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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차별의 고의성과 평등

임지봉 교수

미국에서는 1950년대의 Warren대법원에 와서야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조항이 같은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과는 별도로 위헌판결에서 자주 원용되는 중요한 기본권조항으로 부각되었다. 특히, Warren대법원은 종래의 단순합리성심사와는 구별되는 ‘엄격심사’의 기준을 판례를 통해 형성하였다. 엄격심사는 원래 인종, 민족적 기원(national origin), 외국인 지위(alienage)를 사유로 행해지는 차별에 이용되었고 그러한 차별을 ‘위헌의 의심이 가는 차별(suspect classification)’로 불렀다. 후에 여기에 ‘근본적 권리(fundamental right)’에 실질적 부담을 과하는 차별까지 추가되어 그러한 평등심사에서 ‘엄격심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엄격심사의 중요한 요건으로는 첫째, 대법원이 엄격심사를 행할 경우 입증책임이 정부 쪽으로 전환되어 법률이 위헌임을 주장하는 소송 청구인이 아니라 그 법을 만든 주정부나 연방정부가 그 차별이 ‘긴절한 정부이익(compelling government interest)’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것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 그 긴절한 정부이익을 달성하는, ‘기본권제한의 정도가 더 경미한 다른 가능한 대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후에 미국에서 LRA(Less Restrictive Alternative)룰로 발전하는데, 우리 헌법재판소가 법률에 의한 기본권제한의 한계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과잉금지의 원칙 중 ‘피해의 최소성’이 이와 유사한 개념이다. 셋째, 엄격심사의 대상이 되는 법률에 대해서는 법률에 대한 합헌성추정의 원칙이 배제된다. 정부가 이러한 입증책임을 충족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엄격심사의 대상이 되면 그 법률은 웬만하면 위헌이 되는 것이다.

엄격심사에서 주의해야할 점은 차별의 고의성의 문제이다. 즉, 이 엄격심사가 사용되어지기 이전에 어떤 법률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청구인은 그 차별이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고의적인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차별의 영향이나 효과가 차별의 고의성의 증거가 될 수는 있지만, 보통 그것 자체만으로는 차별의 고의성을 입증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인종차별이라는 엄격심사사건에서 ‘차별의도 입증’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1976년의 Washington v. Davis(426 U.S. 229)판결이 유명하다.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수도 워싱턴의 경찰은 시험을 통해 뽑게 되어 있었는데 이 시험은 ‘테스트 21’이라고 알려진 연방공무원임용제도를 통해 공직위원회에 의해 개발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 시험의 흑인탈락자 수가 백인탈락자 수의 4배나 될 정도로 많았다는 점이었다. 이 시험에 차별의 의도가 있음을 증명할 수는 없다는 점, 이 시험은 ‘인종에 대해 중립적’이라는 점, 이 시험은 언어구사력, 어휘력, 독해력과 같이 경찰관직 수행과 관련이 있는 사항들을 테스트 했다는 점들에도 불구하고, 흑인인 Davis는 소수인종 합격자수의 과소(過小)와 같은 그 시험의 소수인종에 대한 불균형적 효과가 평등조항이 인정한 평등보호를 부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헌성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지방법원은 종래와 같이 차별의도의 입증이 없다는 이유로 이 시험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으나, 연방항소법원은 ‘차별적 영향’만으로도 위헌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깨고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에 이 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연방대법원에 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White대법관이 쓴 다수의견은 비록 시험 결과 백인지원자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많은 수의 소수인종 지원자가 탈락한다 하더라도, 직무와 유관한 사항을 테스트 하는 인종 중립적 테스트의 운영은 연방헌법상의 평등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요지이다. 수정헌법 제14조 평등조항의 주목적은 인종에 근거한 공적(公的) 차별을 금지함에 있다. 단지 인종적으로 불균형적인 영향을 야기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법이나 정부의 행위가 위헌이라고 법원이 선언한 적은 없었다. 인종에 따른 분리교육 철폐에 관한 앞의 대법원 판결들은 어떤 법이 평등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차별이 되려면, ‘인종차별의 목적’이 그 법 뒤에 도사리고 있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 연방헌법은 연방정부가 그 소속공무원들의 의사소통능력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그러한 능력을 테스트 하는 인종 중립적 시험을 실시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비록 시험 결과 백인지원자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많은 수의 소수인종 지원자가 탈락한다 하더라도, 그 직무와 유관한 사항을 테스트 하는 인종 중립적 테스트의 운영은 연방헌법상의 평등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 위헌이 되기 위해서는 ‘차별의 의도나 목적’이 입증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차별의 고의성과 관련하여 ‘법률상 차별(de jure discrimination)’과 ‘사실상 차별(de factor discrimination)’이 이야기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법이 문면상(文面上) 차별적이거나, 문면상은 차별적이 아니더라도 차별의 고의성이 입증될 수 있는 차별이면 ‘법률상 차별’이다. 즉, 어떤 법이 문면상으로는 중립적이지만 그 뒤에 차별의 목적이나 의도·계획이 숨어있는 경우, 차별의 목적·의도·계획이 입증된다면 그것은 ‘법률상 차별’이 되어 문면상의 중립성에도 불구하고 위헌이 된다. 또한 법이 문면상으로는 중립적이더라도 그 적용이나 집행이 차별적인 방법으로 행해질 경우도 ‘법률상 차별’이 될 수 있다. ‘사실상 차별’은 차별의 고의성이 없거나 그것이 입증될 수 없는 차별을 말한다. Washington v. Davis 판결은 이러한 차별의 목적·의도·계획에 대한 입증 없이 결과적인 차별효과만으로 평등조항 위배를 이야기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점에서 그 가치를 가진다.

우리 헌법재판소에도 평등심사에 있어 미국처럼 ‘차별의 영향’과 ‘차별의 고의성’을 구별하고 차별인정을 위해 ‘차별의 고의성’ 입증을 필요케 하는 식의 보다 세밀화된 평등심사기준의 마련이 요청된다. 우리에게는 이런 세밀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차별의 고의성’ 유무는 따질 여유도 없이 제대군인가산점제 위헌결정에서 보듯이 “여성 합격자수가 극히 적고 심한 경우 만점을 받고도 불합격할 수 있다”는 사실적·결과적인 ‘차별의 효과나 영향’만으로 쉽게 법률상 차별로 취급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혹여 판례를 통해 세밀화된 평등심사기준과 그 요건들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할 때 제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그 법률의 합헌성 심사기준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헌법재판소 판례가 구체적으로 답해 주어야할 부분이다. 여기에 답함에 있어 보다 정치하고 설득력 있는 심사기준과 요건들을 제시한다면 그러한 헌법적 판단에 대해 국민들은 더 많은 신뢰와 존중으로 화답할 것이다. 법원의 참된 권위는 세심하고 설득력 있는 판결들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다. 법원이 온통 화려한 경력의 엘리트 법관들만으로 채워졌다고 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서강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