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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법조계

[워싱턴 법조계] 미국 대선이 가져올 사법부의 변화

강한승 판사(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이 오바마 상원의원의 승리로 굳어지면서, 공화당 후보로 일찌감치 확정된 맥케인 상원의원과 오바마 상원의원 사이의 대결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바야흐로 보수 대 진보의 한판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 5월 초 맥케인은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야말로 사법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을 대변해,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연방대법원에 확실한 보수파 대법관들을 지명하겠다고 선언하며 오바마를 공격했고, 이 문제가 중요한 대선 쟁점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모든 연방판사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되고, 한번 임명되면 종신으로 재직하는 미국의 특성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몇 명의 연방판사를 임명했는가는 대통령의 중요한 정치적 업적이 되며, 그 만큼 치열한 정쟁을 거쳐야 한다. 현재 미국 연방판사의 총정원 875석 중 47석이 공석인데, 그 중 31석은 대통령이 이미 후보자를 지명했음에도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한 채로 계류 중이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 상원 구조에서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판사가 인준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당시 소수당이었던 민주당이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판사 10명의 인준을 막기 위해 고의적인 지연전술(filibuster)을 쓰자, 공화당 원내대표는 관례에 없던 의장 직권상정을 통한 표결처리라는 비상수단을 경고했고, 이에 발끈한 민주당이 상원의 모든 절차에 협조를 거부하겠다고 맞대응을 해 상원이 파행 위기에 처한 일이 있다. 당시 맥케인 상원의원을 포함한 양당 중도파 14인이 양측을 중재하여 어렵게 연방판사 3인에 대한 인준만이 통과된 사례가 있다.

맥케인은 자신이 과거 보수파 법관의 임명과정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인지 이번에는 더욱 강하게 사법부의 보수화를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맥케인은 연방법원이 사법권을 남용하고 있음을 강한 톤으로 비판하면서 “헌법의 기초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법논리를 내세워 국민의 대표자에 의해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할 정치적 문제까지도 판결로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판사들이 종신직을 보장받다보니 대통령과 의회는 물론 국민의 의사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보수주의자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얼리토 대법관과 같은 분들을 모델로 삼아 차기 대법관을 지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반면에, 오바마는 “보수화된 법원이 힘 없는 자보다 힘 있는 자에게, 개인보다 기업과 정부편에 기울어져 있는 것을 우려한다”며 “힘 있는 자만을 보호하고 평범한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혼자서 힘겨운 싸움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판사들을 임명하는 것이야말로 엘리트주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시카고 로스쿨에서 헌법을 가르쳤던 오바마는 1960년대 인종차별 철폐와 민권신장에 앞장섰던 얼 워렌 대법원장과 현 대법관 중 진보경향의 브라이어·긴스버그·수터 대법관들을 거명하면서 “나는 법관들이 보통 사람들이 겪는 삶의 애환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와 이해심을 가진 사람들이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 스칼리아·토마스·얼리토 대법관 등 보수파 4명과 스티븐슨·긴스버그·수터·브라이어 대법관 등 진보파 4명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고, 중도파인 케네디 대법관이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중 최고령자 2인이 모두 진보파로 스티븐슨 대법관은 88세가 되었고, 긴스버그 대법관은 75세이다.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차기 대통령은 적어도 1명 이상의 대법관을 지명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맥케인이 선출된다면 대법원은 보수파가 확실한 다수를 장악하게 되며, 오바마가 선출된다면 진보파 대법관의 후임으로 다시 진보주의자를 임명함으로써 적어도 현구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이번 대선은 차기 대법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와 직결되어 있으며, 이것이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의 밑바탕에는 사법부의 역할과 사법적극주의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자리잡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헌법의 원래 의미를 존중하며 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판사가 좋은 판사라는 것이고, 진보주의자들은 살아있는 정의를 실현시키는 것이야말로 판사의 진정한 임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 인준청문회에서 한 답변이 유명하다. “판사는 심판과 같다. 심판은 규칙을 만들지 않고, 적용할 뿐이다. 물론 심판과 판사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야구장에 심판을 보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판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맥케인이 말하는 냉철한 머리인가, 오바마가 말하는 뜨거운 가슴인가? 미국이든 한국이든 판사들에게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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