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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종교와 과학의 대결

임지봉 교수

1987년의 Edwards v. Aguillard(482 U.S. 578)판결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다고 창조론도 가르칠 것을 명하는 주법(州法)에 위헌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건의 배경 및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중반 이후 백년 넘게 과학자, 교육자, 종교지도자들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 두 패로 나뉘어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충돌해왔다. 한쪽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쪽으로서, 지구상의 생명은 수십억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진화해왔으며 인간도 다른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다른 쪽은 창조론(creation science)으로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한 번에 조물주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며 진화된 것이 아니라는 성경의 내용을 신봉했다. 20세기 초반에는 정통파 기독교 신자인 변호사 William Jennings Bryan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그 후 실제로 Tennessee주 주(州)의회가 그런 주법을 통과시켰으며 대통령에는 당선되지 못했지만 연방 하원의원에 훗날 미국 국무장관에까지 오른 Bryan은 진화론을 가르친 교사 John Scopes를 기소하는 일을 도왔다. 소위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 재판에서 유명한 Clarence Darrow변호사가 Scopes측의 변론을 맡았다. Scopes는 하급심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최종심인 항소심에서는 기술적인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 법 자체는 여전히 합헌으로 유지되었다. 그 후 몇몇 주들이 유사한 법을 통과시켰지만, 대부분의 주들이 그 법들을 다시 폐지시켰다. Louisiana주 주의회는 좀 다른 방식을 채택했다. 1980년에 소위 ‘창조론법’(Creationism Act)을 주법으로 통과시키면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대놓고 금지하는 대신, 창조론을 가르칠 때에만 진화론을 가르칠 수 있게 했다. 즉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칠 경우 창조론도 가르쳐야 함을 주법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창조론을 가르치는 교사들에 대한 일정한 보호책들도 이 법에 구체화되었다. 공립고등학교 교사인 Donald Aguillard를 포함한 교사 및 학부모단체들이 그 주법이 연방헌법 제1조의 국교부인조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서 주지사 Edwin Edward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주정부는 그 주법이 생명의 기원에 관한 다른 관점들을 누르고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들을 학생들에게 제시함으로써 학문의 자유를 촉진하는 것으로서 합헌이라고 응수했다. 연방지방법원과 연방항소법원은 이 주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이 1986년 5월에 이 사건에 대해 사건이송명령장을 발부하며 사건 심리를 시작했다. 같은 해 8월에 72명의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과 미국 국립과학원을 포함한 24개의 과학단체들이 연방대법원에 의견서를 내어 그 Louisiana 주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그 법이 과학교육의 미래를 위협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Brennen대법관이 집필한 다수의견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다고 해서 주법이 창조론도 가르칠 것을 명할 수는 없다고 위헌결정을 내렸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국교부인조항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그 정부의 행위가 세속적인 입법 목적을 가진 것이어야 하며, 둘째, 그 정부 행위의 주요한 효과가 특정 종교를 선전하지도 금지하지도 않는 것이어야 하고, 셋째, 그 정부 행위는 종교에 대한 지나친 정부의 관여를 조장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본 사건에서 문제된 주법은 첫 번째 심사기준인 ‘세속적인 입법 목적을 가질 것’이라는 기준에 이미 저촉되기 때문에 후자의 두 가지 심사는 논할 필요도 없다. 이 주법이 외견상 공정한 교과과정 보장이라는 세속적 목적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첫째, 창조론을 가르치려면 진화론을 꼭 가르쳐야 한다는 동시적 요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진화론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어떤 보호도 주어지지 않는다. 셋째, 입법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법의 주요한 제안자가 인류의 기원과 관련된 자신의 특정 견해인 창조론을 관철하기 위해 법을 제안했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그 법이 세속적 목적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하급심의 위헌판결을 인용한다. 위헌의 결론은 같지만 추론과정이 다른 동조의견들도 있었다. Powell대법관은 동조의견에서, 종교적 목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법규정을 위헌이라 할 수는 없으며 그 목적이 현저하고 유력한(predominant) 것이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White대법관도 동조의견을 냈는데, 그는 만약 연방대법원이 첫인상만으로 문제된 법조항을 읽는다면 그 조항이 반드시 위헌으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연방지방법원과 연방항소법원이 그 법규정의 목적이 종교적인 것이라 보았고 이 법원들의 이러한 사실판단이 연방대법원에 의해 파기될 정도로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Scalia대법관은 아주 강력한 합헌의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어 살펴본 다수의견의 삼단계 심사가 별로 유용하지 않으며 특히 첫 번째 기준은 법제정의 배경이 된 입법 동기를 찾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고 이 부분에서 다수의견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논리가 애매모호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원에게 맡겨진 과업은 생명의 기원들에 관한 교육 내용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Louisiana주 주의회 의원들이 그러한 법제정을 통해 법규정의 문면(文面)상 세속적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지, 종교적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면서 그의 판단에 의하면 문제된 Louisiana주 주법규정은 문면상 세속적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1971년의 Lemon v. Kurtzman판결에서 확립된 삼단계 심사기준을 적용했다. 다수의견도 인정했듯이 이 기준은 전혀 명확하지 않다. Scalia대법관의 반대의견은 이 기준이 너무도 불명확하여 의회 의원들이 이에 관한 법을 만들 때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없음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정부가 ‘교과과정 통제’를 통해 특정 종교의 종교적 가치를 가르치려 들 수 있다. 주정부가 학교 교과과정에 대해 넓은 재량을 가지는 반면, 미국 연방헌법상의 국교부인조항 때문에 주정부는 그 권한을 특정 종교의 교의나 믿음을 선전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 이 Edwards v. Aguillard판결은 주법이 초자연적 존재가 인류를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점을 선전함으로써 종교를 승인하려 하고 있으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때로는 종교적 목적이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주정부가 어떤 법이 사회의 근본가치나 전통을 가르치는 세속적 목적들에 봉사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법을 정당화하려 할 때조차도, 만약 그 프로그램이나 관행이 본질상 주로 종교적이라거나 혹은 종교를 선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연방대법원이 판단한다면 그 법은 위헌선언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판결 이후에도 공립학교에서의 창조론 교육이 국교부인조항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에 관한 논란이 미국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공립학교 과학 교과과정상의 교육내용 속에 성경상의 교의가 어느 정도까지 반영될 수 있는가가 미국사회에서는 오랜 헌법적 공방의 화두가 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헌법적 공방의 본질이 사실은 ‘종교와 과학의 대결’이라고 보는 미국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강대 법대 교수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