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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명백·현존하는 위험 원칙의 후퇴

임지봉 교수

Schenck판결과 같은 해인 1919년에 나온 연방대법원의 Abrams v. United States (250 US 616)판결에서는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약간 후퇴한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Abrams 등은 당시의 러시아를 휩쓸던 러시아혁명에 우호적인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해병대를 시베리아에 보낸 것을 러시아 혁명을 진압하기 위한 시도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들은 미국의 독일과의 전쟁 수행을 방해할 의도로 전쟁 물자를 감축 생산하도록 주장하는 수 천 장의 전단지를 뉴욕 시에서 인쇄하고 배포했다. 그 전단지는 근로자에게 독일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대해서도 사용될 수 있는 총탄을 생산하지 말도록 종용했다.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계속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Holmes판사의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은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보다는 표현자의 ‘의도’나 ‘위험 경향(bad tendency)’에 더 주목했다. 그래서 피고인에게 미국의 독일에 대한 전쟁 노력을 방해할 ‘의도’가 있었느냐를 먼저 보았다. 피고인의 주된 목적은 러시아를 돕자는 것이지만 러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전쟁 물자 생산의 감축은 독일에 대한 전쟁 노력을 해치지 않고서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Abrams 등의 전단지에는 ‘사회적 혼란’이라는 해악을 발생시킬 ‘위험 경향(bad tendency)’이 존재하고 방첩법 규정이 금지하는 ‘의도’도 담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위험 경향’의 기준이 6년 후 후속판결을 통해 부활하면서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또 다시 후퇴시킨 것으로 Gitlow v. New York(268 US 652)판결이 유명하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Gitlow는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선동하고 정부를 전복해 혁명적 무정부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사회주의자 선언서’(socialist manifesto)를 출판했다. 이 때문에 그는 뉴욕 주의 ‘무정부주의자 처벌법(criminal anarchy statute)’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동법이 뉴욕주 주 의회가 보기에 실질적 해악의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는 특정한 성격의 표현들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된 법조항은 위력, 폭력 및 불법한 수단으로 정부를 전복하는 것을 옹호하는 말도 금지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자 선언서’를 읽고 정부 전복 등의 실질적 해악으로 나아간 사람이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이에 Gitlow가 하급심의 유죄결정에 대해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Sanford 대법관이 집필한 다수의견은, 주 의회가 실질적 해악의 위험을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는 표현을 주법(州法)으로 직접 금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앞서 수정헌법 제1조 관련 사건들에 있어서 주된 쟁점은 문제된 표현이 실질적 해악을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느냐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뉴욕주 주법에 의해 구체적으로 성격 규정이 된 어떤 표현 속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하는지는 뉴욕주의회가 결정해야 한다. Gitlow의 표현은 이러한 금지되는 표현의 범주 내에 든다. 주 의회에 의한 결정이 이미 내려져 어떤 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주법이 정했다면, 주법에 의해 금지된 표현이 법원의 관점에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띠고 있지 않다고 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 즉 의회가 이미 일정한 유형의 표현은 실질적 해악을 발생시킨다고 결정했으므로 법원은 그 판단을 존중해야 하고 의회가 법규정을 통해 이렇듯 표현의 위험성을 판단해버린 경우에는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법조항 자체가 위헌이냐 하는 것이다. 문제된 뉴욕주 주법 조항은 위헌이 아니다. 주는 실질적 해악 발생의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는 표현을 금지할 수 있다.

Holmes 대법관은 명백·현존 위험원칙의 창시자답게, 이 사건에도 이 원칙을 적용했고 그 결과 문제된 뉴욕주법 조항을 위헌이라고 본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표현의 자유는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에 의해 보호받는 “자유(liberty)”의 하나이다. 따라서 표현에 대한 유죄결정에 적용될 심사기준은 이미 Schenck판결에서 개진된 대로 실질적 해악 발생의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 본 사건에서처럼 ‘사회주의자 선언서’의 출판이 해악을 발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큰 의구심이 든다면, 그 출판은 아마도 금지된 결과를 발생시키는 것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며 그에 대한 규제는 쓸데없는 것이 된다. 즉,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정부 전복의 현존하는 위험은 없다.

이 판결이 가지는 의미는 역시 Holmes 대법관이 1919년의 Schenck판결에서 개진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심사기준을 버리고, 어떤 표현이 공공의 안녕을 해칠 해악 발생의 위험스런 경향만 있으면 이 표현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위험경향 심사(Bad Tendency Test)’원칙을 적용한 점에 있다. 그러나 이 Gitlow판결은 그 후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포기되었다. 현재 연방대법원 결정들은 위법한 행위를 선동할 개연성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주 의회가 주법으로 어떤 표현이 그러한 개연성을 만들 수 있는지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Schenck판결 등은 어떤 표현행위가 특정 표현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다룬 것들이지만, 이 Gitlow판결은 법률 자체가 일정한 표현을 위험하다고 판단해 직접 금지한 경우에도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적어도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적용된 초기 판결인 Schenck판결이나 Abrams판결 등에서는 표현의 내용이 사실상 실질적인 해악을 초래했다는 점에 대한 명확한 입증없이 모두 유죄가 선언되었다는 점에서,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표현의 자유 보장 확대에 기여한 바가 크지 않다는 지적들도 당시에는 많았었다. 또한 동 원칙이 모든 표현행위 관련 사건들에 적용되는 포괄적인 원칙은 아니라는 한계도 곧잘 지적되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적용한 예는 Gitlow판결에서처럼 주로 정치적 선동이 문제된 사건이나 법정모욕사건에 국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동 원칙은 처음 정치적 선동에 대해 형사적 제재에 의한 직접적 제한을 금지하는 법리로 탄생된 것이었기 때문에, 취업상의 제한 등 간접적 규제나 해외여행의 규제 등 기타 행정적 규제의 위헌성 심사에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리 법원의 표현 규제입법에 대한 위헌심사에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운용할 때에 주의해야 할 점들이다. 표현 규제입법의 위헌심사와 관련한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들을 분석해보면, 주로 전쟁 수행 등의 비상시에는 명백·현존하는 위험원칙이 후퇴되고 평화 시에는 다시 부활하는 사이클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채롭다. 다음에는 동 원칙이 부활하는 사이클 상의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을 살펴본다.

서강대 법대 교수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