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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여성에 대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

임지봉 교수

미국에서는 ‘인종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발달한 이후 뒤늦게 ‘성별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도 탄생했다. 그러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는 주로 전자(前者)에 집중되어 왔다. ‘성별’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는 그 수도 많지 않았고 그것이 연방대법원의 위헌심사의 대상이 된 적도 흔치 않았던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런 ‘성별’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에 대한 평등심사에 중간수준심사를 적용해 오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의 차별을 보상하기 위해 남성이 아니라 여성들에게만 특혜를 제공하는 입법은 ‘중요한 정부목적에 실질적으로 연관(substantially related to the important governmental objective)’되면서 과거의 과오를 보상하기 위해 ‘좁게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면(narrowly tailored)’ 합헌이라고 판시해 왔다. ‘인종’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엄격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합헌이 될 수 있는 반면, ‘성별’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는 중간수준심사라는 다소 완화된 심사기준만 통과해도 합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미국 연방대법원은 ‘흑인’에 대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보다 ‘여성’에 대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에 보다 더 관대하다.

1979년 3월5일에 선고된 Orr v. Orr(440 US 268)판결은 이혼 시 여성인 전처에게만 부양료 지급청구권을 인정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내용으로 하고 있던 Alabama주 위자료법의 합헌성을 다툰 사건으로 유명하다.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동법(同法)은 부부가 이혼할 경우 남자의 여자에 대한 부양료 지급을 의무화하고 있었다. 이혼판결에 따라 부양료지급의무가 발생한 전남편 Orr이 부양료를 지급하다가 중단하자 전처인 Orr이 법정모욕죄로 전남편 Orr을 제소했다. 법원의 판결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전남편 Orr은 이 Alabama주 주법(州法)이 남자에 대해서만 이혼 시 부양료 지급을 의무화함으로써 성별에 따른 차별로 평등조항에 위배되어 위헌이라 주장하게 되었다. Brennen대법관에 의해 집필된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우선 전남편 Orr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한 후, Alabama주 위자료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첫째, Renquist대법관 등 3인의 재판관이 가담한 소수의견은 이 사건에서 전처인 Orr이 경제적 능력이 없고 전남편 Orr만이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데 주목했다. 그러면서 전남편 Orr이 이 소송에서 이겨 여성우대의 동법(同法)이 위헌임을 끌어낸다 하더라도 성 중립적(gender-neutral)인 위자료법 때문에 어찌됐건 전남편인 Orr이 이혼시 부양료 지급의무를 지게 되므로 승소를 통해 얻을 ‘소의 이익’이 없어서 전남편인 Orr에게 원고적격이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성별에 근거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되는 어느 누구도 이 소송에 대해 원고적격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전남편 Orr에게 원고적격은 인정된다. 둘째, 이혼절차에서 이혼 후 부양료 지급의무자를 정함에 있어서는 이혼당사자 중의 누가 상대방에 대해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성별에 따라 자동적으로 남성에게 부양료 지급의무가 있다고 법에 미리 정해서는 안 된다. 여자만 전남편으로부터 부양료를 지급받을 수 있다고 하는 이 법은 입법목적과 실질적으로 관련된 적절한 수단이 아니므로 위헌이다. 왜냐하면 이 법의 입법목적은 결혼생활 중에 차별받은 부인을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부인은 단지 경제적으로 궁핍한 부인뿐이기 때문에 입법목적과 수단사이에 실질적 관련성이 없는 것이다. 과거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 성별에 기초해 여성을 우대하는 이 법은 그 자체가 경제적 약자라는 전통적인 여성상(女性像)을 부각시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도 있어 문제이다. 오히려 성 중립적으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상대방의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배우자에게 부양료 지급청구권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 이혼의 양당사자를 보호할 수 있는 보다 바람직한 방법이다.

이 판결은 이혼시 부양료 지급청구권의 발생과 관련해 결혼생활 중 차별을 받던 부인, 즉 여성에게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통한 우대를 가하고 있던 Alabama주 주법(州法)에 대해 입법목적과 그 수단인 ‘법’ 사이에 실질적 관련성이 없음을 이유로 위헌판결을 내린 것이다. ‘성별’에 기초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확대일로를 걷던 1970년대 말에 이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판결이라는 점에서 미국에서 이 판결은 판결사적(判決史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대대로 차별받아 온 차별의 역사를 가진 집단’으로 범주화될 수 있다.

유교문화로 인한 가부장적 위계질서 하에서 ‘여성’은 가정 내에서나 가정 밖에서 수동적 위치를 요구받아 왔고 갖가지 차별을 감내해야만 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이들 여성에 대한 과거의 차별을 보상하는 의미에서의 ‘성별’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시행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근거에 기해 우리나라에서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하나로서 여성에 대한 공직진출상의 특혜를 의미하는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가 1996년부터 시행되었다. 1996년에는 10%, 1997년에는 13%, 1998년에는 15%, 1999년에는 18%, 2000년에는 20%의 여성 채용비율을 일률적으로 정했고, 2001년부터는 공직의 급수가 5급이냐 6·7급이냐 8·9급이냐에 따라, 또 연도가 몇 년도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30%까지 10명 이상을 채용하는 공무원 채용시 여성채용 비율을 미리 정하고, 여성채용 비율이 이 목표율에 미달할 때에는 합격점의 3점 혹은 5점의 범위 내에서 급수에 따라 일정점수의 가산점을 부여하여 여성을 추가로 선발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성채용 목표 비율은 해가 바뀜에 따라 상향조정되도록 하고 있다. 공직 이외에 다른 공기업 채용에 있어서도 여성에 대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로 ‘공기업인센티브제’를 실시해 정부투자기관, 정부재투자기관, 정부출연기관, 공공법인체의 직원 채용시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게 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러한 여성에 대한 취업상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 시행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의 문제를 야기하게 되자, 직장에 있어서의 남성과 여성 비율의 균형을 목표로 하는 ‘양성고용평등제’의 실시가 시도되고 있다.

장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적용대상’으로서, ‘여성’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경제적 약자집단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취업·입학상의 특혜 부여 확대를 통해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외연 확대가 모색될 필요성이 크다고 믿는다. 또한 취업·입학 이외에 미국과 같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발주의 하도급 계약에 있어서도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적용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 판례를 통해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개념이 정립되고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적극적 평등실현조치 법리의 발전을 리드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등의 사법기관보다는 주로 행정부가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도입을 리드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 시행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위의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도 행정부가 입안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사법부나 입법부가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시행과 확대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강대 법대 교수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