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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명백·현존하는 위험 원칙의 탄생

임지봉 교수

1787년에 제정된 미국 연방헌법은 고작 7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나마 이 조항들도 모두 입법·사법·행정부의 통치구조에 관한 조항들이었고 제대로 된 기본권 규정이 없었다. 4년 후인 1791년의 제1차 미국 헌법개정에서는 기본권 규정이 없는 헌법이 어디 있느냐는 비아냥을 일거에 불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한꺼번에 10개의 기본권조항들이 들어가게 된다.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불리는 조항들이다. 국민 기본권 보장과 관련해 세계사적으로도 큰 중요성을 가지는 규정들이다. 이 권리장전의 첫 조항인 수정헌법 제1조는 “연방의회는 국교(國敎)를 설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못한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위시한 여러 중요한 기본권들이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로스쿨들에서는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라는 과목이 헌법과목으로서 한 학기동안 강의되는 독립과목을 이룬다. 그만큼 미국 헌법학에서는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 등을 중시한다는 방증이다. 이 표현의 자유와 함께 곧잘 이야기되는 것으로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있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 내지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의 합헌성 판단기준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사용되는 중요한 원칙이다.

1919년의 Schenck v. United States판결(249 US 47)은 이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탄생시킨 판결로 유명하다. 1919년의 방첩법(Espionage Act)은 고의로 미 육해군에서 불복종, 불충성, 의무이행 거부를 선동하거나 선동하려 하는 행위와 고의로 징병을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Schenck는 우편으로 징집대상자 2명에게 전단을 보냈다. 그 전단에는 징병법이 위헌이라 쓰여 있었다. 전단은 징병법이 월스트리트의 선택받은 소수의 이익 때문에 인간성에 대항하는 거악이며, 징병 반대에 대한 비판은 교활한 정치인들과 돈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탐욕적인 자본주의 언론사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전단지는 “협박에 굴복치 말라”고 주장했지만, 징병법 폐지 청원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만을 충고했다. Schenck는 방첩법 위반으로 기소 당했다. 그는 전단지가 피징병자들의 징병을 방해하는데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배심원들의 주장에 대해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Holmes대법관에 의해 집필된 유명한 만장일치의 판결문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느냐 여부는 그 표현이 행해진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모든 행위의 성격은 그것이 행해진 상황이 무엇이냐에 크게 의존한다. 극장 안에서 갑자기 “불이야”라고 잘못 소리쳐 극장 안을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만드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표현이 어떤 상황하에서 행해졌으며 연방의회가 방지할 권한을 가지는 실질적 해악을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발생시키느냐이다. 그것은 ‘근접성과 정도(proximity and degree)’의 문제이다. 평화시에는 괜찮을 표현도 전쟁 중에 행해지면 전쟁 노력에 큰 방해가 되어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Schenck가 보낸 전단지는 전시에 행해진 표현으로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발생시킨다. 하급심의 유죄결정을 인용한다.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받는 표현의 범위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내린 최초의 판결들은 이 Schenck판결처럼 제1차 세계대전 중의 징병이나 전쟁 자체에 대한 반대 선동에 관한 것이었다. 비록 표현규제 입법에 합헌의 면죄부를 주고 Schenck에 대해 유죄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이 판결은 표현을 규제하는 입법의 합헌성 심사기준인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최초로 선언하고 적용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 판결에서 Holmes대법관은 표현행위에 대한 완벽한 면책에는 반대했지만, ‘악행을 낳을 표현의 경향성만 있다면 아무리 해악 발생과의 근접성이 없다 하더라고 그 표현행위를 규제하는 입법은 정당하다는 기준’, 즉 훨씬 더 제약적이고 훨씬 더 광범위한 표현행위의 규제를 담는 대안적 심사기준에도 역시 반대했다.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란 특정한 표현이 제한될 수 있는 경우란 그 표현이 정부가 방지해야 할 ‘실질적 해악(substantial evil)’을 가져올 것이 ‘명백’하고 그 위험이 ‘현존’하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했다. ‘실질적 해악’ ‘명백성’ ‘현존성’이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의 중요한 세 가지 요소인 것이다. 이 때, ‘실질적 해악’이란 국가가 방지할 필요가 있는 이익에 대한 침해나 위협을 뜻한다. ‘명백성’은 표현과 해악 발생간의 명확한 인과관계의 존재를 의미한다. 여기서 인과관계의 명확성은 어느 정도이어야 하는가? 이 명확성의 요구는 단순한 합리적 근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되어 진다. ‘현존성’이란 자유토론에 맡겨서는 그 해악의 발생을 방지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의 발생이 시간적으로 근접한 것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탄생 당시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의 초점은 표현이 행해질 당시의 상황 하에서 불법적 행위의 ‘근접성’과 위험의 ‘정도’에 맞추어져 있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정부가 표현의 ‘내용’을 규제하려드는 경우에는 정부 규제의 정당화에 무거운 입증책임을 지우는 엄격심사의 기준을 적용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 규제’의 경우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표현규제 입법의 합헌성 심사기준으로 등장하고 사용되게 된 것이다. 그런 표현규제 입법에는 통상적인 합헌성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법률은 거꾸로 위헌의 추정을 받는다. 표현의 자유의 적용문제는 어떻게 보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때 얻어지는 개인의 이익과 표현의 자유 제한으로 얻어지는 정부의 이익간의 비교형량으로 정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나 엄격심사는 정부 측에 가혹한, 이익형량의 가장 엄중한(stringent) 형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은 ‘표현의 자유의 수호신’이라고 까지 불리워질 정도로 표현의 자유 조항에 내실을 부여하고, 특히 표현 중에서도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호에 큰 공헌을 해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만약 정부가 쉽게 정치적 표현을 제한하거나 처벌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부는 합법적으로 정부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언론도 금지시킬 우려가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표현과 그것이 야기하는 해악 간에 엄격한 인과관계를 요구한다는 식의 표현의 자유 보장기준을 갖고 있지 않으면 정부는 언론이 단순히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를 규제하거나 집요하게 처벌하려 들 것이다. 우리 군사정권시절에 군사정권의 언론관이 바로 이러했다고 평가한다면 지나친 혹평일까.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생명력을 잃은 죽은 사회다. 이런 의미에서, ‘명백·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실제 재판에서 얼마나 엄격히 적용되는가 하는 것은 그 사회의 생명력과 활기를 나타내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서강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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