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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성쇠

임지봉 교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의 뿌리에는 ‘대대로 학대받고 차별받던’ 소수자에게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을 행한다는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1960년대의 민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인종분리 입법이나 각종의 불공정 정부관행으로 차별받던 흑인들에 대한 차별의 보상이 핵심이다. 그 후에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는 여성에게도 확대 적용되게 되었는데, 이것도 주(州)정부나 연방정부에 의해 행해진 여성에 대한 차별의 긴 역사가 있었다는 반성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는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 이외에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또 다른 정당화 논리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고용, 하도급 계약, 교육 등의 영역에서 다양성(diversity)을 촉진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양성 촉진’의 이익은,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거나 구성원의 다양성이 각 기관에 이익을 준다는 논리를 근거로 하는 것이었다. 특히 대학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학생집단을 가지는 것은 대학교육의 목적에 비추어 보아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았다. 1995년에 내려진 Miller v. Johnson판결(515 US 900)은 소수인종 우대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이러한 고용, 하도급 계약, 교육의 영역을 넘어 ‘선거구 획정’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모색해 본 판결로 유명하다. 즉, 소수인종의 분포를 고려해 이들에게 유리한 선거구 획정을 시도한 시의회의 선거구 획정에 대해 그 위헌여부를 다툰 사건이다.

선거권법(Voting Rights Act)의 시행을 독려하는 연방법무부의 권유에 따라, Georgia주 주(州)의회는 제11 주의원선거구를 새로이 획정했다. 26개의 카운티를 들쭉날쭉 포함하고 있는 이 선거구는 지리적 조화와 균형을 완전히 무시하고 불규칙하게 획정된 것이었다. 이 선거구 획정시의 주된 고려사항은 흑인이 과반수인 선거구를 만드는데 있었음이 명백했다. 그 당시 Georgia주 전체인구 중에는 27%가 흑인이었다. 이 선거구 획정의 합헌성이 소송을 통해 다투어졌다. 항소법원은 원고승소판결을 내리면서 이 선거구 획정을 위헌선언 했다. 이에 연방대법원이 사건이송명령장을 발부해 이 사건을 심리하게 되었다. Kennedy대법관에 의해 집필된 다수의견은 주(州)가 주로 인종적 고려에 근거해 주의원 선거구를 획정한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요지이다.

평등보호조항의 핵심은 시민들이 각각의 개인들로 대우받아야지 인종이나 계급 혹은 성(性)의 한 구성인자로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권자인 시민들을 인종 등에 근거해 나누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며 정당화되기 힘들다. 인종에 근거한 분류는 엄격심사의 대상이 되고, 따라서 그러한 분류가 합헌이기 위해서는 긴절한(compelling) 주(州)정부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좁게 구체적으로 입법화되어야 한다. 하나의 인종을 하나의 선거구에 쓸어넣는 것은 인종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해지는 좁고 구체적인 입법이 아니다. 그러한 조치는 같은 인종끼리는 생각이 같고 투표행태도 같다는 다소 모욕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은 옳지 않다. 선거구 획정은 일정 정도 기술적인 것이고 지리적·정치적 고려들과 적절히 관련되는 것이다. 인종은 선거구 획정시 고려될 수 있는 하나의 고려 요소일 수는 있으나 주요한 요소가 될 수는 없다. 이 사건에서 인종은 주요한 고려 요소였으며, 따라서 제11 선거구 획정은 위헌이다. 하급심의 위헌판결을 인용한다.

합헌성의 문제를 떠나서 정책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소수인종들의 분포를 고려한 게리맨더링이 소수인종의 이익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즉, 흑인표의 집중이 흑인대표 선출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떤 정치학자들은 이것이 다른 선거구에서 백인후보의 안전한 당선을 가져온다고 주장해왔다. 이 판결에서도 소수인종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선거구 획정에 대해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엄격심사를 적용한 결과였다. 이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평등보호조항의 핵심은 시민들을 ‘개인’으로서 평등하게 대우하는데 있는 것이지 시민을 소수인종집단이나 여성집단 등 하나의 집단의 일원으로 보면서 평등 대우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근간을 흔드는 판결을 내려 주목을 끈다.

미국에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에 대한 경고음은 ‘선거구 획정’뿐만이 아니라 ‘교육’의 영역에서도 여기저기서 울려대기 시작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각 대학의 대학입학정책에 대해 미국 연방하급법원들이 변화된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00년의 Hopwood v. Texas판결(236 F.3d.256)에서 제5 연방항소법원은 인종을 입학사정의 고려요소들 중 하나로 채택하고 있던 Texas주립대 로스쿨의 입학정책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고, 다음 해인 2001년에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상고기각결정(533 US 929)을 내림으로써 이에 화답했다. 즉, 사실상 연방대법원이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내용으로 하는 로스쿨 입학정책에 대한 연방항소법원의 위헌결정을 추인해준 셈이다. Hopwood판결에서 제5 연방항소법원은 엄격심사를 적용하면서 이제 Bakke판결이 구속력을 갖는 선판례는 아니라고 보았고, 다양한 인종의 학생집단 보유라든지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 등이 엄격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긴절한 정부이익’(compelling governmental interest)이 되지는 못한다고 판시했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이제 정녕 미국에서 쇠퇴기를 맞고 있는 것인가.

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에서 신입생 선발시 ‘지역’을 고려하는 일종의 변형된 ‘지역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서울대가 2003년 4월에 확정해 발표한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보면, 2005학년도부터 전체 모집정원의 20% 내외를 서울 등 대도시 수험생이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수능’과 ‘심층면접’ 대신, ‘내신’을 위주로 선발하겠다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때 이 ‘지역균형선발 전형’은 내신성적 위주로 지원자를 평가하면서 지원자의 ‘출신지역’이 비교과영역에서 고려될 수 있게 함으로써 지역할당제적 성격을 가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원래의 원안보다는 지역할당제적 성격이 다소 후퇴한 것이었다. 즉, 처음에 서울대측에서 신입생 선발시 고려하고자 했던 것은 일정비율의 신입생을 지역별로 할당해 선발하려는 원래적 의미의 ‘지역할당제’였고, 이 지역할당제는 ‘입학’의 영역에 적용되는 일종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농촌지역 등 오지의 학생들이 서울 등 대도시의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과거 서울대 입학에서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불평등한 경쟁을 종용받아왔고 이러한 불평등이 ‘과거의 차별’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이들 농촌지역 등의 학생들에 대한 입학을 일정비율로 ‘할당’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입학’에 적용되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또 다른 정당화 근거인 ‘다양한 배경의 학생집단의 구성’이라는 이익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지역할당’을 통해 전국 각지의 여러 지역에서 두루 신입생을 선발해 다양한 배경의 학생집단을 구성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를 맞는 미국과, 이제 막 시작단계를 벗어나고 있는 우리가 선연히 비교되는 대목이다. 또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잠정적’ 조치라는 점이 분명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강대 법대 교수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