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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통신] (11) 증인의 진술이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다른 경우

권오곤 ICTY 재판관

1. 글머리에

전통적인 영미식의 재판에서는 구술주의, 직접주의의 요청에 따라, 증인의 법정에서의 증언만이 증거가 되고, 증인이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진술서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증인이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신문조서, 진술서 등은 그 본질상 전문증거(hearsay)로서,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 ICTY에서는, 증인이 법정에 출석하여 자신이 작성한 진술서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반대신문에 응하는 경우 ‘주신문에 갈음하여’ 당해 증인의 진술서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 절충적 제도를 발전시킨 바 있지만 (2007년 2월 22일자 헤이그통신: ‘증인 진술서의 증거능력’ 참조), 이 경우에도 증인이 그 내용을 부인하는 부분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 아래에서는 영미법계 재판과 국제재판소에서 증인의 법정 증언이 종전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내용과 다른 경우에 당사자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에 관하여 살펴본다.

2. 반대 당사자의 조치: 반대신문

검찰 측 증인이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진술서는, 재판 시작 전에 피고인 측에 미리 개시(開示)하여야 하고, 이러한 증거개시가 공소장 일본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은 전술한 바 있다 (2006년 12월 7일자 헤이그통신: ‘공소장 일본주의의 실상과 허구’ 참조).

따라서 피고인 측은 검찰 측 증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내용을 미리 파악하고 있을 수 있고, 증인의 법정에서의 증언이 그의 종전 진술과 모순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증인에게 종전의 진술서를 제시하고 그 진위 또는 증인의 신빙성을 따질 수 있다. 이는 반대신문 시에는 일반적으로 유도신문이 허용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3. 당해 당사자의 조치: 자기 증인에 대한 탄핵

가. 원칙적 금지

전통적인 영미의 재판에서는, 증인이 종전의 진술을 바꾸거나 기대하였던 만큼 자기 측에 호의적인 진술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기 증인의 일반적 성격이나 신빙성을 스스로 탄핵하거나, 그가 종전에 한 진술을 제시하고 따져 묻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당해 증인이 신빙성이 있다고 하여 그 증언을 듣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스스로 자기 증인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것은 모순이고, 법률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로 하여금 증언의 어느 부분을 믿고 어느 부분을 믿지 않아야 하는지 알 수 없도록 혼란에 빠뜨리기만 할 뿐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나. 예외

영미법계 재판에서 증인에 대한 주신문 과정에서 예외적으로 그의 종전의 진술서를 제시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이다.

첫째로는 증인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는 때에, 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종전의 진술 내용을 읽어주거나 제시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증인이 종전의 진술 내용이 옳다고 확인하게 되면 그와 같이 증언한 것으로 되지만,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뿐이고, 종전의 진술 내용이 별도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로는 증인이 종전의 진술 내용을 뒤집어 ‘적대적 증인’으로 된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증인이 적대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증인이 단지 일부 사항에 대하여 종전과는 다르게 이야기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을 재판부에 입증한 후, 그 허가를 받아, 당해 증인에 대하여 종전의 진술내용을 제시하는 등 따져 물을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경우에도 증인이 종전에 작성한 진술서는 증인의 법정에서의 진술을 탄핵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일 뿐이고, 그 진술서 내용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 ICTY에서의 전개

ICTY의 재판절차는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의 재판절차를 혼용하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영미법계의 대립 당사자주의적인 재판제도가 주도하고 있고, 따라서 자기 증인에 대한 탄핵도 “적대적 증인”의 경우 이외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실무였다. 그러나 밀로셰비치 재판과정에서, 필자가 이러한 원칙은 배심제를 취하고 있는 영미법계 재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서, 전문적인 법관이 사실인정을 하는 ICTY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필요 없다는 반대의견을 낸 바 있고, 최근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스레브레니차 학살사건 재판부에서는 오히려 다수의견으로 필자의 위 반대의견을 따르는 결정을 내렸는데, 현재 그 결정이 중간 상소에 따라 상소심 계류 중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4. 맺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자기 증인에 대한 탄핵 금지라는 것은 낯선 제도로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증인에 대하여 그의 종전의 진술을 제시하는 것도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으나, 유도신문 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핵심적인 증언 내용에 관해서는 운용의 미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증인이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내용을 부인하는 경우, 종래에는 진술조서의 진정 성립만 인정되면 그 증거능력이 인정되던 것이, 이제는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진술한 것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증거능력이 있도록 한 것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범세계적인 기준에 부합하도록 한 걸음 더 나아간 조치라 아니할 수 없고, 앞으로 그 발전과정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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