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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통신

[헤이그통신] (6) 피고인의 진술과 증거능력

권오곤 ICTY 재판관

1. 글머리에

모든 증인은 법정에서 직접 판사 앞에서 구술로 증언하여야 하고, 증인의 법정 증언과 부합하는 진술서(prior consistent statement)는 증거로 제출할 수 없는 것이 영미법의 확립된 원칙이라는 점은 지난 호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피의자(피고인 포함)의 진술서(statement) 또는 그에 대한 조사 녹취록(transcript)은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리고 다음에 보는 바와 같은 엄격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가능한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2. 피의자의 권리

검사 또는 수사관에 의해 조사를 받는 피의자는 다음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검사 및 수사관은 조사에 앞서 피의자에게 이를 고지하여야 한다:
(i) 피의자가 선택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거나, 피의자가 자력이 없는 경우 무료로 법률 구조를 받을 권리.
(ii)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및 피의자의 모든 진술이 기록되고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음을 고지 받을 권리.

3. 묵비권

위와 같이 피의자에게는 묵비권이 있으므로, 피의자가 진술을 명백하게 거부하는 경우에는, 추가적 질문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에 대하여 질문을 계속하여 추궁하는 것은 수사권의 남용(abuse)이 될 수 있고, 이렇게 하여 얻어진 진술은 그 임의성이 부정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피의자가 묵비권을 포기하고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응하였다는 사정은 양형에 있어서 감경사유의 하나로 참작될 수 있는 ‘검찰과의 실질적 협조’에 해당할 수 있다.

4.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피의자에 대한 조사는 피의자가 자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지 않은 명백한 언어로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변호인의 참석 없이는 진행할 수 없다. 변호인은 단순히 ‘참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검사 또는 수사관의 부당한 질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피의자에 대하여 일정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하지 않도록 지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상담을 위하여 배석자 없이 피의자와 독대할 수도 있다

5. 조사과정의 녹취

ICTY 규칙에 따라, 피의자에 대한 조사시에는 언제나 음성녹음 또는 영상녹화를 하여야 하고, 그와 같은 녹음, 녹화사실을 피의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피의자는 조사가 종료된 다음 자신이 말한 바를 해명하거나, 원하는 사항을 추가할 수 있다. 이러한 녹음 또는 녹화 테이프는 피의자에게 곧바로 제공하여야 하고, 피의자가 기소된 후에는 녹음, 녹화 테이프를 문자로 녹취한 녹취록을 피고인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녹취록은 우리의 신문조서의 경우와 같이 문답의 요지만을 적는 것이 아니라 ‘있는 말 그대로(verbatim)’를 녹취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녹음, 녹화는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조사하는 모든 과정을 녹취하여야 한다. 따라서 조사 도중에 휴식시간과 같은 중단이 있게 되면, 그러한 중단이 있었다는 사실과 중단 시각 및 조사재개 시각을 기록하여야 하고, 만약 그러한 중단 시간 중에 사건과 관련된 사항이 논의되었다면, 조사재개 후 중단 시간 중에 있었던 일과 당사자 사이의 양해사항 등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 조사를 계속하여야 한다. ICTY 상소심의 최근 결정에서, “검찰 조사에 협조를 하면 자신에 대한 공소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조사에 응한 것이므로, 자신의 진술에는 임의성이 없다”고 하는 피고인의 항변에 대하여 판단하면서, “휴식시간 후 재개된 조사의 녹취록에 의하면 휴식시간 중에 당사자 사이에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갔던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녹취록상 휴식시간 중에 있었던 사항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그 이후 있었던 피고인의 진술은 그 임의성에 의심이 간다”는 이유로 피고인에 대한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예가 있다.

6. 피고인의 증언

재판시 피고인에 대한 신문은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에 한하여,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을 뿐이다. 증인으로 증언하는 것이므로, 피고인도 선서 하에 증언하여야 함은 물론, 허위 진술 시에는 위증죄로 처벌될 수 있다. 다만 ICTY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대륙법적 요소를 도입하여, 재판 시작시 피고인의 모두 진술권도 인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선서를 요하지 아니하고, 그 진술내용에 대하여 신문을 할 수도 없다.

7. 맺는 말

각 나라의 사법제도는 그 형성과정이 서로 다르고 나라마다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제도가 다른 제도보다 낫다고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형사사법제도가 인권보장을 위하여 널리 인정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무기 대등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용의 실제에 있어서는 피고인의 자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규문주의적(inquisitorial)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국선변호제도가 재판 단계에서만, 그것도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에서 인정되고 있을 뿐이고, 수사단계에서의 변호인의 참여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는 등의 현실은 위와 같은 국제적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