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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통신] (4) 재판 도중 판사의 경질

권오곤 ICTY재판관

1. 글머리에

우리나라에서는 ‘공판절차의 갱신’이라 하여 일정한 절차 아래 재판 진행 도중에 판사가 경질되는 것이 제한 없이 허용되고 있지만, 집중 심리제를 취하고 있는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는 재판 도중 판사가 경질되면 처음부터 재판을 새로 시작하도록 하고 있고, 이러한 원칙에는 영미법계 국가이건 대륙법계 국가이건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ICTY에서도 처음에는 이러한 제도를 취하고 있었으나, 점진적으로 다음과 같은 예외를 인정하게 되었다.

2. 판사의 일시적인 결원

최초의 ICTY 소송규칙에는 재판관의 결원에 관한 규정이 없어, 재판관 1인이 예컨대 병 때문에 일시적으로 재판에 참석할 수 없게 되더라도 재판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1심 재판을 담당하는 3인의 재판관 중 1인이 질병 기타 긴급한 개인적 사유 또는 공적인 재판소 업무로 인하여 재판에 단기간 참석할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는, 나머지 2인의 재판관들의 결정으로 3일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나머지 재판관들만으로 재판을 속행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하였다가, 이 3일의 기간도 너무 짧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2002년 12월에 규칙을 다시 개정하여 이를 5일간으로 늘렸다. 개정규칙에 따르더라도 재판관 중 1인이 5일 이상 재판에 참석할 수 없게 되면, 6일째부터는 재판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

3. 판사의 항구적인 결원

최초의 소송규칙에 따르면, 재판관 1인이 항구적으로 재판에 참석할 수 없게 되면 재판을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지만, 전범 사건이 워낙 방대하여 재판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사정 등을 감안할 때, 1회에 한하여 재판관 1인의 교체를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논의가 제기되어 위 2002년 12월자 소송규칙 개정시 다음과 같은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즉, 재판관 1인이 사망, 질병, 사임 또는 재선 실패 등의 이유로 심리가 일부 진행된 사건의 재판에 장기간 또는 항구적으로 참석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재판소장이 피고인의 동의를 얻어 교체 재판관(substitute judge)을 임명하여 재판을 속행하게 할 수 있고, 피고인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재판을 속행하는 것이 정의의 관념에 합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나머지 2인의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재판의 속행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된 경우, 교체 재판관은 자신이 그 사건 기록을 숙지하였다는 것을 선언한 이후에야 비로소 재판부에 합류할 수 있다.

4. 예비 재판관 제도의 도입

위와 같은 규칙 개정 후 밀로셰비치 사건에 있어서, 영국 출신의 May 재판관이 재판 도중에 신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Bonomy 재판관이 교체 재판관으로 임명되어 재판이 속행되게 되었는데, 따라서 만약 재판관의 결원이 다시 한 번 생기게 되면 3~4년간 진행되었던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밀로셰비치 사건을 포함, 장기간 지속될 향후의 대형 사건에 대비하여 교체 재판관 임명에 의한 재판 속행이 2회까지 가능하도록 소송규칙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제기되었으나, 3인의 재판관 중 과반수가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3522속행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의 이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하였다. 재판관회의에서는 그 대신 독일과 덴마크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예비 재판관(reserve judge) 제도, 즉 예비 재판관이 처음부터 재판의 모든 절차에 참석하다가 재판부에 결원이 생겼을 때 정규 재판관으로 투입되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재판관 증원에 따른 예산조치를 수반할 뿐만 아니라, 유엔 안보리의 의결에 의한 ICTY 법규의 개정을 요하는 사항이었다. 그런데 가뜩이나 ICTY가 예산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 아래 2010년까지 모든 업무를 종료하라는 ‘완료계획(completion strategy)’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 아래에서, 유엔 안보리가 의외에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선뜻 법규를 개정해 준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따라 2006년 3월에 소송규칙을 개정하여, 예비 재판관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현재에는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Srebrenica 사건을 포함한 3건의 재판에 각 1인씩의 예비 재판관들이 투입되고 있다. 예비 재판관은 재판 도중 자신의 사건 이해를 위하여 재판장을 통하여 질문을 할 수 있고, 합의(deliberation)에 참석할 수는 있으나, 표결할 수는 없다.

5. 마치면서

공판중심주의가 강조되고 있는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재판 도중의 판사의 경질에 관한 ICTY 및 외국의 제도는 많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특히 단 1회의 증인신문도 듣지 아니한 재판부에 의하여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 우리의 현실은 비판적으로 되돌아 볼 여지가 있다. 집중심리제를 적절히 운영하여 사건 심리를 개시한 재판부가 판결까지 선고하도록 하고, 재판 도중 부득이 판사의 경질이 있게 되더라도, 직접주의, 구술주의의 원칙에 충실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규칙 제144조 소정의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예컨대 핵심적인 증인의 경우에는 새로 증인신문을 듣도록 하는 등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재판 운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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