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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판례열람

[미국헌법판례열람] 소수자의 인권과 사법부

임지봉 교수

1896년에 선고된 Plessy판결에서 확립된 ‘분리하되 평등’의 법리는 그 후 58년 동안 미국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대원칙으로 상당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이 대원칙도 1954년 5월 17일에 그 유명한 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판결(347 US 483)이 선고되면서 파기되는 운명을 맞는다.

인종차별 철폐와 관련해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이 브라운판결은 원래 캔사스, 사우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델라웨어주에서 연방대법원에 올라온 네 개의 유사사건들을 병합해 심리한 것이었다. 네 사건은 주내(州內) 초중등 공립학교에서의 흑백분리교육에 대해 흑인학교를 다니는 흑인학생들이 인종차별을 이유로 평등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중 캔사스주에서 제기된 브라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캔사스주법은 15,00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주내 도시들이 공립학교에서 흑인학생과 백인학생에 대해 각각 분리된 교육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캔사스주내의 토페카(Topeka)시 교육위원회는 교과과정, 통학 교통수단, 학교 시설, 교사의 질, 교사 봉급 등의 ‘유형적인 요소들’은 다 동일하되, 교육장소에 있어서만 백인학생과 흑인학생을 분리하는 분리된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토페카시의 흑인학생인 브라운은 이 법에 의해 백인초등학교에의 입학이 불허되어 흑인초등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브라운을 위시한 여러 흑인학생들에 의해 이러한 주법의 집행 금지를 구하는 소송이 캔사스주의 연방지방법원에 제기되었고, 연방지방법원은 흑인학교와 백인학교가 위에서 본 유형적 요소들의 측면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을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다. 이에 이 사건이 연방대법원에 ‘직접 상고(direct appeal)’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에 이 사건이 계류 중이었던 때에 빈슨대법원장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후임 대법원장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같은 공화당 출신이면서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로 있었던 워렌(Warren)을 대법원장에 임명한다. 열성 공화당원인 워렌이 그의 여러 보수적인 정책들을 대법원장으로서 잘 지지해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기대는 착각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워렌은 대법원장이 되자 흑인, 여성 등 소수자의 인권을 제한하고 있던 법률들과 피의자 및 피고인의 권리를 옥좨고 있던 여러 법규정들에 대해 과감한 위헌결정을 내리기 시작한다. 적극적인 위헌판결에 기반한 사법적극주의로 진보적인 연방대법원을 이끈 것이다. 오죽했으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후 대통령 재직시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이 워렌을 대법원장에 임명한 것이라 고백했겠는가. 브라운판결은 사법적극주의자 워렌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워렌대법원장에 의해 집필된 만장일치의견은, 인종에만 근거한 공립학교에서의 아동 분리교육은 유형적 요소가 평등하다 하더라도 무형적 요소들에서 불평등하여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조항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그는 우선 평등조항 위배 여부를 따짐에 있어 유형적 요소들뿐만이 아니라 ‘무형적 요소들’도 고려되어야만 한다고 보았다. 흑인학교와 백인학교에서 학교시설 및 기타 유형적 요소들이 평등하다는 것이 전부는 아니며, 공립학교에서의 흑백분리교육은 분리정책 그 자체가 흑인아동들의 가슴에 풀릴 수 없는 ‘열등의식’을 심어주며 이들의 학습동기에 악영향을 끼치면서 정신적·교육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흑백인종이 통합된 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들, 예를 들어 흑인학생이 같은 학급의 백인학생과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흑백분리교육은 흑인아동들로부터 박탈한다고 보았다. 무형적 요소들에서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이 판결로 교육의 영역에서 이제 인종에 따른 분리교육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 판결은 인종에 따른 ‘분리’ 자체를 불평등한 것으로 보았다. 일단 ‘분리’하면 그 자체가 평등권 침해로 위헌이라는 것이며, ‘분리하되 평등’이 아니라 ‘분리하면 무조건 불평등’의 법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브라운판결 이후 미국 연방대법원은 다른 공공시설에서 행해지던 인종별 분리수용정책들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위헌판결을 내려간다. 즉 ‘교육’영역뿐만이 아니라 버스, 기차, 공원, 여관, 식당, 골프장, 해변 위락시설 등과 같은 다른 공공접객시설에서의 인종분리에 대해서도 이 브라운판결에 근거해 계속 무효선언이 이어졌다. 브라운판결은 인종에 의해 분리하되 유형적 요소들이 평등하면 평등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자위하고 있던 당시의 미국사회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왔고 보수적 백인들로부터 다소간의 반사법부적(反司法府的) 저항을 낳았다. 심지어 브라운판결의 피고들조차 흑백학교를 통합치 않고 갖가지 핑계를 대며 흑백분리교육을 유지해나가려 했었다. 이에 약 1년 뒤인 1955년 5월31일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소위 ‘Brown 2’판결을 내리면서 구체적인 흑백분리정책 폐지를 통해 1954년의 ‘Brown 1’판결의 집행을 시행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각 연방지방법원에 부여함으로써, ‘Brown 1’판결의 판시내용이 “여러 지역적 특수사정을 고려한 신중한 속도로(all deliberative speed)” 시행되고 실현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초강수를 둔다.

이 브라운판결을 읽을 때마다 필자는 흑인아동이라는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미국사회의 오랜 불문율에 과감히 맞선 워렌대법원장을 떠올리면서 신선한 전율을 느낀다. 분리하되 다른 유형적 요소들이 평등하면 평등한 것이라 우기던 보수적인 백인들의 일그러진 양심을 향해, 일단 분리하면 무조건 불평등한 것이라 항변하는 워렌대법원장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접객시설에서 흑인과 백인을 따로 수용하던 시절이었고 그것이 Plessy판결에서 확인된대로 미국사회의 오랜 관습이기에 평등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차별이 아니라고 치부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Brown 1’판결 직후 많은 보수적 백인들이 워렌을 위선자라 비난하며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이에 잘 따르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선각자 워렌의 담대함, 휴머니즘에 기반한 강한 소신과 돌파력을 읽을 수 있다. 사법부가 빛나는 순간은 이렇듯 사법적극주의에 입각한 획기적인 판결로 사법부가 소수자의 인권보호에 용기있게 나서는 때이다. 의회나 대통령 같은 국민대표기관은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다수국민의 의사에 신경쓸 수밖에 없지만, 사법부는 임명되므로 다수국민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자의 인권을 전향적인 판결을 통해 보호해 나갈 수 있는 태생적 장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법부는 어떤가. 행정부처나 국회에서는 물론이고, 법정에서도 소수자의 목소리보다는 다수자의 함성이 더 크게 들리고 약자의 손보다는 강자, 가진 자의 손이 더 자주 올라가지 않는가. 정녕 우리는 사법부에 워렌과 같은 든든한 소수자의 후견인을 가질 축복을 누리지 못할 운명이라는 것인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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