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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토론

[찬반토론] 의료인에 ‘무과실 입증책임’ 도입 <반대>

현두륜 변호사(前 의협 법제이사)
모든 수술에 부작용 존재… 결과 예측 못할 수도
소극적 진료로 수술 피하면 결국 소비자가 피해

지난 8월30일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인이 무과실을 입증하라는 입증책임전환을 주요 골자로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이 통과됐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해야 했던 의료사고 피해자인 환자 측은 환영하지만, 의료인들은 적극적인 의술을 펼 수 없다며 법안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의료사고의 입증책임 누가 지는 것이 옳은지 의료전문 법조인들의 찬반의견을 듣는다.

얼마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이하 ‘법률안’이라고 함)이 통과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한의사협회는 통과 즉시 반대성명서를 발표하였고, 국회 앞에서 국회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1인 반대시위를 시작하였다.

법률안 제4조 제1항은 ‘보건의료기관개설자는 당해 보건의료기관의 보건의료인이 의료기술을 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로 인하여 환자가 입은 생명·신체 및 재산상 피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개설자 및 보건의료인이 당해 의료사고에 관하여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지 아니하고, 보건의료기관의 시설·장비 및 인력의 흠이 없음을 증명한 때 2. 당해 의료사고가 ‘환자의 고의에 의한 행위로 인한 것인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법률안 제2조에서는 ‘의료사고’를 ‘보건의료인 등이 보건의료기관에서 환자관리 및 환자에 대하여 진단·검사·치료·의약품의 처방 및 조제 등의 행위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명·신체 및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고 정의하였다.

즉 진료과정에서 의료사고(‘의료과오’와는 구별된다)가 발생할 경우, 의료인측이 무과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인이 단서에 있는 면책사유를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입증책임의 전환을 통한 무과실 손해배상책임을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입증책임의 분배는 입법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료과오 소송에서 입증책임의 전환이나 무과실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는 것 자체를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입증책임의 전환을 통하여 무과실손해배상책임을 도입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과 형평에 부합한지,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이나 손실은 없는지 신중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의료과오 소송에서 무과실책임이나 입증책임의 전환을 도입하자는 주장의 주된 논거는 의료인에게 증거의 대부분이 편재해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하여 환자측에게 의료과실과 인과관계를 모두 입증하라고 요구할 경우 패소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손해의 공평한 분배라는 원리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론과 재판 실무는 개연성설, 사실상의 추정론 및 일응의 추정론 등을 통하여 환자의 입증책임을 상당히 완화하였다. 특히 재판부에 따라서는 입증책임의 전환에 가까울 정도로 의료인에게 입증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그리고 의료인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인정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증책임의 전환을 통한 무과실책임배상제도를 도입할 경우, 의료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의료분쟁의 수와 의료인이 배상해야 할 금액은 급증하게 될 것이다.

불법행위제도의 목적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에 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늘고 그로 인한 손해를 사회적으로 공평하게 분담시키기 위한 취지에서 무과실책임배상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는 과실책임에 의해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보충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과실책임의 원칙은 불법행위책임의 기본원리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현대 문명에 있어서 불가피한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한 손해를 사회적으로 분담시키는데 목적이 있고, 이를 위해서 책임보험 가입 강제와 형사처벌 특례 규정을 두고 있다. 모든 자동차운행자는 잠재적으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무과실책임 제도 도입이나 책임보험 강제 가입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제조물책임법에 의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제조자는 그로 인한 손실을 제조원가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제조자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의료사고의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의 건강보험제도하에서는 의료인은 의료사고에 대한 비용을 진료수가에 반영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진료수가에 각 의료행위의 위험도를 반영하였다고 하지만, 그 정도는 극히 미약하다. 보험료 부담 때문에 민간 책임보험 가입도 상당히 어렵다. 또한 의료인 역시도 의료사고의 원인을 밝힐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모든 수술은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에 대해서 전적으로 의료인에게 입증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입증책임의 전환을 통한 무과실책임이 도입될 경우, 의료인 개인이 그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이 경우 의료인의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방어적인 진료밖에 없다. 가능하면 위험한 수술을 피하려 할 것이며, 반면 불필요한 검사와 진료행위는 늘어날 것이다. 환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적극적으로 진료하려는 자세보다는 자신의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끔 하려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의료소비자에게 돌아올 것이고, 결국 국민 의료비 증가로 귀결될 수 있다.

이번 법률안에서는 입증책임 전환 규정은 그대로 통과된 반면, 그동안 의료계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온 조정전치주의와 무과실보상기금에 관한 규정은 의료 시민단체의 반대와 정부의 재정적 이유로 삭제되었다. 한마디로 의료인의 무장은 해제시킨 채, 환자측의 무장만 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손해의 공평 분담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