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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정치적 최고사법기관과 생존의 지혜

임지봉 교수

미국 연방대법원은 크게 원심(原審)관할권과 상소(上訴)관할권의 두 가지 관할권을 가진다. 첫째, 연방대법원의 원심관할권은 연방헌법 제3조 제2항에서 도출되며 주로 두 개 이상의 주(州)간의 분쟁을 대상으로 한다. 즉, 하급심을 거치지 않고 바로 연방대법원에 제기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한 관할권이 바로 이 원심관할권이다. 둘째, 상소관할권이 있다. 연방헌법 제3조 제2항은 연방대법원에게 연방법원의 일반적 관할사건들에 대한 상소관할권을 부여했다. 즉, 연방하급법원들에서 올라오는 사건들에 대한 관할권이다. 연방대법원의 상소관할권 중에는 위헌심사권도 있다. 위헌심사권은 일전에 자세히 보았듯이 1803년의 Marbury v. Madison판결을 통해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위헌심사권은 연방의회가 만든 법률, 연방정부의 행정처분, 주법(州法), 주법원(州法院)의 판결들에 대해 위헌심사를 해 이를 위헌무효화 시킬 수 있는 권한이다.

연방대법원이 상소관할권을 발동시키는 방식을 보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재량에 의한 사건이송명령장 발부를 통한 상고허가제로 심리할 사건을 선택한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9년에 연방대법원이 내린 Ex parte McCardle(7 Wall. 506)판결은 연방의회가 헌법 제3조의 제한 하에서 법률의 제정을 통해 연방대법원의 상소관할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전권(全權)을 가질 수 있게 한 판결로 유명하다. 여기서 ‘Ex parte’란 ‘일방적’이라는 의미로, 재판이 일방당사자만의 신청에 의해 반대의 이해관계를 가지는 자에게 통고함이 없이 이루어진 경우를 뜻한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남북전쟁 후, 연방의회는 ‘전후복원법(Civil War Reconstruction Acts)’에 근거해 남부군에 참여했던 많은 남부 동맹주들을 주(州)군사정부를 통해 통치했다. 이런 남부 동맹주들 중 하나인 미시시피주에서, 미시시피 Vicksburg신문의 편집인 McCardle은 명예훼손적이면서 내란을 선동한 선동적인 기사를 이 신문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군사정부의 검찰관들에 의해 수사를 받고 군사감호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전후복원법에 의해 부여된 권한에 근거해 군사정부 당국은 McCardle에게 군법회의의 재판을 받을 것을 명했다. McCardle은 1866년의 Ex Parte Milligan판결이 일반법원이 개원돼 있을 시에 민간인의 군사법원 재판은 금지된다고 판시했고 따라서 전후복원법은 이러한 헌법판례에 위배돼 위헌이라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1867년 2월5일에 의회를 통과한 인신보호법(Habeas Corpus Act)에 근거해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면서, 전후복원법의 위헌성이라는 정치적으로 큰 폭발력을 지닌 이슈를 가지고 연방항소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인신보호법은 헌법상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구속집행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속적부심 권한을 연방법원에 주고 있었고, 또한 연방대법원에 상소도 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연방항소법원은 구속적부심에서 McCardle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 후 연방대법원이 이 사건을 다루게 된다.

연방대법원에 이 사건이 올라가자, 연방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공화당이 주도해 만든 전후복원법을 대법원이 위헌판결을 통해 무효화시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걱정 끝에 연방의회는 연방대법원에서 본 사건에 대한 변론이 한창 진행되던 중이던 1868년 3월21일에 법률을 하나 통과시킨다. 이 법률은 연방항소법원으로부터 연방대법원으로 상고되는 구속적부심 사건들에 대해 연방대법원의 관할권 행사를 인정하던 구법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Chase대법원장이 집필한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헌법 하에서 연방의회가 연방대법원의 상소관할권에 대한 예외를 법으로 정할 권한을 가진다며 뜻밖에도 대법원 자신이 아니라 연방의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연방대법원의 상소관할권은 연방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연방의회가 정한 ‘예외’와 ‘규칙’에 따라 헌법에 의해 부여된다. 비록 1789년 법에서 연방의회가 연방대법원의 상소관할권 행사에 관한 확정적인 규정을 만들면서 그 규정의 범위 내에 있지 않은 관할권 행사는 무효가 되게 했지만, 본 사건에서 상소관할권에 대한 예외는 그러한 확정적인 규정으로부터는 추론될 수 없다. 본 사건이 예외에 해당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연방대법원에 구속적부심의 상소관할권을 부여한 1867년 법규정들은 명백히 삭제되었다. 삭제를 통해 연방대법원 상소관할의 한 경우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연방의회가 만든 법규정이 삭제되었다는 것은, 그 규정이 과거에 이미 그 규정에 근거해 행해지고 종결된 행위를 제외하고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소송의 근거가 된 법이 폐지된 이후라면 그 소송에 대한 판결은 내려질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구속적부심에서의 연방대법원의 상소관할권을 영원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1868년 법은 1867년 법 하에서 연방항소법원으로부터 제기된 상소에만 영향을 준다.

McCardle판결을 평가해 보면, 이 판결은 분명 ‘사법부 자제’나 ‘사법소극주의’의 한 예이다. 연방대법원의 관할권 통제에 관한 연방의회의 권한이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Marbury v. Madison에서 이미 선언되었다. 즉, Marbury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연방헌법에 규정된 연방대법원의 원심관할권을 연방의회가 확대하려 하자, 연방의회가 만든 ‘법원법’(Judiciary Act)이라는 법률을 위헌선언해 버렸던 것이다. Marbury판결은 연방대법원의 원심관할권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헌법률심사제도를 주장할 이상적 투쟁의 장(場)을 당시의 대법원장인 Marshall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McCardle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남북전쟁 직후의 정치적 위기 속에서 발생한 연방의회와의 대립으로부터 한발짝 물러서는 후퇴의 모습을 보여주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McCardle판결이 내려진지 수개월 후 연방의회와의 대립이라는 정치적 위기상황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대법원은 Ex parte Yerger판결 등에서 Marbury판결로 탄생된 위헌법률심사권을 통해 연방의회의 권한을 다시 제한하고자 했다.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들에서 연방대법원의 관할권을 명확히 정하려는 연방의회의 시도들이 사법(司法)의 영역을 침범하는 위헌적 시도라고 판시했다. 그러한 연방의회의 시도는 연방대법원에 의해 권력분립원리 위배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McCardle 판결의 법리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계속 유지되고 있지는 않다. 단지 몇몇 정치인들이 학교에서의 기도문 암송이나 학교 버스문제 등과 같이 논란이 많은 문제들에서 연방대법원이 국민의사와 괴리된 판결을 내리는 것을 금지하는 입법을 만들 때 그 근거로 간혹 사용되었을 뿐이다. 남북전쟁 직후에 발생한 일시적인 사법부의 정치적 위기를 넘기면서 미래의 백보 전진을 위해 대법원이 잠깐동안 일보 후퇴의 용단을 내린 결정이 바로 이 McCardle판결인 것이다.

미국 대법원이나 우리 헌법재판소처럼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최고사법기관들은 사법기관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기관이기도 하다. 헌법이 강한 정치성을 띠는 규범이기에 이를 적용하는 헌법재판기관도 다른 국가기관의 정치적 공격에 쉬이 노출되고 어떨 때는 그 존립마저 위태로울 때가 있다.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굴욕까지 받아들이는 지혜가 이런 정치적 사법기관의 생존을 위해 필요할 때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판결이다.

서강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