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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만나는 클래식] 신성한 불꽃 - 영혼을 울리는 세 명의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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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슈미트-가레는 독일의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이다. 주로 클래식 음악을 다루고, 저예산으로 독특한 주제를 다루는 솜씨가 있다. 1999년에 만든 <오페라 광신도(Opera Fanatic)>란 필름은 은퇴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유명 가수들을 취재한 다큐멘터리였는데, 당시 슈미트-가레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가수는 1950년대를 풍미한 카를라 가바찌(1913~2008)였던 모양이다. 영혼을 울리는 감동적인 노래에 홀린 나머지 다큐멘터리의 피날레를 가바찌가 부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흑백 영상으로 장식했다.


요즘엔 그런 가수를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하던 슈미트-가레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마치 가바찌의 환생을 만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알바니아 소프라노 에르모넬라 야호(1974~)였다. 야호는 모든 감정을 무대에 쏟아놓는 가수로 유명하다. <라 트라비아타> 3막의 ‘지난날이여 안녕’을 부르며 진짜 눈물을 줄줄 흘리고, 폐병으로 죽어가는 비올레타처럼 기진맥진한 상태에 빠져든다. 슈미트-가레는 지체 없이 야호를 다룬 필름 <신성한 불꽃(Fuoco Sacro)>을 제작하기로 하는데, 준비 과정에서 야호와 전혀 다른 스타일인 현대음악 전문 소프라노 바바라 해니건(캐나다, 1971~)을 함께 다뤄 대조 효과를 노려보고자 했고, 지인의 권유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살로메>를 연습 중이던 아스믹 그리고리안(리투아니아, 1981~)을 뒤늦게 발견해 결국 세 소프라노를 다룬 9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세 가수의 노래와 몸 풀기 과정이 담긴 보너스 영상을 포함하면 189분이다.

우선 드라마를 대하는 야호와 해니건의 대조적인 자세가 인상적이다. 야호는 완전히 극중 배역으로 환생한 듯한 자세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가수는 감정을 절제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혼이 담긴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야호의 지론이다. 그만큼 감정표현을 중시하기에 몸이 아파도 웬만하면 공연을 포기하지 않는다. 분장을 마친 후에는 무대에 먼저 올라 그 분위기를 음미하는 것도 야호의 루틴이다. 일상의 모든 것을 오페라에 바치는 디바답다. 해니건은 다르다. 자신을 위해 곡을 쓴 작곡가와 심도 있게 논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음악성 넘치는 해니건은 “스스로 너무 빠져들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느낄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래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지휘자로서도 톱클래스인 해니건은 자신의 천재성을 다방면에 풀어놓아야 직성이 풀릴 타입이다. 마치 야호는 라틴적인 '감성'을, 해니건은 앵글로-색슨적인 '이성'을 대표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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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믹 그리고리안은 작년 9월 8일자 이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다. 슈미트-가레가 이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던 2019년 여름까지 그리고리안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가수였다. 결과적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살로메>에서 놀라운 노래와 연기를 펼쳐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으니 감독의 안목이 정확했던 셈이다. 그리고리안의 인터뷰에서 깜짝 놀란 사실은 공연을 앞두고 공황 발작과 공포감에 시달리는 일종의 심신미약자라고 스스로 밝힌 대목이다. 그래서 공연 전에는 안정제를 먹는다는데, 그런 다음에는 마치 신들린 듯 연기에 빠져든다. 가수인 동시에 놀라운 배우가 아닐 수 없다. 공황을 극복하고자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차이콥스키 <욜란타>에서 처음으로 약을 안 먹고 힘겹게 끝까지 버텨봤다고 고백도 한다.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봐도 노래의 ‘신성한 불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과 천성이 우선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어울리는 분야에 그 재능을 쏟아부어야 충분한 결과를 맺을 수 있는 듯하다. 야호와 그리고리안이 감정표현보다 노래 그 자체로 승부하는 전형적인 벨칸토 레퍼토리에 전념했다면, 또는 해니건이 베르디나 푸치니 소프라노였다면 성악계의 슈퍼스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재적소가 중요하다.


 

유형종 음악&무용칼럼니스트·무지크바움 대표