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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통신

[헤이그통신] (5) 증인 진술서의 증거능력

권오곤 ICTY 재판관

1. 서언

이곳 ICTY에서도, 대부분 영미법계 국가에서의 실무와 마찬가지로 수사 단계에서 증인들로부터 진술서(witness statement)를 받는다. 이러한 진술서는 수사관(investigator)이 작성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진술조서와 같은 문답 형식을 취하지 아니하고, 증인의 서술만을 기재한다. 검사는 원칙적으로 재판에 즈음하여 증인과 사이에 진술내용을 확인하기만 할 뿐 진술서를 별도로 작성하지는 않는다. ICTY에서는 진술서의 증거능력과 관련하여 원래 전통적인 영미법적인 태도를 취하였으나, 신속한 재판을 위해 점차 영미법과 대륙법을 절충한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2. 전통적인 영미법의 태도

가. 원칙

모든 증인은 법정에서 ‘직접’ 판사 앞에서 ‘구술로’ 증언하여야 한다. 증인의 법정 증언과 부합하는 진술서(prior consistent statement)는 증거로 제출할 수 없는 것이 영미법의 확립된 원칙이다. 다만, 증인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증인에게 진술서의 일정 부분을 제시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증인이 이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만이고, 해당 진술서 부분을 증거로 제출할 수 없다.

나. 證據 開示 및 피고인 측의 증거제출

검찰은 검찰이 부르고자 하는 모든 증인의 진술서를 재판 시작 전에 피고인에게 개시해야 한다. 피고인 측은 이러한 진술서를 가지고 있다가 증인의 법정에서의 증언이 진술서 내용과 모순되는 경우에는 증인에게 해당 부분을 제시하고 반대신문을 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그 진술서(prior inconsistent statement)를 피고인 측의 증거로 제출할 수도 있다.

다. 敵對的 증인

증인이 재판단계에 이르러 종전의 말을 바꾸어 적대적 증인(hostile witness)으로 된 경우에는, 검찰이 그 증인의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 허용된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그 진술서는 당해 증인의 법정에서의 증언을 반박하기 위한 탄핵증거로 사용될 뿐, 그 내용 자체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3. 절충적 제도의 발전

가. 인증 진술서

진술서 내용이 피고인의 행위를 다루고 있지 아니한 것으로서 사건의 배경이나 양형 등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반대신문 없이도 이를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진술서는 진술자 본인이 사무국에서 파견한 직원의 면전에서 그 진술 내용의 진실함과 허위진술시에는 위증의 벌을 받을 것을 선서한 후, 당해 직원이 이를 인증하는 등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나. 사망 내지 소재 불명 증인의 경우

증인이 사망하거나 질병으로 법정에 출석할 수 없을 때, 또는 정당한 주의를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증인의 소재를 알 수 없을 때, 그 진술서가 特信狀態에서 작성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반대신문없이 진술서를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진술서 내용이 피고인의 행위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다. 증인이 법정에 출석하여 내용을 확인한 후 반대신문에 응하는 경우

밀로셰비치 재판 과정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이다. 위 재판 도중 검찰 측에서 증인이 법정에 출석하여 진술서의 진정 성립과 내용의 진실함을 인정한 후 반대신문을 받을 것을 전제로, 검찰 측의 주신문에 갈음하여 당해 증인의 진술서를 증거로 받아들여 줄 것을 신청하였는데, 재판부에서는 전통적인 영미법 이론에 따라 이를 기각했다. 필자는 이에 반대하여 한국의 형사소송법 등을 인용하면서 이를 받아들여도 공정한 재판에 반하지 않는다는 반대의견을 냈는데, 상소심에서 필자의 의견에 따라 이러한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어, 결국 일반적인 제도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진술서가 피고인의 행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방하다. 다만 이와 같이 검찰의 주신문을 증인의 진술서로 갈음하더라도, 진술서 내용 중 증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는 부분은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라. 증인신문조서

이전 재판에서의 증인신문조서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진술서와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증인의 종전 증언 내용이 피고인의 행위에 관한 것이라면, 당해 증인이 법정에 출석하여 종전의 진술내용을 확인한 다음 반대신문을 받지 않는 한 그 증인신문조서를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

4. 결 언

ICTY에서 점차 위와 같은 절충적 제도를 취하여 결국에는 서면 진술서를 광범위하게 증거로 받아들이게 된 과정에 있어서도, 증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에 비하여 법정에서의 증언에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우리의 형사소송절차는 영미법과 대륙법을 혼합한 독특한 형태의 것으로서, 그 효율성 등의 면에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수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 운용의 실제에 있어서도 그러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범세계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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