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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통신] (12)법원모욕죄

권오곤 ICTY 재판관

1. 글머리에

우리나라에서 법원모욕죄는, 형법 제138조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법정에서의 심리방해 행위를 처벌하는 “법정(法廷)” 모욕죄의 의미로만 이해되어 왔다. 즉, 형법 제138조는 법원의 재판을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법정이나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하는 것만을 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하도록 하고 있고, 그 특칙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구 법원조직법(1949년 9월 26일 법률 제51호) 제55조는 법정 질서의 유지를 위한 재판장의 명령에 위반한 자, 심리를 방해한 자, 기타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해한 자만을 처벌(6월 이하의 금고 또는 벌금, 구류, 과료)하도록 하여, 그 어느 것이나 모두 법정에서의 행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더구나 위와 같은 행위도 검사의 기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을 뿐이었는데, 1981년 1월 29일 법원조직법의 개정(법률 제3362호)에 의하여 비로소 불고불리의 원칙의 적용을 받지 아니하고 법원이 직권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처벌 대상이 법정에서의 심리방해 등 행위에 그치는 것은 여전하였고, 그것도 20일의 감치가 그 최고 한도여서, 고유한 의미의 법원모욕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2. 국제재판소에서의 법원모욕죄

가. 재판소 고유의 권한

주지하다시피 ICTY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창설한 것인데, 법원모욕죄에 관하여는 안보리가 의결한 법규(Statute)에는 아무런 규정이 없고, 그 위임에 의하여 재판소의 재판관들이 제정한 소송규칙에서 비로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법규상의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소가 법원모욕죄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하는 점이 다투어졌는데, ICTY 상소심은 이러한 권한이 재판소의 사법기능으로부터 당연히 유래되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즉 재판소가 그에 부여된 국제 형사재판권의 행사를 방해받지 아니하고 그 기본적인 사법기능을 다할 수 있기 위하여, 사법 운영에 방해가 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당연한 권한(inherent power)이라는 이유에서이다. 한편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로마규정에서는 위증죄를 포함하여 법원모욕죄에 관한 명문의 규정을 두면서, “사법운영을 침해하는 범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사법운영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재판소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법원모욕죄로 되는 행위

ICTY 소송규칙은, “재판소는 그 고유한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고의적으로 사법운영을 방해하는 자를 법원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선언하면서, 예시적으로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는 행위, 재판부의 명령에 고의적으로 위반하여 재판절차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재판부의 출석 명령 또는 문서제출 명령에 불응하는 행위, 증인에 대하여 협박, 위협, 폭행을 가하거나, 금품 제공, 기타의 방법으로 간섭을 하는 행위 등을 들고 있다. 소송규칙은 위증죄(이에 관하여도 법규상 아무런 규정이 없다)에 관하여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으나, 그 처벌 절차 및 형량은 법정모욕죄의 경우와 대동소이하다.

다. 절차 및 처벌

어떤 사람이 법정모욕죄를 범하였다고 볼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재판부는 검사에 대하여 그 조사를 명할 수 있고, 검사가 사안과 관련하여 상충하는 이해가 있는 경우에는 특별검사(amicus curiae)를 선임하여 수사 후 재판부에 보고하도록 할 수도 있다. 만약 조사의 필요 없이 법정모욕죄의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곧바로 검사에게 기소를 명하거나, 재판부 스스로 기소에 갈음하는 명령을 발할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특별검사로 하여금 소추를 하게 할 수도 있고 재판부 스스로 직접 소추를 할 수도 있다. 피고인이 유죄로 인정되게 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만 유로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양자를 병과할 수 있다. ICTY에서는 1993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24명의 피고인이 기소되었는데, 증인이 증언을 거부하거나 소환(subpoena)을 받고도 출석을 거부한 것, 언론인이나 변호인 등이 증인보호를 위한 비밀사항을 공개한 것 등이 대표적 행위이다.

3. 맺는 말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선진제국의 사법부에 비하여 다소 권위가 떨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유한 의미의 법정모욕죄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법원의 명령이 아무리 위법,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이를 따르면서 소송절차 내에서 다툴 수 있을 뿐 이에 불응하면 법원모욕죄로 처벌받게 되는 영미의 “collateral bar rule”까지 채택하지는 않더라도, 법원이 권위를 가지고 그 사법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법원의 명령이 이행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검찰을 포함, 당사자가 법원의 명령에 대하여 불복 상소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에 불응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민사모욕죄(civil contempt)도 일부 도입이 되어 있고(예컨대 가사소송법상의 위자료 지급의무 및 유아인도의무 불이행시의 감치), 금전채권의 강제집행과 관련하여 재산명시제도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원이 채무자의 재산사정을 감안하여 특정한 이행명령(예컨대 기한부 또는 분할 변제)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이행시까지 채무자를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그 전반적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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