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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의 추상(抽象)과 구상(具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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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의 추상(抽象)과 구상(具象)] 프로타고라스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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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아들뻘 되는 소크라테스가 찾아와 맞짱 토론을 할 만큼 학식 높은 당대의 저명한 철학자였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말을 남겼다.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그의 상대주의 사상을 축약한 말로 이해된다. 기원전 445년부터 429년까지 아테네 최고 권력자로 귀족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정을 꽃피운 페리클레스와도 교분이 깊어 그에게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배심재판도 페리클레스의 민주적 제도 개혁 중의 하나다.

프로타고라스는 변론술에 뛰어나 강좌를 열었는데, 수업료가 그의 명성만큼이나 거액이었다. 어느 날 에우아틀루스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청년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지만, 수업료가 없으니 수업을 마치고 재판에서 처음 이겼을 때 수업료를 낼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프로타고라스는 거듭된 그의 간청을 받아들여 첫 승소 시까지 수업료를 유예하는 계약을 맺고 수업을 듣게 하였다. 그러나 에우아틀루스는 수료 후 어떤 재판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기만 하였다. 그러자 프로타고라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에우아틀루스에게 수업료를 달라는 소를 배심법정에 제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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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타고라스가 배심원 앞에서 변론을 시작하였다. “배심원 여러분, 피고는 이 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어차피 수업료를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기면 피고는 그 판결에 따라 수업료를 내야 합니다. 반대로 제가 재판에서 지면 피고는 재판에서 처음 이기게 되었으니 저와 맺은 계약 조건에 따라 수업료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변론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 고개를 끄덕이는 배심원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더 이상의 변론은 필요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에우아틀루스는 기다렸다는 듯 당당한 어조로 자신의 변론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원고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이 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저는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기면 그 판결에 따라 저는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반대로 제가 재판에서 지게 되면 재판에서 처음 이겼을 때 비로소 수업료를 내도록 한 계약 조건이 성취되지 못한 것이어서 계약에 따라 아직은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재판의 요점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에우아틀루스가 변론을 마치자 이제는 배심원들 사이에서 심한 동요가 생기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과연 배심원 평결은 어떻게 나왔을까.

요즈음도 글감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일화는 플라톤의 대화편〈프로타고라스〉에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지어낸 얘기라고 한다.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의 사상인 진리의 상대주의나 그에 기반한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비판하였다. 그로서는 프로타고라스가 혹세무민하는 궤변을 일삼았고 그의 상대주의가 오류 투성임을 보여주려고 그럴듯하게 우화를 꾸몄음직도 하다. 실제 이야기 속의 프로타고라스와 에우아틀루스의 변론은 모두 논리적으로 논점 이탈, 순환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재판에서는 ‘계약’,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계약에 정한 조건의 성취 여부만을 기준으로 하는 판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재판에 따라 비로소 내려질 ‘판결’ 결과를 끌어들여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주장하는 근거로 삼으려 하였다. 그냥 들으면 양쪽 주장 모두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둘 다 말이 안 된다. 만약 플라톤이 이 예화를 통해 프로타고라스를 공박하려고 하였다면 그의 의도는 멋지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플라톤과 달리 러셀은 ‘사람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 하나만 옳고 다른 것은 그르게 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의 원천을 프로타고라스에서 찾았다(『서양철학사』). 이는 실용주의 관점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실러는 자신을 프로타고라스의 제자라고 불렀다. 그는 실용주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이다.

프로타고라스와 거의 동시대를 산 공자나 노자의 사상도 놀라울 정도로 비견된다. 논어의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공자에게는 네 가지 것이 없었으니, 意 · 必 · 固 · 我가 그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첫 문장인 “道可道非常道”(가히 道라고 말할 수 있는 道가 있더라도 그것이 항상 道인 것은 아니다)를 보면 안다.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 고대 동양철학을 전공한 프랑스의 저명한 학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이 동양사상의 핵심을 압축한 말이다. 인간의 관점으로 진리의 상대성을 설파한 프로타고라스의 사상이 이런 동양사상과 근본에서 뭐가 다를까?

역사상 최상의 정치체제라는 민주주의, 그 가치는 절충과 타협에 있다. 진리에 대한 믿음이 다를 때 어느 하나만이 절대 옳다고 고집하지 말고 여러 가능성을 모두 열어 놓을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톨레랑스, 즉 관용의 정신이다. 해가 바뀌었어도 나라 안팎으로 대립과 충돌은 격화될 조짐이다. 현자가 준 열쇠는 있어도 그 열쇠를 들고 문을 여는 이는 막상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움만 쌓인다.


김지형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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