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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흑인 취업과 적극적 평등실현조치

임지봉 교수

평등사상은 근대를 거쳐 현대에 들어오면서 다른 성격의 것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헌법상의 평등조항에 대한 각국의 해석도 바뀌어가고 있다. 과거 근대의 평등사상이 자유를 골고루 향유하기 위한 ‘자유의 평등’, 주로 정치영역에서의 ‘정치적 평등’을 지칭하면서 기회에 있어서의 추상적 평등을 의미하는 ‘형식적 평등’의 법리로 발전해 나갔다면, 현대국가에 있어서의 평등은 국민의 생존과 관련한 ‘생존의 평등’, 주로 경제적·사회적 영역에 있어서의 평등을 의미하는 ‘경제적·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면서 결과에 있어서의 평등까지 포함하는 ‘실질적 평등’의 법리를 전개시켜 나갔던 것이다. 즉, 근대 시민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구조 하에서 형식적 평등은 사실상 출발점이 다른 이들에게 추상적 평등만을 강조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불평등을 고착화시켰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게는 결과적 빈곤을 깨고 나갈 수 있는 적극적인 우대가 주어져야지만 실질적으로 결과적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상이 탄생하고 발전되어 나갔다. 일전에도 본 바 있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는 이러한 ‘실질적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미국사회의 몸부림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취업이나 입학,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의 하도급 등에 있어 특히 국가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흑인이나 여성 등의 경제적·사회적 약자에 대해 우선적 처우(preferential treatment)나 적극적 우대 등의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실질적 평등’을 기하려 노력하였다. 이 특혜는 보통 이들에 대한 취업·입학 하도급계약에 있어서의 할당제(quota system) 실시의 형태로 많이 나타났다. 이것이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다. 대대로 차별받던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게는 잠정적으로나마 적극적인 우대를 해주어야 이들 집단이 불평등과 빈곤의 악순환을 깨고나와 결과적 평등, ‘실질적 평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중 ‘취업’ 영역에서의 흑인에 대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합헌결정으로 화답한 것으로 1979년의 United Steel Workers of America v. Weber(433 US 193)판결이 유명하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Kaiser알루미늄회사의 단체교섭에 따른 합의가 철강산업 전체에 있어서의 고용차별 철폐 합의에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Kaiser회사의 흑인노동자 채용목표가 Kaiser회사의 공장이 위치한 지방의 노동인구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과 같은 정도가 되도록 정해졌다. 흑인과 백인노동자들을 위한 비숙련노동자의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공장 내에 만들어졌고,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야 숙련노동자로 취업이 되었다. 근무연수순으로 이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절반의 자리만이 백인들에게 열려있었다. Weber는 Louisiana주 Gramercy시에 위치한 Kaiser공장에 고용된 비숙련 백인노동자였는데, 그는 이 프로그램의 백인지원자들보다는 근무연수가 적었지만 흑인노동자들보다는 근무연수가 많았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인종차별적인 선발기준이 고용 등에 있어서의 인종차별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1964년의 민권법 제7조(Title VII of the Civil Rights Act of 1964)’에 위배되어 위법이라 주장하면서 Kaiser알루미늄회사와 노동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Brennan대법관에 의해 집필된 다수의견은 민권법 제7조에 대한 Weber의 해석은 자의적인 것으로 옳지 않으며, 비숙련노동자를 위한 그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종래의 전통적인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사적(私的) 집단’에 의해 ‘자발적으로(voluntarily)’ 채택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Weber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즉, 연방대법원은 민권법 제7조가 소수인종들에게 대한 ‘어떠한 우선적 처우(any grant of preferential treatment)’도 금하고 있다는 Weber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인종차별을 금하는 민권법 제7조는 모든 사적인, 자발적인 소수인종 우대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본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어느 정도까지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허용 가능한 것이고 어느 정도까지가 허용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구분을 하려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소수인종 우대조치가 백인노동자의 이익을 불필요하게 구속하는 것은 아니며, 흑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백인들을 해고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백인노동자의 승진을 영구적으로 금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 조치는 인종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명백한 인종적 불균형을 단지 ‘시정하기’ 위한 잠정적인 조치에 불과하고, 따라서 그러한 조치는 종래 전통적으로 소수인종들에게 차단되었던 직업군들에서 드러나는 인종적 불균형을 제거하기 위해 고안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자발적으로 채택하려는 사적 영역들에게 민권법 제7조가 남겨놓은 재량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Weber판결은 ‘고용’에 있어서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에 관해 연방대법원이 처음으로 판결을 통해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가진다. 특히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기관도 아니고 정부의 자금을 조달받는 기관도 아닌 사적 기업이 소수인종에 대한 종래의 차별에 대한 보상의 성격에서 이들을 고용시 우대하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채택해 사용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보호조항을 침해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기업 고용에서 흑인우대조치들의 물꼬를 튼 판결로 평가된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본류는 아무래도 엄격심사가 적용되는 ‘인종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가 점하고 있다. 1978년에 선고된 Bakke판결의 법리는 연방대법원에 의해 1980년대까지 고수되었다. 즉,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가지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는 쉽게 정당화되었지만,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보다는 구성원의 다양성의 증진의 의미를 가지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에서는 인종을 여러 고려요소들 중의 하나로서만 고려할 수 있었고, 인종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이므로 합헌성심사에 엄격심사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 Weber판결에서 과거의 차별을 보상하는 의미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로서 행해진 사기업 고용에서의 소수인종 우대는 엄격심사를 받지 않고 쉽게 합헌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기관도 아니고 정부의 자금을 조달받는 기관도 아닌 사기업에 의한 소수인종 우대는 더더욱 위헌의 소지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법리는 세계 각국에 파급되어 나갔고 우리도 이 법리를 받아들여 여성이나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사회적·경제적 약자층에 대한 각종의 우대조치를 실시해 나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다. 따라서, ‘인종’이나 ‘민족 기원’에 따른 차별이 현재까지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미국같은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아서 인종에 따른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시행은 애초에 불필요했던 것이다. 진정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누려온 값진 축복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서강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