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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별관의 추억

서세연 법무사(서울)

부동산등기규칙 제47조의2의 규정과 상업등기처리규칙 제43조의2의 제한규정 때문에 등기신청서 접수처가 여기저기 달라 손이 딸려 내가 직접 상업등기신청서류를 가지고 일반 건물보다 층고가 높고 계단 경사도가 가파르며 계단 단 높이도 평균치 보다 큰 층계를 힘겹게 올라 5층에 있는 접수창구에 접수를 하고 돌아 내려오면서 재직시절에 이 계단을 하루에도 수없이 단숨에 오르내리던 때가 새삼스러이 떠올라 감회에 젖었다.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다 늦어 뒤처진 시기에 초임에 임용됐다는 통지를 받고 흥분된 마음으로 이 건물 5층에 있었던 인사발령장 주는 곳으로 단숨에 뛰어 올랐던 일, 부푼 가슴으로 출근시간에 늦을새라 광화문 네거리 버스정류장에서 빠른 걸음으로 덕수궁 후문 돌담길을 걸어와 이 건물 6층에 있었던 사무실로 단숨에 뛰어 올라 왔던 일, 첫 출근하던 날 내 자리라고 일러준 상급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상급자가 자기의 캐비닛(Cabinet)에서 어떤 서류를 찾아내오라는 지시를 받고 눈치껏 찾아 주었던 일.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던가, 공문발송할 일이 있어 이 건물 5층에 있던 서무담당관에게 가면서 신발을 신지 않고,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신고 있던 슬리퍼를 그대로 신은 채로 갔다가 ‘남의 사무실에 오면서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왔다’고 얼굴을 붉히며 호통을 치는 소리를 듣고 너무 무안해서 내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던 일, 점심시간에 모두가 박봉이라 같은 방에 근무하는 직원들끼리 매일 사다리 타기 내기로 점심 값을 추렴해서 라면집에 가 라면만 서 너 달 계속 먹고, 한동안 라면만 쳐다봐도 신물이 올라오는 느낌을 가졌던 일, 속이 답답할 땐 이 건물 5층 옥상에 올라가 덕수궁 석조전 앞 넓은 정원을 내려다보고 시야를 더 넓혀 시청 앞 광장과 그 주위 건물들을 조망했던 일 등등.

내가 재직 시 잔뼈가 굵어가면서 몸담았던 이 건물은 ‘제2별관’이라는 이름으로 법원행정을 총괄하던 사령탑이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몸통은 다 떠나고 새로운 건물로 현대화·디지털(Digital)화하고 이 건물만 진공관식 구식건물 형태로 법원기능의 일부인 등기업무를 담당처리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건물은 변함없는 구조물 그대로 인데 계단을 오르는 나는 나이 수에 반비례한 기력의 쇠잔함인가, 초임 때 이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오르내리던 그 힘은 다 어디가고 지금은 한 계단 한 층 오르기가 이렇게 힘이 든단 말이냐.
겨우겨우 5층에 올라 신청서 접수창구에 가 “본직입니다” 하면서 때로는 법무사 신분증을 보이면서 신청서를 제출하고 돌아 내려오면서 더러 비감에 젖기도 하는 심정은 꼭 나이 탓만은 아니리라.

원망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는 나 자신이 완화되지 않은 위 규칙의 제한규정을 지켜야만 하는 것처럼 아무리 높고 가파른 계단이라도 올라갈 수밖에 없어 기어이 올라가 맡은 일을 처리하고는 있지만 그 때마다 문득 문득 노약자를 배려해 기존구조물을 개조해서 승강기를 설치해 놓은 지하철 역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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