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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칼럼] 오독(誤讀) ‘논어’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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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실록 공부를 시작하면서 ‘논어’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 20년 넘게 파고들고 있다. 도대체 ‘논어’가 어떤 책이길래 20년씩이나 잡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그중에 ‘논어’를 뒤덮고 있는 따개비 같은 오독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기본적으로 ‘논어’ 오독의 제1번 책임자는 송나라 성리학자 주희다. 원래 군주론이었던 ‘논어’를 주희는 교묘하게 해체하여 군자 일반의 수양서로 바꾸어 놓았다. 좋게 말하면 창조적 재해석이고 나쁘게 말하면 신권 강화론 입장에서 ‘논어’ 본래의 구조를 파괴한 것이다.

온통 그런 식이지만 한 가지 대표적인 사례만 짚어보자. ‘논어’ 학이편에는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어진 사람은 드물다”는 공자 말이 실려 있다. 이를 주희는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공자 말씀은 박절하지 않아 오로지 드물다고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진 사람이 절대 없음[絶無]을 알 수 있다.”

“드물다[鮮]”가 어느새 주희를 거치며 “절대 없다”로 바뀐 것이다. 실제로 그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교언영색을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교언영색 그 자체는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말을 잘하고 얼굴이나 몸가짐이 아름답다[令=美]는 뜻이다.

공자가 생각했던 본뜻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바로 “드물다”에 있다. 이는 누가 보아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드물게 있다”는 뜻이다.

오랜 공부 끝에 이 구절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을 통해 살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교언영색 하면서 속마음도 어진 경우이다.
둘째는 교언영색 하지만 속마음은 어질지 못한 경우이다.
셋째는 교언영색은 못 하지만 속마음은 어진 경우이다.
넷째는 교언영색도 못 하고 속마음도 어질지 못한 경우이다.

우선 공자는 교언영색 했을까 하지 않았을까? 사람 보는 데 능했던 제자 자공(子貢)은 공자에 대해 온량공검(溫良恭儉)하다고 표현했다. 얼굴 표정이 따스하고 몸가짐이 훌륭하며 공손하고 검소했다는 말이다. 당연히 교언영색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공(公)의 영역을 말하지, 사(私)의 영역을 말하지 않는다. 이 또한 ‘논어’를 읽어낼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포착점이다. 예를 들어 공자는 “자기보다 못한 자와 벗 삼지 말라[毋友不如己者]”라고 말하는데 이를 사의 영역에 적용한다면 공자는 몹쓸 사람이 된다. 공적인 영역에서 자기보다 덕(德)이 없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뜻이다. 손익 계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짊과 같은 덕은 오로지 벗을 통해 조금씩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유형도 마찬가지이다. 사적인 영역에서 친구와 사귈 때는 이 넷 모두 얼마든지 나름대로 좋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

이제 공적인 일로 돌아간다. 여러분에게 인사담당자가 와서 둘째와 셋째 유형 중에서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누구를 데리고 함께 일을 하겠는가?

국내 대기업들 강연을 가서 이 질문을 던지면 여지없이 10중 7~8 정도가 셋째 유형을 고르겠다고 답한다.

이는 일[事]이란 무엇이며 일 잘하는 법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은 ‘논어’란 책이 한마디로 하면 일 잘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내용으로 가득한데도 말이다.

‘논어’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지(之), 즉 배워야 하는 목적어가 바로 ‘일 잘하는 법[文之]’이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이 문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한국의 논어력(論語力)이 일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도 이런 오독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일이란 언행(言行)으로 한다. 교언은 언(言), 영색은 행(行)이다. 셋째 유형은 마음만 있고 실행력이 없는 사람이고 둘째 유형은 마음은 없지만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제 리더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둘째는 일을 잘하니 잘 부리면 된다. 그런데 셋째는 일을 안 하거나 못하니 부릴래야 부릴 수가 없다. 따라서 셋째와 넷째 유형은 처음부터 배제대상이다.

이제 리더에게 중요한 것은 첫째와 둘째를 잘 가려내는 일이다. 그래야 향후 중대한 일을 맡길 때는 둘째를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를 공자는 사이비(似而非)라고 했다. 겉으로 교언영색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속마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오독 탈출 과정을 겪을 때마다 우리 사회에는 그릇된 통념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섬뜩해질 때도 있다.

그럴수록 들여오는 소문[聞]보다는 그 사람이 실제로 도달한 경지[達]를 주목해서 보라는 공자 말을 곱씹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떠들썩 한탕을 노리는 자보다는 그것을 걸러낼 줄 아는 우리 안목이기 때문이다.


이한우 교장(논어등반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