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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美 연방대법관들, 언론을 향해 입을 열다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미국 연방대법관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유일한 흑인 대법관인 클라렌스 토마스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이라고 불리어질 정도이다. 영향력이 큰 만큼 국민의 관심도 지대하다. 대법원에서 중요한 구술변론이 열리면 방청을 원하는 국민들은 전날부터 대법원 청사 앞에 줄을 서서 밤을 지새운다. 구술변론의 속기록은 곧바로 인터넷에 공개되며 언론은 어느 대법관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 소상히 소식을 전한다. 다만 법정안의 변론 모습은 언제나 법정전문 화가의 고풍스런 스케치로만 보도된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국민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대법관들은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법관을 위해 일하는 로클럭들도 보안유지를 맹세해야 하고, 어쩌다 법원 내부의 뒷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면 그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식되었다. 국민들이 대법관의 사법철학이나 인생관에 대해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대법관이 되기 위한 상원의 인준청문회가 유일한 것이었다. 이런 미국에서 대법관이 TV에 출연해 2000년 미국 대선을 결정지었던 Bush v. Gore 판결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담담하게 밝혔다면 아마 법정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여겨질 것이 분명하다.

미국 대법관 중 가장 보수적이고 문리해석에 엄격한 것으로 유명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그동안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원칙에 가장 충실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1803년의 Marbury v. Madison 판결에 대한 견해를 묻는 의원의 질문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그였다. 심지어는 2003년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 공로로 상을 받는 자리에서도 기자들의 취재를 막아 언론으로부터 아이러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CBS의 유명시사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하여 낙태, 성조기 소각을 비롯한 사회의 민감한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보수주의자로서의 사법철학, 과거의 주요 재판에 대한 소회를 담담히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태리 이민자 출신으로 첫 대법관에 오르기까지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뉴욕 퀸스의 초등학교를 찾아 어린시절 성적표를 공개하고, ‘바티칸 룰렛’ 방식으로 피임을 하다 보니 9남매를 두게 되었다는 조크를 통해 자신의 독실한 카톨릭 신앙까지 자연스레 보여주었다. 그를 완고하고 까다로운 고집쟁이로만 여겼던 국민들은 너무도 털털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자신의 사법철학에 관해서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는 노대법관의 당당한 모습에 푹 빠져들었다.

스칼리아 대법관뿐만이 아니다. 1991년, 일약 43세에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자신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애니타 힐의 등장으로 몹시 호된 인준청문회를 겪어야 했던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은 언론과의 접촉을 일체 피했음은 물론 취임 이후 2년간 구술변론에서 한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토마스 대법관 역시 스칼리아 대법관보다 앞서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가난 탓에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아버지 아래서 자랐던 어린시절을 회고하면서 흑인으로서 대법관이 되기까지의 고단했던 삶을 솔직히 털어놓았고, 애니타 힐 사건에 대한 억울함, 유일한 흑인 대법관이면서도 소수자 배려정책을 반대하는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이야기했다. 흑인 배려 케이스로 실력이 모자라 구술변론에서 침묵을 지킨다는 항간의 비판에 대해서 마샬 대법관의 예를 들며 자신은 언론과 청중을 의식한 의도적인 연기는 하지 않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캠핑카를 손수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끔씩 부인과 함께 월마트 주차장에 캠핑카를 세워두고 하룻밤을 지내기도 한다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일부 언론들은 두 대법관 모두 최근 출간한 책 선전을 위해 갑자기 언론을 이용한다는 비판적 논조를 보이기도 했고, 실제로 토마스 대법관의 회고록은 방송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연방대법관들의 변신을 설명하기에 너무도 부족하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며칠 전 캔사스 대학에서 열린 ‘루이지애나주 매입 20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30여분간의 유머러스한 연설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즉석에서 로스쿨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사법적극주의의 한계, 사법부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 등에 조심스런 주제에 관해 신중하면서도 의미있는 답변을 내 놓았다. 그는 또 향후 25년간 대법원이 직면할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고 답했다. 캔사스 로스쿨 학장은 “학생들의 어려운 질문에도 신중하고 사려 깊게 답변하는 대법원장님의 모습에서 학생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라고 치하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언론은 이러한 변화가 칩거했던 렌퀴스트 대법원장과 달리 보다 가볍고 개방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새로운 리더십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 한계도 있다. 의회는 지난 해 법정내부의 카메라 취재를 허용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케네디 대법관이 직접 의사당에서 상원의원들을 설득해 법안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연방대법원이 과연 얼마나 빗장을 풀 것인지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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