 아무 알맹이 없는 기준으로(on their faces and in a vacuum) 미국 연방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와 명확성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연방대법원에 이 사건을 상고했다.

Brennen대법관에 의해 집필된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수정헌법 제1조가 과연 ‘음란한’ 언론과 출판을 그 보호대상으로 하는가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음란한 표현은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언론.출판의 범위밖에 있다. 수정헌법 제1조는 모든 표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들이 갈망하는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유로운 사상의 상호교환을 보장하기 위해 규정된 것이다. 수정헌법 제1조의 역사를 보더라도, ‘전혀 사회적 중요성으로 그 흠이 벌충될 수 없는’(utterly without redeeming social importance) 음란한 표현물의 거부는 당연히 암시된 것이다. ‘성(性)’과 ‘음란’은 동의어가 아니며 음란한 표현물이란 “호색적 흥미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성을 다루는 것”(material which deals with sex in a manner appealing to prurient interest) 혹은 “음탕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는 표현물”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성에 관한 책들은 위급상황에 직면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책이나 그림 혹은 출판물이 음란한가 여부를 심사하는 배심원들은 ‘그 공동체사회에서의 평균인’에 미칠 영향을 기준으로 음란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판사의 평결지침에 따를 수도 있다. 따라서 음란여부의 판단은 “현재를 기준으로 한 공동체의 공통된 양심을 훼손하는가”(whether it offends the common conscience of the community by present-day standards)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음란법규 조문상의 용어들이 정확한 뜻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적법절차의 목적과 취지를 살리기 위해 헌법에 의해 요구되는 전부는, 그 조문상의 용어가 통상인들의 이해와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무엇이 금지된 행위인가에 대한 충분히 명확한 경고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심법원의 유죄결정을 확정한다.

이 Roth판결이 가지는 판결사적(判決史的) 의미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음란성 판단의 기준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 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연방대법관들이 깊은 고민끝에 ‘호색적 흥미에 호소하는 방법인지의 여부’, ‘현재를 기준으로 한 공동체사회의 평균인의 양심 훼손 여부’를 음란성 판단의 이단계 심사기준으로 제시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많은 헌법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Roth판결은 그것이 해결한 것만큼이나 많은 미해결의 문제들도 남겼다. ‘호색적 흥미에 호소하는 방법인지의 여부’,‘현재를 기준으로 한 공동체사회의 평균인의 양심 훼손여부’를 심사하는 이단계심사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다룸에 있어서는 거의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은 많은 의문점들을 쏟아 내었다. 첫째, 어떤 표현물이 음란한 것인지의 여부를 판사가 결정하는가 아니면 배심원이 결정하는가의 문제, 둘째,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할은 독립적인 사법심사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급심법원의 기록에 중요한 실체법상의 증거가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따름인가의 문제, 셋째, 음란서적의 제작자나 판매자가 유죄의 판결을 받기 전에 그 제작자나 판매자에게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유죄’(guilt beyond a reasonable doubt)가 입증되어야 하는가, 또 만약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유죄인가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우리 형법은 제244조에서 음란물의 제조 및 소지 등을, 제243에서 그 반포 및 판매 등을 벌하고 있다. 두 형법조문에 있어서 행위의 객체는 공히 ‘음란한 물건’이고 따라서 ‘음란한’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소위 ‘음란죄’ 사건의 판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여기에서 적지않은 사람들은 음란죄가 형법상의 범죄로 규정된 것이니만큼 ‘음란성’이라는 것이 순수하게 형법상의 개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어떤 표현물의 ‘음란성’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중요한 기본권을 떠나서는 규명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은 형법상의 개념이자 더 중요하게는 헌법상의 개념이 된다. 더 나아가 헌법상의 개념이기 때문에, 이익형량심사 등을 통해 똑같은 성적 표현에 대해서도 시대와 사회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 개념이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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