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사실의 존재 및 인과관계가 쟁점 중 하나였던 국민참여재판의 한 장면이다. 변호인은 진단서를 부동의했고, 바쁘다는 의사가 어렵게 증인으로 출석했다. 진단서의 진정성립을 인정하고 진료내역을 설명하는 평범한 주신문이 이루어졌다. 이제 반대신문 차례. 피고인 측은 같은 의사로부터 얼마 전에 발급받은 상해진단서를 탄핵증거로 제출했다. 피고인이 실제로 다치거나 아픈 곳이 없었음에도 증인은 피고인의 말만 듣고 상해진단서를 작성해 주었고, 그러니 증거로 제출된 진단서나 증인의 진술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환자로 왔던 피고인을 알아보지 못한 증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건의 결론에 있어서는 배심원과 재판부 설득에 실패한 변론이었지만, 법정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상해진단서 발급 현실을 비꼬는 한 편의 풍자였다.상해진단서상 상해의 원인란에는 대체로 ‘타인의 폭행’과 같이 환자가 주장하는 사유에 ‘환자 본인 진술에 의함’이라는 기재가 부동문자인 양 부가된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뭐가 됐든 상해의 원인을 적어야 하는데 의사가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설명이다. 하지만 병명란의 내용까지도 오로지 환자의 진술에만 근거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사례를 종종 보곤 한다. 가령, 아무런 치료·처방내역 없는 전치 1~2주의 각종 염좌나 긴장 같은.피해자의 주관적인 호소 등에 의해 의학적인 가능성만으로 발급된 상해진단서의 증명력을 판단하는 데 신중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판례(2016도15018)가 나왔지만,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면 ‘빨리 병원에 가서 진단서부터 하나 받아두라’는 말은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통용되는 것 같다. 최근에 본 가장 황당한 사례는, 학생이 건물 창문 밖으로 던진 빈 페트병에 얼굴과 손을 맞았다는 행인들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았던 경우인데, 나중에 인근 CCTV를 확인해 보니 페트병은 스치지도 않았다.의학적 진단에는 법적 판단 기준과는 다른 고려 요소가 있을 수 있고, 의사의 입장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자의 상해진단서 교부 요구를 거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상해진단서의 발급과 그 이용에 관한 우리의 현실이 지금과 같다면, 상해진단서는 사실인정에 도움을 주는 자료가 아니라 분쟁의 격화를 이끄는 불씨가 될 수 있다.김현성 판사(대구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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