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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전쟁과 명백·현존하는 위험 원칙의 왜곡

임지봉 교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에는 공산주의의 발호가 세계적으로 큰 위협이 되었다. 이에 미국 연방의회는 1940년에 New York주의 ‘무정부주의자 처벌법’(criminal anarchy statute)과 비슷한 내용의 Smith법을 연방법률로 제정 했다. 이 법 적용과 관련한 최초의 연방대법원 사건이 ‘명백하고 있을 수 있는 위험의 원칙’을 탄생시킨 1951년의 Dennis v. United States(341 US 494)사건이다.

Smith법은 위력이나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도록 가르치거나 이를 옹호하는 행위, 혹은 그것을 위해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또한 이러한 행위의 모의도 금지했다. Dennis와 공산당 간부들이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하고자 모의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공산당은 규율이 잘 되고 전략적 위치로 침투를 잘하며 별명과 중의법(重意法)을 잘 쓴다는 점이 여러 증거들에 의해 입증되었다. 공산당은 당 내부의 통제가 엄격했으며 당원간의 불화를 일체 용인하지 않았다. 공산당의 당헌, 강령, 성명서 등은 무력과 폭력에 의한 성공적인 정부 전복을 옹호했다.

Vinson 대법원장에 의해 집필된 4인의 다수의견은, 무력이나 폭력에 의한 정부 전복 옹호와 그 모의를 처벌하는 Smith법이 공산당 간부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수정헌법 제1조상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의 합헌성 심사에 있어서 그 심사기준은 다음과 같다. 즉, 표현행위가 비인쇄매체상에서 비언어적으로 이루어졌다면 법 위반 증거로서의 언론이나 출판에 근거한 유죄결정은 그 언론이나 출판이 금지된 범죄행위를 모의하거나 완수함에 있어 명백·현존하는 위험을 발생시킬 때에만 내려질 수 있다. 이 사건에서, Smith법은 무력이나 폭력에 의한 전복으로부터 정부를 보호하려 하고 있다. 확실히 이것은 정부가 언론을 제한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제는 명백·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하느냐가 결정되어야만 한다. 정부 전복 기도의 성공이나 성공가능성은 그 정부 전복 기도가 명백·현존하는 위험을 구성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문제는 표현행위로 발생될 해악의 중대성이 해악 발생의 위험 회피를 위해 필요한 언론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하느냐 이다. 다른 나라들에서 유사한 폭동이 있었다는 점, 지금 세계정세가 격해지기 쉬운 불안한 상태라는 점, 공산주의국가와 우리의 관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봤을 때, 본 사건에서 간부가 시간이 되었다고 판단해 소집만 하면 언제라도 달려올 정도로 일사불란한 규율체계를 갖고 있는 고도로 조직화된 Dennis 주도 단체의 문제된 표현행위들은 우리로 하여금 명백·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한다고 믿게 만든다. 위험이 있는지의 여부는 헌법문제이지 사실인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배심원이 아니라 판사가 판단해야 한다. 하급심의 유죄결정을 인용한다.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 두 건의 동조의견과 두 건의 반대의견이 주장되는 등, 연방대법원 대법관들의 입장이 여러 갈래로 첨예하게 갈라졌다. 먼저 Frankfurter대법관과 Jackson대법관이 동조의견을 냈다. Frankfurter대법관은 법률의 합헌성은 국가의 안전에 대한 이익과 민주사회에서의 언론의 자유에 대한 이익간의 형량에 의해 결정되며 이러한 이익형량은 법원이 아니라 입법부에 의해서 행해져야만 하고 법원은 수정헌법 제1조상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포함해 모든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에 합리적 근거가 없을 때 이 법률을 위헌이라 선언할 수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았을 때 Smith법은 의회가 합리적인 입법을 한 것이라 결론지었다. Jackson대법관은 무력이나 폭력에 의한 정부 전복을 가르치거나 옹호할 목적으로 이를 모의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한 법률은 심지어 명백·현존하는 위험이 없더라도 적용될 수 있으며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대의견들도 있었다. Black대법관과 Douglas대법관이 각각 별개의 반대의견을 냈다. 우선 Black대법관 반대의견의 추론요지는 다음과 같다. 수정헌법 제1조상의 권리는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우선적 위치를 가져야만 한다. 그러한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들은 단순한 합리성의 근거에서 법원에 의해 지지를 받아서는 안 된다. 다수의견은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를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정도로 높게 보장하지 않고 그 중요성을 희석시켰으며, 급기야 수정헌법 제1조 규정이 의회에 대해 단순한 경고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도록 했다. 반대의견을 곧잘 내어 ‘위대한 반대자’(The Great Dissenter)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Douglas대법관은 이번에도 별도의 반대의견을 냈다. 표현의 자유를 어떤 경우에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기본권의 하나로 보는 그의 평소 소신대로 그는 Whitney판결에서 ‘급박성’의 요건까지 추가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였고 그 결과 Dennis와 공산단 간부들이 무죄결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추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옹호된 해악이 급박하다는 위험을 분명하고 객관적으로 입증할 때에만 수정헌법 제1조상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 가능하다. 정부의 폭력적 전복을 옹호하는 Dennis와 다른 공산당원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본 사건에서, 이에 대한 입증이 전혀 없다. 상황이 심각하여 언론이 해악을 회피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에만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또한 명백·현존하는 위험이 있는지 여부는 판사가 아니라 배심원이 판단해야 한다.

이 Dennis판결은 명백·현존하는 위험 원칙의 ‘왜곡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연방대법원은 Smith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명백·현존하는 위험 원칙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던 ‘시간’ 기준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언론의 자유의 광범위한 보호를 위해 삽입했던 심사기준의 한 중요한 요소를 제거해 버린다.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은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정부가 그 표현을 규제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정부 전복의 목적에 대한 성공이나 성공가능성이 기준이라는 주장도 거부했다. 대신, ‘발생 불가능성 때문에 감소되기도 하는 해악의 중대성이 해악 발생의 위험 회피를 위해 필요한 언론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하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명백·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의 원칙이 ‘명백하고 있을 수 있는 위험’(clear and probable danger)의 원칙으로 왜곡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때, 1927년의 Whitney v. California판결을 통해 추가된 ‘급박성’(immediacy)의 요건은 해악 발생의 ‘가능성’(probability)을 거쳐 해악의 ‘중대성’(seriousness)의 요건으로 바뀌게 된다. 즉 해악이 중대한 것이면 해악의 발생가능성이 아무리 적더라도 표현행위에 대한 제한이 허용되는 것으로 다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기준 하에서 급진적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거의 보장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표현은 항상 정부의 눈에는 정부에게 위협이 되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해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이 판결의 심판대상이 되었던 Smith법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에 만들어졌고, 이 판결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내려졌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쟁시에는 미국 연방의회나 연방대법원이 표현의 자유 ‘보장’보다는 ‘제한’ 쪽에 무게를 두게 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고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은 왜곡을 거쳐 또 다시 암흑의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강대 법대 교수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